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다. 야간에 운동장을 개방해주는 것이 참 고맙다.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밤 늦은 시간에도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땀을 흘리며 가운데서 축구공 하나로 뛰고 또 뛴다. “재들도 살 뺄 일이 있나? 아님 가정에 문제가 있나?” 혼자 킥킥 웃으며 별 생각을 다 해본다.
사투! 목숨 걸고 싸우기... 나는 지금 운동장 바깥을 걷고 또 걷고 사투중이다. 열바퀴 스무바퀴, 세다가 숫자도 잊어먹고 무슨 생각을 하며 처음에 걷기 시작했는지도 깜박 깜박 잊어먹는다. 멍해지면서부터는 자동기계처럼 그저 두 다리가 교대로 앞으로 뒤로! 그렇게 반복만 하는 느낌이다. 한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때는 땅을 딛는 감각도 없어지고 바람에 밀려 구름처럼 둥둥 떠가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병원생활이 길어지면서 장기전에 시달린 후유증이 가끔씩 튀어나온다. 외부적인 급박함이 없어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땀이 삐질 나오고 호홉이 가빠지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죽을 수 없는 이유, 죽으면 안 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내가 못 버티면 나는 물론이지만 덩달아오래 못버티고 이 세상을 떠날게 거의 확실한 아내와, 뭐 생존이 야 그런대로 하지만 몸과 마음에 심한 흔들림을 겪을 막내 딸... 그래서 신앙적 이유 외에도 죽지 못할 이유 하나는 추가 되었다. 그렇지만 사람이 그걸로만 버티기는 감정도 복잡하고 머리도 오만가지가 들락거리니 어쩌면 좋은가... 정말 필요한건 살아야 할 이유, 살만한 이유다. 죽지만 않는다고 살아간다고 말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 짐만 무겁다는 생각 않는다. 내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도 않는다.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짐과 좌절을 안고 버티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디 찔리고 베인 데가 팔이고 다리고 등짝으로 위치가 다르다고 아픔이 다르겠는가? 나도 지금 이런 처지가 아니었어도 또 무언가를 붙잡고 사네 못사네 끙끙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의 이유가 좀 더 내 자신을 억압하고 슬프게 생각하기 좋은 변명거리일 뿐인지도...
이제 두어밤만 자면 또 검사겸 진료하러 일산 국립암센터로 가야 한다. 하루는 길고 지루하기만 한데 이놈의 6주, 8주는 하루보다 빨리 닥치는 것 같다. 혹시나 비싼 항암주사를 또 맞아야만 할 혈액수치가 나오는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면서...
두 시간여를 돌고 돌다보니 온 몸이 땀과 먼지로 덮히고 다리는 휘청거리고 배도 고파온다. 손에 든 물병도 바닥났고, 무엇보다 병실에서 급한 상황이 생길 시간이 다되어서 지체할 수 없다. 자유외출은 언제나 두 시간이 제한시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자마자 작은 일처리를 부탁하는 아내, 자그만치 600씨씨나 나왔다. 보통 4시간에 300-400이 정상인데...
이런 저런 모습으로 힘들어하고 지쳤을지도 모를 친구들이 떠오른다. 어찌 누군들 남의 아픔을 세세히 알고 쉽게 나누어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찬양 가사처럼 아프지 않고 어찌 자매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겠는가? 지금 힘든 깊이만큼, 무거운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증도 생기고 힘도 생기는 중이라 여기고 하루를 살아내자!
살 이유, 살아야만 할 이유, 살만한 이유를 찾기전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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