친구, 같이 기억하며 머무르는 사람
늦은 시간,
오후4시의 평화!....가 아니라 불안한 시간
늦춰진 병원예배시간에 맞추어 준비를 한다.
신발을 신다말고 핑~~ 다시 기립성저혈압으로 어지러워하며
침대에 폭 꼬꾸라지는 아내,
단 5분도 앉아 있지 못하는 그놈의 기립성저혈압,
컨디션이 좋을 때는 30분도 버티지만(등 받침 없이)
대개는 10분을 넘기기 힘들어 한다.
요즘 들어 더 힘들어하고,
그래서 장을 청소하는 날은 초죽음이다.
30분을 못버티고 나가 떨어지기 일쑤니...
혈압을 재러 온 간호사가 체크하는 동안
속에서 막 치솟아오르는 분노를 삭히느라 씩씩거린다.
'으으윽...'
"이런 체질로 뭘 해?" 나도 모르게 입박으로 나와버린 중얼거림
정말 뭘 할수 있을까?
가까운 곳의 식당으로 밥한번 먹으러도 못가는 저질체력으로,
겉으로는 팔다리 다 달려있고 멀쩡한데
정작 들여다보면 치명적인 문제가 줄줄이 있다.
앉지도 못해, 먹는것도 숨차, 두시간 세시간마다
작은 일, 삼일마다 큰일도 못봐,
눈도 한쪽이 안보여 촛점을 못맞추고
걸핏하면 땀을 바가지로 쏟다가 한기로 오들오들...
그런데 나는 그러는 동안 멀뚱히 해줄수 있는게 없다.
몸으로 주무르고 두드리고 허드렛 일로 고단하기만 하지
딱 부러지게 고치거나 진단할 능력도, 처방할 실력도 없으니...
돌아보니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랬다.
뻑하면 어쩌지? 어쩌지? 동동구르며 안달을 부렸지만
정작 시원하게 해결할 능력은 내겐 없었다.
끙끙앓는중에도 덜어줄 길도 없고
숨을 못쉬어 산소통을 코에 꽂고 헉헉댈때도 뭘 해줄 길이 없고,
응급실로 중환자실로 갈 때마다 그랬고
지금 재활병원에서조차 몸살 날때도 그저 지켜보는것 외에는
내가 뭘 덜어주거나 해결해줄 길은 깜깜했다.
그저 그 많았던 아픈 순간마다 곁에서 신음소리 들어주고
좀 나아지면 예전 이야기할 때 기억을 살려 맞아! 그랬어!
그렇게 공유하는 것 외에는...
어쩌면 앞으로도 별 달라질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 계속 이 말씀이 떠나지 않는다.
'내가 너를아노라!
때마다 이곳과 저곳에서 곤란했던 순간을 다 기억하노라!'
따지고보면 그 관심보다 큰 선물이 어디있으며 더한사랑이 있으랴?
잊혀지고 외면당하며 아예 눈길조차 받아보지 못하며 겪는
외로움 고난보다 힘든게 어디있으랴.
천국에서 상을 받으며 제가 언제 주님을 접대했냐는 물음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내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으며
내가 갇혔을 때 찾아주었다.' 라고!
그 받은 지극히 작은자 하나가 바로 예수였고,
그 자비를 베푼 사람은 그것으로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예전 절벽에 서있을 때 방송국 인터넷 단체 큰 교회에서
목돈으로 도움을 주셨다. 치료를 받느냐 못받느냐에 생사가 달렸을 때.
그 도움으로 아슬아슬하게 고비를 넘기고 전환점을 맞았다.
그렇게 한번에 큰 도움을준 단체들도 큰 역할을 하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까지 버티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비용외에도 절망의 벼랑에 선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일에 관련되었던 분들은 벌써 우리 이름을 잊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 긴시간을 함께 해준 사람들이 있다.
크게 비용이나 치료의 역할을 맡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역할로,
친구의 또 다른 모습은 다른 친구의 처지와 형편을 다 알아주고
세세한것조차 늘 기억해주는것,
그런 모습으로 오랫동안 곁을 지켜주었던 것 같다.
친구가 헐벗을 때 비단 옷입기를 즐기지 않고
친구가 목마를 때 펑펑 물쓰며 버리지 않는사람.
친구가 주리고 배고픈데 상관없이 배부르게 먹지 않는 사람
친구가 춥고 비바람 맞고 있는데 나만 따뜻하고 아늑한 곳에서
즐겁다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늘 세세한 형편을 들어주고 보아주며
고개돌리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렇게 너희도 살라고 명령하고
부탁하시는 예수님 말을 따라하는것
누가 형제고 친구일까?
어떻게보면 작은 고통으로 신음할 때나
크게는 중환자실에서 있을 때도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이나 남편인 나이거나
다를게 없이 속수무책이었다.
외형상으로, 겉으로, 현실적으로는...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달라진다.
그 힘든 마음 속상한 마음 화나고 비통한 심정을
같은 시간에, 같이 가지고 참았다는 것으로 다름이 생긴다.
그 시간 그 상황의 이야기를 기억한다는 것으로
더 가까운 가족이 되기도하고,
같이 비를 맞아주는 친구나 형제가 되기도하고,
아무 상관없는 멀찌감치 있는 이웃이 되기도한다.
단지 기억하고 알아준다는 정도의 차이로
더 가까운 사람과 먼사람이 결정되는 것이다.
천국도 하나님의 자녀도 그 기준으로 정해지겠지?
내가 언제 주님께 마실 것을 주었고
내가 언제 주님께 먹을 것을 주었으며
내가 언제 갇힌 주님을 찾아보았나요?
단지 힘들어하는 아내(친구, 이웃) 곁에서 들어주기만하고
그저 내 힘 닿는 것만 주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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