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명(絶命)
조금씩 조금씩이 아니고
단번에 푹! 꺾어지는 목숨
절명은 그런 말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무너지던 절명
부자가 든든한 추수를 하고 배두드리는데
‘오늘밤 내가 너의 목숨을 거두어가면
그 재산이 누구의 것이 되겠냐?‘고 묻던 절명,
병원치료실로 중년의 남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서투른 운전으로 밀고 들어선 할머니,
또 다른 주름살 깊게 패이고 쪼글한 할아버지가
좀 떨어져 어색하게 서서 바라보고 계셨다.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 내내 눈도 떼지 않고
바라보는 두 어르신의 얼굴이 환자와 닮았다.
부모와 자식 사이,
어쩌다 저렇게 서지도 못하게 된 불구가 되었을까?
그걸 보는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을까?
한쪽 눈은 가리고 손은 오그라져 펴지지않고
영락없는 뇌경색 후유증 증상이다.
이 병원에 널리고 널린 증상...
저렇게 쓰러지기 전에는 얼마나 잘나갔을까?
돈을 많이 벌었을까?
옆방의 전직 고급공무원처럼 관직에 있었을까?
아님 건강한 몸으로 당당하게 힘주고 살던
친구들 사이에서도 잘나가는 편이었을까?...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엎어 버리는 질병,
혹은 사고들,
불과 몇 분, 며칠 전에는 상상도 못한 반전,
절명은 그런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은 하루하루 표도 안나고
정말 그날이 그날 같이 성장하여 간신히 피었는데
손 하나 우악스럽게 뻗어 허리를 뚝! 꺾어 부러진 꽃처럼
순식간에 작살나는 생명, 인생, 꿈
절명의 느낌은 그런 것이다
우리가 다니던 농촌 작은 교회의 장로님
60년도 넘은 교회의 역사가 말하듯
장로님의 어머님이 개척하셨고,
인근에서 하나밖에 없는 교회로 긴 역사를 가졌다.
오랜 세월에 낡아진 예배당을 새로 옮겨 지을까
아님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할까를 늘 고심하셨다.
거의 시골교회 재정을 다 책임지시다시피
몇 십년을 헌신하시고 봉사하셨다.
넓은 산에 사과나무가 너무 많아 셀 수가 없다고
이른 새벽기도회 마치면 종일 땀 흘리시고
성도와 목회자를 다 섬기시더니 한날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모든 일과 봉사, 재건축의 계획도 기한 없이 유보되었다.
믿어지지 않도록 허무했다.
3년을 넘도록 전 성도들이 기도했지만
5세정도의 지능과 휠체어신세로 돌아오셨다.
절명,
그 힘을 누가 휘두르는지 알 수가 없다.
생명을 주신이가 집행하시는지
혹은 맡겨놓은 사탄이 집행하는 일인지...
수천 수만의 무장한 군인을 거느린 왕은
그 절명의 칼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온 세상이 다 알아볼 정도로 알려진 사람은
그 어처구니없는 불길함에서 안전할까?
은행마다 쌓아놓고 수십 개의 빌딩을 소유하고
운동장만한 마당을 가진 집도 몇 채씩 가진 부자는
절명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걸까?
어쩐지 그럴 것만 같이 우리는 두려움없이
그것들을 향해 잘도 장기계획을 세우고
때로는 그것 때문에 사람도 무시하며 살지 않는가
절명
그러나 그것은 결코 모든 잘나가는 것들만 대상으로
싹뚝! 잘라버리는 것은 아니다.
부와 명예와 모든 권력, 영화로운 장수만 중단시키는게 아니라
지옥같은 고통, 허리가 잘리는 가난 절망에서도 오고,
사는 것이 더 처참한 상황의 갇힌자들에게도 온다.
마치 구세주처럼!
다윗이 구했던 좋은 날에도 들어맞고
아주 나쁜 경우에도 힘이 되는 구절을 구할 때
솔로몬이 주었다던 구절,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절명은 바로 그 구절과 너무도 같은 힘을 가졌다.
근거도 없는 자신감으로 끝없이 부풀리는 야심과
지나친 비관으로 모든 걸 포기하는 절망도
동시에 포기하게 하는 힘
‘절명’은 그런 것이다.
단지 오늘에 충실하라고,
손에 쥐어지는 어떤 것도 내일도 있으리라 착각하지 말라고,
싸늘하지만 사실인 법칙으로...
자꾸만 무너지고
색으로 치면 불루만 가득한 바닥과 배경 앞에서,
‘절명’이라고 쓰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읽어 본다.
오늘도 무엇인가가 가슴 답답하게 누르고
목을 조르는 느낌을 떨치지 못하고
보이는 것마다 화가 솟는데
이 단어를 주셨다.
‘절명’
처음에는 죽어버리라는 계시인가 싶었는데
자꾸 입안에서 오래 음식물을 씹듯 되새김했더니
모든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께 있다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다시 각인하게 하신다.
오래 갈지, 이 밤에 거둘지도 우리에게 결정권이 없고
하나님께만 있음을 인정하게 하신다.
가장 중요한 것 하나,
‘절명’,
목숨을 거두어감이 반드시 불행한 것 만도 아니고,
반드시 행운만도 아닌 양날의 칼이라는 말씀이다.
‘절명’을 만나기 전에
다만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것만이 지혜롭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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