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늦은 밤 길에서 배우는 경험

희망으로 2012. 6. 14. 01:27

지금 시간이 밤 11시,
이 시간에 길을 나선다. 내가 직업이 밤 손님도 아닌데...

어쩔 방법이 없다.
오늘 3일째만에 돌아오는 아내 장청소의 날,
말이 좋아 장청소지 마비된 대장과 항문에 좌약을 넣고
한시간을 기다려 급하게 화장실로 가서 한바탕 대사를 치러야 한다.
다른 날보다 힘든 오늘은 맵고 짠 음식을 먹은 탓이다.
게다가 낮에는 기름진 치킨 몇조각을 먹기까지 했으니...

앞 침대의 아가씨가 목에 생긴 혹을 수술하고 돌아와
근 한달 넘어 처음으로 치료선생님 손을 잡고 걸었다.
축하하는 맘으로 온 병실의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었고
착한 아내가 그중 바람잡이처럼 더 기뻐해주는 바람에 내가 한턱쏘았다.
치킨으로! 그 남은걸 밤이라 못 먹고 오늘 먹었다.

그리곤 저녁에 또 매운탕을 먹었다.
치료선생님중에 부모님이 횟집을 하는 분이 계시는데
정말 예쁘고 착한 마음을 가진 분이시다.
아침 출근길에 매운탕을 4개의 포장에 나누어
9인실 우리 병실에 나누어 주셨다.
그걸 무지 맛있게 먹고는 배탈이 난 것 같다.
5시간에 걸친 씨름을 끝내고 땀에 절고 폭발직전의 심정으로
길에 나선 내 상황이 그다지 편치 않았다.

미친사람처럼 씩씩대며 병원 근처 길을 돌고 돌며 걷는다.
누가 보았다면 영락없이 부부싸움하고 나온 못난 남편같았을거다.

그러나 이 길에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소변문제로 아내에게 호출이 오면 10분 이내로 병원으로 뛰어와야해서
멀리도 못가고 빙빙도는 사이에도 밤 12시가 넘어갔다.

3-4일마다 배터리 충전을 위해서 잠시 시동을 걸어주기 위해
지하차고로 가려고 돌아온 병원 입구에서
나는 안보았으면 더 좋았을지 모를 모습을 보고말았다.
엄마로 보이는 할머니에 가깝게 나이드신 분이
아들같은 젊은이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주위를 돌고 계셨다.
밤 12시가 넘은 이 시간에...

나도 병원생활과 여러 환자들을 많이 본 경력에 바로 알수있었다.
뇌질환이나 사고중 하나로 몸만 아니라 머리까지 상한 듯한 상황을...

밤인들 잠이 잘 올까?
오죽하면 초저녁 잠 많은 나이드신 어른이 이 시간에 휠체어를 밀고
병원을 무슨 탑돌이처럼 뺑뺑 도실까...

참 할말도 없어지고 뭐라고 쉽게 능글맞은 인사도 못 던지겠다.
내가 이 지경이 아니었다면 꿈에도 경험못할 사람의 아픔...

나만 가장 힘든 줄 알았는데,
나만 왜 이런 복장 터지는 상황을 안고 무너지지도 못하고 살아야하나
원망스런 마음으로 길을 나서서 씩씩거리며 걸었는데...
산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우울함이 몰려왔다.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허무 외에는 닿을 종점이 없어보이는...

좀 전에는 늦은 밤거리를 걷는데 스쳐가는 처자들을 만났다.
늦은 시간 비틀거리며 전화기를 붙들고 뭐라뭐라 하는 짧은 치마 입은
처자들,
나도 모르게 주문을 외우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부디 제게 맑은 영을 주시고 주변에 가득 찬 사탄의 유혹과
싸움에서 이기게 해주소서!’ 라고...

전에 언젠가 이런 글을 썼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 한쪽에 문드러진 상처를 안고 산다’고,
오늘 또 다른 하나를 추가해야만 할 형편이다.

사람들은 남들이 모르는 가슴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갈 뿐 아니라
누구나 깊은 어둠속에 언제라도 망가지고 포악해질 욕망 욕정을 가지고
몸부림치며 살아간다는 것을...

하나님이 안 계시고 다음 세상을 알려주지 않으셨다면
결코 다시 넘어서지 못하고 무너질 불안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