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그러지 마시라...>
언젠가 강남의 큰 종합병원에 있을 때였다. 같은 병실에 뇌질환할머니를 모시는 간병인 아주머니가 있었다. 몇 년을 계속 집과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같이 살다보니 가족처럼 되었다고 한다.
한번은 그 할머니가 심하게 응급상태가 되어 거의 포기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그 간병인이 얼마나 지독히도 매달려 살피고 의사와 환자사이에서 관리를 잘했는지 고비를 넘기고 좋아지기 시작했다. 씻기고 먹이고 재활시간을 챙기고 마음 편하게 재워드리고 하니 거의 기적처럼 나아가신 것이었다. 곁에서 보는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조차 놀라고 부러워하며 다들 딸인 줄 알 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속상한 일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하나같이 잘나가는 아들 딸 자식들이 간병인 아주머니를 휴게실로 불러 불만에 가득한 볼멘소리를 해댔다. 몇 년이나 직접 돌보지는 않고 돈대고 수시로 들여다보는데도 지쳤다는 것이다.
그냥 못 먹으면 못 먹는 대로, 자면 자는 대로 두면 돌아가실 수도 있는데 왜 그리 기를 쓰고 살려 놓았냐는 요지였다.
<너무 그러지 마시라...
사람이 같이 오래 지내다보면 정도 들고, 눈앞에서 꺼져가는 불씨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후! 후! 하고 살려보려고 하는 법이다.>
간병인으로써는 기가 막힐 일이었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긍도 갈만한 말이었다. 간병인월급에 병원비에, 집 한 채 값 후딱 날아가는 건 일도 아니고 오래 걸리지도 않는 현실적인 문제였다. 그러니 칭찬도 못 듣고 미안해야할지 애매 했다고한다.
병실의 다른 사람들은 그 자녀들을 향해 욕을 하고, 나쁜 자식들이라고 흉보며 간병인 아주머니를 위로했지만, 정작 그 뒤로도 매달 250만원이 넘는 간병비를 꼬박 꼬박 받아야할 입장인 간병인 아주머니는 참 난처하다고 했다. 사람이 오래살고 정성을 다해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축복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서글픈 현실을 보았다.
<너무 그러지 마시라...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 누가 일부러 유행시키자고 지어낸다고 유행되거나 세월을 버티며 살아남는 것 아니다. 겪어보고 당해보니 공감이 가고, 다 거기서 거기 비슷한 약해빠진 사람이다보니 그렇게 되는거다. 남의 일일 때는 흉도 나오다가 정작 본인이 당하면 스물스물 닮아가는걸 누가 부인하라고...>
또 한 번은 암 병원에 있을 때였다.
몇 번이나 재발로 수술에 또 수술을 거듭하는 남편을 돌보던 보호자인 부인이 속상해 다른 보호자들에게 하소연을 하다 통곡을 했다. 아프면서 돈도 못벌고 치료비만 나가면서 집도 날리고 있는 재산 다 털어먹어가는 중이었다.
그래도 마음 다잡고 투병을 잘해주면 좋으련만 퇴원만하면 술 마시고 줄담배에 뻑하면 아파죽는다고 온 집을 뒤집어놓고 횡포를 부렸단다. 시달리다 못해 한마디 하면 열배는 폭언으로 갚고 소동을 벌려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차라리 빨리 임종이라도 했으면 싶은 마음 생길 때가 여러 번 있었다고 펑펑 울었다.
병원생활하면서 그 부인이 가장 부러운 사람이 누구냐 하면, 의욕을 가지고 성실히 투병을 해나가는 환자란다. 암 안 걸린 길거리의 성한 사람이 부러운 것도 아니고, 다 나아서 만세를 부르는 사람도 아니고 열심히 약 먹고, 몸 추스르며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 하는 환자라니...
그 이야기를 듣고, 또 자주 그 모습을 본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이 마구 욕을 해댔다. 정말 왜 그렇게 정신 안 차리고 심술을 부리냐면서, 그러다 마누라 도망가버리면 무슨 수로 버티고 병원비 마련하고 살거냐고 한심하다는 듯 야단을 쳤다.
<너무 그러지 마시라...
어느 누가 자기 생명이 남들과 달리 야금야금 줄어드는걸 알면서 편한 사람 있다고, 안 그런 모범환자도 있지만 그런 그들이 칭찬들을 일이지 못하는 사람이 욕먹어 마땅하지는 않다. 개도 돼지도 자기 죽을 거 눈치 채면 울고불고 발로 버티고 오줌 똥 싸면서 두려워 하는데, 하물며 생각 많은 사람이 왜 안 그럴까? 뻔히 자기가 저지른 죄도 형벌 판결나면 팔팔 뛰며 울고불고 하는데 ‘왜 나야?’ 하는 맘이 들면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주저앉았다. 어디를 가지도 못하고 물리겠다고 예전으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그저 한 자리 차지하고 오도가도 못 하면서 그저 주저앉아 있다. 그 자리로 세월이 와서 지나가고, 사람들도 몰려오다가 알아서 돌아가고 안 오기도 한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못한다. 나가는 돈도 붙잡지 못하고, 망가지는 건강도 멈추지 못한 채로 그저 돌덩이처럼 한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를 알게 된 사람들은 어쩌면 손해를 좀 본다. 마음이 걸려서이기도 하고, 혹은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기도 한 이유로 시간을 나누거나 물질을 나눈다. 때론 정성을 담아 먹을 걸 나누기도 하고, 그러다가 계속 보기가 힘들면 또 가던 길을 가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 자리에서 따라가지도 못하고 그냥 있는다. 부담을 푹푹 풍기는 존재로...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자리 툭툭 털고 어디론가 옮길지도 모른다. 갈 때가 되면 받은거 갚지도 않고 새벽 미명에 도망가는 사람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갈 수도 있다. 어저면 뒷통수에 대고 욕을 바가지로 할지도 모른다. 머리 검은 짐승들은 잘해줘도 소용이 없다더니... 그러면서,
<너무 그러지 마시라...
우리도 그렇게 살려고 태어난 건 아니다. 누군들 그러고 싶어서 이 세상에 왔을까 만은, 우리도 가고 싶었던 곳도 많았고, 아이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았었다. 잘 살아서 누군가에게 유익한 이웃도 되고, 그걸 추억으로 담아서, 늙으면 저녁노을 바라보며 아내와 흐뭇하게 손잡고 산책도 하고 싶었었다. 그래도 계획은 나를 빼고도 만들어지는 줄 어찌 알았으랴. 아무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은 걸...>
아주 가깝게는 혈육이라는 올가미 때문에 많이 손해 본 형제들도 있고, 세상사람 보다 더 생명을 나누며 살아야한다는 가르침 때문에 지갑도 많이 털고 시간, 애태우는 눈물도 많이 흘리신 신앙의 동지들도 있다. 참 미안하게도...
문제는 금방 해피엔딩이 될지도 모른다고 발 담그고, 좋은 일에는 좋은 보람과 댓가도 돌아올 것이라고 당연히 기대하며 곁으로 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가고, 이렇게 자주 무겁고 불편한 상황을 계속 볼지는 몰랐을 거다. 그냥 멈추기도 부담되고 민망해서 어정쩡해지는 피로감에 시달리는 분들도 있을거다.
<너무 그러지 마시라...
지금 눈앞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 멋지게 그 화답이나 보람은 못 안겨주어도, 대신 마음 한구석에 뿌듯한 보람은 안겨줄지도 모른다. 사랑의 마음으로 같이 나누며 살아냈다는 평안의 마음, 아니면 누군가 그걸 알아주어 참 잘했다! 칭찬도 해주고 자랑도 해줄지 모른다.
뭐 아니면 어떤가, 다음 세상에서 기다리는 분이 분명히 못 받은 채권의 몇 갑절로 돌려주고 인정해줄 테니~~ 그거 믿고 살아가는 이를 신앙인이라고 하지 않나?
너무 그러지 마시라... 답 없이도 살아야한다고 해서 열심히 사는데,>
'이것저것 끄적 > 날마다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은 돌고 도는데 곧바로 못간다? (0) | 2012.09.26 |
---|---|
안식일 소감 (0) | 2012.09.23 |
의문은... 이겁니다. (0) | 2012.09.20 |
진실은 이거지요! (0) | 2012.09.19 |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데... (0) | 2012.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