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가는 길/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

힘빼! 하고 외치는 그분의 타이밍

희망으로 2011. 7. 6. 18:41

힘주지 마! 힘 빼고! 를 외치시는 분

 

주위에서 곧잘 보는 이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많이도 배우고, 넉넉한 인맥에 밑천도 든든하고!

그런데 무엇인가 삐걱거리며 우루루 주저 앉아버린다.

되는 사람은 내세울 것도 없는데 행운처럼 성공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그런 일을 볼 때 쉽게 하는 이야기로는

성공하는 사람은 운 때가 맞았다거나,

망하는 사람은 운이 없었다고 한다.

 

조금 더 전문가처럼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석을 한다.

국제정세의 변화를 예측하는 조사가 부실하였다느니

사람을 관리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마케팅 홍보 기법이 좀 떨어졌다느니...

 

그런 점으로 보면 모세는 정말 억울하다.

40년을 이집트의 왕자로 최고의 여건에서 능력을 갈고 닦았다.

싸우는 방법, 용병술, 사람 다루는 법 등등

나이 마흔 된 지금이야말로 활짝 핀 꽃과 같은 전성기다.

많이 기다리며 준비해 온 날들이 끝나고 마음껏 용맹을 펼칠 때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유모 엄마로부터 배우며 품어 온

이스라엘백성의 해방을 위해 자기가 주동이 되어 일어설 때라고 결심했다.

그가 공연히 힘자랑으로 히브리노예를 도와 이집트병사를 죽인 것이 아니었다.

그건 우연도 아니고 이미 하나님을 알고, 벼르고 있던 일이었다.

 

그러나, 모세의 판단과 결심과 행동은 무참히도 버림 받았다.

모든 지식과 힘을 다 갖추었기 때문에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이 고된 노예의 역사를 종지부 찍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사건을 터뜨리고 나니 딴판이었다.

 

같은 동포라고 생각했던 다른 노예는 나도 죽일거냐고 따지고 덤비고

자기를 인정하리라 기대했지만 누가 너를 우리 지도자로 인정했냐고 빈정댄다.

자기가 나서면 일치단결해서 따르게 해주리라 믿었던 하나님은 잠잠하시다.

 

당황할 수밖에,

이런 상황은 예상도 못했던 모세는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따라주지 않는데 자기 출생의 비밀만 공개해버린 꼴이니

게다가 이집트 병사까지 죽여서 묻어버린 사실이 왕에게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살아남기가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 길로 모세는 광야로 숨어 들어가버렸다.

하늘도 동포도 싸늘하게 외면해버리는 판국에 버티고 있을 재간도 없고

의욕도 생기지 않는 게 당연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모세만큼 적임자도 없고

신앙심에 불타는 자발적 행동을 할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왜 그렇게 버림 받아야 했을까?

 

광야를 떠돌며 다시 40년을 사는 동안

모세는 두 아들을 낳았고, 첫째는 게르솜’- (나그네)이라고 지었다.

둘째는 엘리에셀’ -(하나님이 돌보신다)라고 지었다.

 

한때 찬란한 왕궁에서 칭송받는 완벽한 왕자로 살던 부귀영화에서 떠나

모래바람 먹으며 뜨거운 햇살아래 양이나 치면서

이제야 인생의 참 본질이 단지 나그네임을 깨달았다.

황제로 살다가 가던, 사막의 거지로 살다 가던, 사실 인생의 종말에서는

비교할 차이도 없는 단지 나그네임을 느낀 것이다.

대개의 부모들이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자신의 철학이나 바람을 담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법칙으로 비추어본다면!

 

만일 그가 단지 패배주의에 빠지거나 원망의 마음 뿐이었다면

둘째에게 엘리에셀 -(하나님이 도우신다)라고 지을 리 만무하다.

될데로! 라든지, 아님 버림받은 몸! 이라든지 그랬을거다.

 

모세의 나이 80이 되었을 때,

이제 자신은 단지 늙고 말도 잘못하는 보잘 것 없는 양치기에 불과하다고

아무 용맹무쌍도 없고, 야망과 자신감이 넘치지도 않는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은 그 모세에게 이스라엘 대이동의 적임자로 불렀다.

 

당연히 그가 이전에 배우고 쌓았던 모든 학식과 지혜들이

그 대민족을 이동시켜 가나안으로 가는데 큰 쓰임이 되었을거다.

그냥 겸손하기만한 범부가 아니었다.

 

,,체에 자신을 낮추고 먼 세상을 바라보는

묵상의 힘까지 갖춘 완벽한 일꾼,

온갖 경험을 사사건건마다 사용할 줄 아는 진정한 지도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주 그러신다.

어쩌면 늘 그러시는지도 모른다.

재주와 의욕을 남보다 많이 가졌다고 당당할 때는 사용하지 않으시고

무엇인가 자신들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조금은 풀이 죽었을 때,

그때 하나님은 부르시고 일을 시키신다.

 

나도 예전에 듣고 읽은 것을 모두 내 것 된 신앙인줄 알고,

겁도 없이 이것저것 설계도만 잔뜩 그렸었다.

직장도 접고 다들 말리는 아이들 교육문제, 생계문제도 무시하고 시골로 갔다.

그리고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수시로 기도시간을 가지며

영혼만은 천국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 오래도 못하고, 잔잔하게도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려 자빠질 거라고는 손톱만큼도 걱정 안했다.

 

그러나 그 바람 들어간 공갈빵 같은 부풀음도 빠지고

내 뒤를 따르라!는 호령도 조심스러워지고 난 뒤,

이제 죽을 지경이 된 지금에야 오히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우리 사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는 말을 가끔씩 듣는다.

주위 아는 분들도 자기들의 일상을 돌아보는 기회가 된단다.

 

내가 하겠다고 설칠 때는 무심히 망가지도록 두시더니

죽을 지경되어 풀이 죽으니 사용할 데가 있으시단다.

~ 이해 못할 하나님의 타이밍,

 

우리는 모두 성공하거나, 혹은 실패했어도,

끝에 만나는 곳에서는 똑같은 나그네다.

부자로 살거나 가난하게 살거나,

건강하게 팔팔 살았거나 아픈 몸을 끌고 살았거나

어느 문 앞에서 만날 때는 아무 차이도 없는 나그네’...

 

모세는 광야로 가서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게르솜엘리에셀의 삶을 살았다.

지독히 핀트 안 맞는 하나님의 방식!

그러나 참으로 큰 좌절과 실패를 막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재철목사님의 사도행전속으로 312,’나그네 되어를 보면서

돌아본 생각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