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은 악몽일까? 선물일까?
많은 사람들이 살다보면 ‘잠 못 드는 밤’을 보낸다. 재정적 문제로, 자녀들, 부모님 문제로, 혹은 누군가와의 갈등이나 스스로의 내면적 고민 등으로, 그 ‘잠 못 드는 밤’만 없다면 어쩌면 인생 전체가 행복해질지도 모른다. 그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신앙을 가지고 오래 훈련한 사람조차,
그러나 ‘잠 못 드는 밤’이 꼭 악몽에 해당하는 것일까? 아니면 신의 선물일까, 그 속을 알수만 있다면 많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중에 ‘시애틀의 잠 못 드는 밤’이 있었다.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주연을 한 사랑이야기, 운명적인 만남, 바람의 결처럼 마음이 끌리는 사랑을 찾는다는 어쩌면 너무 빤하고 상투적인 스토리.
청춘만 '잠 못 드는 밤'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생의 ‘잠 못 드는 밤’은 그렇게 여유롭거나 감상적으로 만만하지 않다. 가족의 간병으로 오랜 세월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던 분이 잘 지내다가도 어제는 ‘잠 못 드는 밤’을 보냈다고 말했다. 장래에 대한 불안, 가장으로 짊어져야할 책임감, 쌓인 고단함... 어디 한 두 가지 이유일까만,
청년기 세상을 부평초처럼 떠돌며 생존 한 가지 문제에도 허덕이며 보내던 내게도 ‘잠 못 드는 밤’이 수시로 있었다. 직장도 불안하고 가진 것도 없는데다 부모님의 형편조차 가서 기댈 수도 없는 여유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그 날카로움은 쌓여서 외로움으로 변했다. 한 밤중에도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고 심장병을 앓는 사람처럼 숨쉬기도 힘들고 가슴은 찬바람 횡 불어도 눈물도 나오지 않는 마른 슬픔...
그 혹독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면 다시는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악몽이 되었다. 최근에 최진실의 전 남편 조성민이 자살을 했다. 그 지독한 어둠이 한 가정을 작살을 내고 말았다. 이제 남은 가족, 양쪽 부모 형제들, 남은 아이는 또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남은 생을 살아야 할까? 아마도 숱하게 ‘잠 못 드는 밤’의 고통을 겪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스스로 생명을 마감하고 이 땅을 떠나간다. 아마도 공통적으로 하나 같이 그 직전에 ‘잠 못 드는 밤’을 숱하게 보냈을 거다. 그들이 제대로 잠을 잘 수만 있었다면 많은 수가 결코 죽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면 같이 밤을 세워주거나 함께 들어줄 사람만 있었어도...
'잠 못 드는 밤' 자체가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다
외로움이 아무리 깊어도 그 자체가 생명을 끝장내는 것은 아니다.
가난도, 배고픔도, 질병의 고통도, 그 어느 것도 그 자체가 생명을 끝장내지는 않는다.
물론 그것이 원인이 되거나 심하여져서 이유가 되기는 하겠지만,
정작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그 이유들이 가져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 이유들이 몰고 오는 참을 수 없는 불안한 상상, 좌절감, 비참함 등이 사람을 날마다 죽인다. 순간마다, 특히나 사람들이 모두 잠 들어 조용해지는 밤이면 더욱 더...
그렇게 수도 없이 죽음의 연습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연습과 실전이 구분이 가지 않게 된다. 굳이 다르다고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의식주만으로 사는 동물이 아니니...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잠 못 드는 밤’에 시달리고,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연달아 뉴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죽음으로 내모는 이 상상의 불안, 잠 못들 게 하는 좌절감의 싹들에 대해서 사람은 아무 대책이 없는 것일까?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해야 할까?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책을 쓴 힐티는 이렇게 말했다. ‘잠 못 이루는 밤’은 신의 선물이다! 라고,
어떻게 죽음으로 몰고 가는 ‘잠 못 드는 밤’이 그에겐 ‘신의 선물’이 되었을까? 그는 몇 가지 설명도 하고 방법도 말 했다.
하나는 ‘자기 자신과 상대하지 말라!’ 는 것이다.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오로지 자기 생각에만 몰두해서, 즉 자기라는 조그만 배 한 척을 상념의 물결이 흐르는 대로 맡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상념이 어디로 갈 것인가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해서 명령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을 상대로 해서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불안을 배가시켜 주기 때문이다.> 라고,
그래서 ‘가능하다면 언제나 확고한 평온을 주시는 신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또는 만약에 그런 사람이 그곳에 있다면, 당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라.’ 고 말한다. 이 부분은 우리가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는 이웃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 지를 말하기도 한다.
또 하나는 ‘잠 못 드는 밤’을 오히려‘신의 선물'로 여기라는 것이다.
<잠을 못 이루는 것은 인간이 신을 버리고 자기의 좁은 영역에서 몸부림을 치고 곤란을 헤쳐 나가려는 용기를 잃고 공포에 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잠을 못 이루는 것 자체가 신의 은총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들 속에 무슨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신의 품에 안기고 완성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불리한 환경이 교육자가 된다. 아니, 역경에 처할수록 그 인간은 진가를 발휘한다.>
이스라엘의 선지자 카히나이의 아들 랍비 카니나 는 이렇게 말했다.
"밤에 깨어나 있을 때라든가 홀로 산책하고 있을 때 그 마음을 안일한 생각으로 이끄는 자는 자신의 영혼에 죄를 범하는 자이다"라고.
즉, 이러한 사람은 정신적인 커다란 이익을 얻도록 되어있는, 좀처럼 쉽게 맞이하기 어려운 최상의 기회를 놓치게 될 뿐만 아니라 무익한 사념이 따르기 쉬운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잠 못 이루는 밤을 오히려‘신의 선물'로 여기는 것이 자신에게도 유익하다. 그것은 선용되어야지, 이유 없이 무작정 거역해서는 안된다.
‘잠 못 드는 밤’이 가져오는 크나큰 불행을 막기 위해 중요한 것은 ‘잠’이 아니라, 그 뿌리이며 배경인 외로움, 질병, 슬픔, 배고픔, 억울함 등등의 이유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 직접적인 원인들과 마주치고, 평안을 깨는 불완전함을 극복한다면 당연히 ‘잠’에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단잠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는지도 모른다.
‘잠 못 드는 밤’에 대한 결론은 그렇다. 잠을 못 자게 하는 발생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늘 일어날 수 있으나 그것들이 반드시 불행만은 아니라는 것, 신이 우리를 부르거나 우리의 약점을 극복하는 훈련을 반복하면서 진정한 힘을 기를수 있고, 그래서 깊이 있는 행복과 평안을 얻는 단계가 된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이 전체를 불행으로 본다면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만든 신은 실수를 하셨다는 결론밖에 못 내린다. 인간에 의한 신의 실수 판정! 이것은 참 이상한 장죄가 아닌가?
우리를 가난과 실패, 질병을 통하여 가까이 오라고 부르고, 이런 저런 훈련의 수단으로 고통과 좌절, 아픔 슬픔을 주셔서 강인한 인생으로 육성해내시는 프로그램(사랑?)으로 본다면 쉽게 자살이라는 극단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신의 선물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지 않는다! >는 믿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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