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날마다 한 생각

정말 중요한건 지금부터다.

희망으로 2011. 7. 3. 00:45

순 우리말에는 어제오늘은 있지만 다음날을 말하는 단어는 없습니다.

내일이 있지만 그것은 한자 들어온 말로 올래()와 날()의 합성어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침도 있고 저녁도 있지만 점심은 없습니다.

그 역시 한자 들어온 말 점심(點心)을 빌려 쓸 뿐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그 이유가 너무 살기 바쁘다보니 어제와 오늘은 챙겨도

다음날까지 거론하며 살기 힘든 시절에 한글이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아침과 저녁, 두 끼 먹기도 힘들어

점심은 사용할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닌 가 했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간증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럴만한 일들과 깨달음,

또 받은 복들을 기억하며 되새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증거리가 있기를 바라기도하고,

그럴 일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신앙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어쩌면 다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간증은 지나간 것들입니다.

간증을 하고도 바로 다음 순간부터도 변할 수 있습니다.

실재로 그런 사례를 주위에서 보기도 합니다.

 

하물며 성경에서조차 그런 경우를 봅니다.

처음 왕으로 기름 부움을 받았던 사울왕이 그랬습니다.

전에도 후에도 그만한 영화가 없을 거라는 솔로몬조차 천명의 여자를 두고

온갖 신을 모시는 산당을 허락하기도해서 자식 대에서 모두 회수 당했습니다.

눈물의 기도로 해를 뒤로 돌리기도 한 히스기야왕도 추가로 살게 된 15년에

하나님을 많이 실망하게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이미 지난 어제나 오늘의 간증()이 아니라

내일도 계속해서 우리를 바로 세워줄 말씀의 지혜와 순종일지도 모릅니다.

일평생 아무런 내세울 간증거리 한 번 없어도,

날마다 말씀을 따라 늘 겸손히 성실히 살아가는 분들이

더 기뻐하는 자녀일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세상을 바꾸는 일꾼은 그런 분들일 것입니다.

 

간증을 할 만한 반짝이는 순간도, 놀라운 기적의 순간도

계속되는 시련과 고난에 주저앉을 때 어쩌면 더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사탄의 목표가 되어 일관성 있게 버티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자주 그런 위태로움을 느낍니다.

마지막 날까지 이 마음, 이 감사를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 것인지를 확인할 때마다 지나간 간증은 아예 작아집니다.

하늘아버지! 잠시도 제게서 눈 돌리지 마시고 좀 지켜주세요!’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