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날마다 한 생각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ㅡ 위지안

희망으로 2012. 8. 21. 09:18

책방에서 책을 보다가 제목때문에 내용도 보지않고 사서 들고나왔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그건 내가 두번째 나의 간병기 에세이를 내기위해 정해놓은 제목과 거의 같았기때문이다. 

<살아가야할 이유 51가지>와 너무 비슷한,


내가 그 제목을 떠올리고 난치병 투병중인 우리가정을 후원하는 카페에 

그 제목으로 만든 코너에 글을 쓰기 시작한게 1년도 넘었다.

그 제목을 생각한 것은 죽을 이유보다 살이유가 하나 더 많은 51퍼센트기 때문에 

살아야 겠다는 산수를 빌린 나의 의지의 표시였다. 그런데 이제 바꾸어야할 처지에 놓였다.

공연히 표절 운운에 몰릴 입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억울하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다.


내가 산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그 책 앞표지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서른살에 세계 100대 대학교수가 된 그녀 인생의 정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가

 삶의 끝에 와서야 알게 된것들' 이라고...


그랬다. 꼭 살수 없을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 하는 말이 희망 이고 찾는것이 살 이유다.

그리고 이 책이 마음에 드는 또하나의 이유는 짠! 하고 기적적으로 나았다는 결말이 아니라서다. 

사업이고 병이고 어떤 시련이고 꼭 끝이 기적처럼 해피엔딩했다는 자랑 식 이야기는 별로 보고싶지않다. 

그 당사자야 얼마나 신나고 뿌듯할까만 그런 케이스는 10퍼센트, 열에 하나 이하이다.

어쩌면 백에하나 만에하나일지도 모른다 더 큰 기적같고 더 큰 성공일수록 ...


그 사람이 돈내주는 것도 아니고 내 돈 내면서, 

별 변화도 없이 여전히 무겁고 어두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왜 그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게 내 생각이다. 


결말만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과정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평안으로 바꾸며 살아가는지만이 

온통 내 관심사다.나는 내가 영화나 소설을 쓴다면 나는 그 과정 만을 보여주고 막을 내릴것이다.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은 정도의 차이야있어도 모두 소멸하고 빈 손으로 사라지는데 

결말이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바꿀수 없는데 어떻게된들 뭐가 달라질까? 

그게 무슨 절대 차이를 가져올까? 


다만 지금, 오늘을 기쁘고 평안하게 해주는 힘과 노력이 그보다 백배는 소중하고 정작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과정의 승리가 관심이 가고 존경을 하게된다. 

사는게 올림픽 금메달 따기도 아니고, (올림픽도 예전에는 참여가 목적이고 아름다웠다.) 

변하게 만든건 인간들의 이기적 욕심 가족주의 국가주의였다. 

우리들의 삶에대한 자세를 타락시킨 것도 그것들이다.


이 책의 서른살 위지안교수는 아직 끝나지 않은 말기암 판정을 안고 살아가고있다. 

(그녀는 2011년 4월19일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그녀가 살았을 때 하루하루를 같이 가고 있다)

나는 그녀의 말기암 끝을 보고싶어서가 아니고 그녀가 오늘을 어떻게사는지 보고싶어 책을 샀다. 

오늘을 살이유를 찾고, 알고 ,살아가는 그녀가 보여줄 무엇, 

그것도 모르며 살아가는 몸만 건강하고 욕심만 가득찬 어쩌면 이미 죽은 사람들과 다른 그 무엇,

나는 첫 장을 읽자마자 그녀의 오늘이 귀하고 아름다워서 눈물이났다. 


그녀는 추위를 유난히 만이 탔고, 벽을 향해 모로 누워야 자는 잠버릇이 있었다.

늘 그녀의 침대에서 딩굴거리다 위지안에게 야단맞고 비켜주는 남편 맥도날드(별명)이 미웠다.

어떤 때는 장난으로, 어떤 때는 정말 싫어서...


그런데 병원에 실려가서 시티촬영을 하면서 그 눕는 자리마져 남편이 누웠다가 

간호원에게 혼난 이야기를 들었다. 

'환자의 자리에 눕는 것은 병원 규정 위반입니다!'하는 간호원에게 그 남편이 그랬다.

'아내는 추위를 많이 타서요.'


위지안은 몇년을 야단맞으면서 늘 늦게 돌아오는 자기 침대에 누웠다가 쫒겨나는 남편의

사랑을 그제서야 알았다. 자리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사랑의 마음을...


어느 날은 응급실에 서른중반의 건강한 남자가 옆자리에 들어왔다.

사촌오빠를 많이 닮은 그 남자가 자꾸 생각나 내일은 인사나 해야지 했는데 밤사이에

그 남자가 세상을 떠나버렸다. 소변에 피가 나오는 정도 였던 건강한 남자가,

이별도 제대로 못하고 세상을 떠날수 있는 생명이 퍼뜩 깨달아진 위지안은 남편에게 

급하게 말했다. '우리 아기를 좀 데려다 줘!' 

살아 있는 동안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고쳐먹으면서 

살아 있는 오늘을 감사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책을 사서 직접보시면서 느끼시면 좋겠다. 

다 말하면 고발당할지도 모르니~ ^^*)


그 하루 하루의 이야기를 보면서 오늘 나의 하루를 돌아본다. 

마치 하나님없이 산 천날보다 하나님을 알며 보낸 하루가 더 귀하고 기쁜 신앙인의 삶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