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가는 길/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

하루 여행을 마치고 (긴 글)

희망으로 2011. 4. 15. 18:47

하루 여행


- 새벽

지난밤에 늦게 잠이 들었는데 다행이도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3월말에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그 뒤로 몸살이 장기 숙박한 것처럼 자꾸 잠이 오고 무겁습니다. 오늘은 금요일, 성 금요일이 아니라 목욕예약을 하느라 새벽 일찍 줄을 서야합니다.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10명 정도에게 주어지는 침대 목욕 시간을 잡느라 5시부터 나와서 줄을 섭니다. 우습지요? 재활병원 특성중 하나입니다. 씻고 큰 일을 보는데 보통 한시간에서 두시간 정도 걸립니다. 몸이 장애가 심한 분들만 누워 침상을 사용하는데 앉아서 하는 곳보다 편하다보니 자꾸 사람들이 선호하게 되어 이런 현상이 생겼습니다. 주간중에는 치료관계로 잘 시간을 못 내던 분들이 주말과 주일에는 몰립니다. 간신히 내일, 토요일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 한시간을 예약했습니다. 5시 50분에 줄서서!

안개가 끼었는지 비가 오려고 하는지 많이 우중충하고 병원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등도 뿌옇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있습니다. 하루를 또 주겠다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밤사이에 잠이 들었을때는 똑같아 보이던 사람들이 눈을 뜨는 순간부터는 같지 않습니다. 비록 불편의 정도는 차이가 날망정 대부분 잠이 들면 사람들은 차별 없이 비슷해집니다. 누구나 꿈을 꾸고 신분도 재물과 명예의 차이도 사라지고 달콤한 위로와 회복의 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새벽이 오고 일어나면서부터는 누구는 환자로 하루를 시작하고 누구는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나 간병인이 되기도 합니다. 일을 시키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높은 사람과 낮은 직급의 조직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다름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 낮

바쁘게 정해진 치료 과정을 따라 옮겨가며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부리나케 먹습니다. 전전날은 국립암센터로 가서 정해진 피검사와 소변 검사를 하고 또 가방하나만큼의 약을 타왔습니다. 좀 나아졌다 다시 떨어져버린 상태가 이번에는 오래도록 회복이 잘 안되고 있는 중이라 서로가 마음이 무겁지만 언제나처럼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이 고마웠습니다. ‘혹시 외국이나 다른 연구소 같은 데로 가실 계획은 없으신 거지요?’ 갑작스런 제 질문에 선생님이 왜그러는지를 묻습니다. 같은 병을 가진 다른 환자가 담당선생님이 미국으로 가버리셔서 병원도 옮겨오고 선생님도 바뀌어서 애를 먹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음 놓으라고 하시면서 집사람이 더 좋아져서 회복되는 걸 꼭 보여 달라고 당부하십니다. 참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신 ‘근심 중에도 기쁜 일을 주신다’는 성경의 약속이 이루어졌나 봅니다. 많이 핀 벚꽃을 무척 보고 싶다는 집사람을 위해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여주려고 했는데 너무 지쳐 힘들어해서 결국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애쓴 데로, 애쓴 만큼 반드시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세상살이입니다. 다른 일에도 흔히 그렇듯... 

오늘은 또 다른 병원인 동국대학교 안과를 갔습니다. 벌써 발병한지 일년이 되었는데 검사 결과는 오른쪽은 거의 회복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간호원이 시력을 검사하는데 시력판은 아예 안보여서 앞에서 손가락을 펴고 몇 개인지 묻습니다. 30센치도 안떨어지게 눈앞에서 손가락 두 개를 펴고 묻는데도 말을 못합니다. 한참토록... 결국 하나를 펴서 더 가까이 바짝대고 보이냐고 물으니 간신히 하나라고 말합니다. 다시 좀 떼어서 손가락 두 개를 펴니 또 안 보인답니다.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고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달만 약물치료를 하고 변화가 없으면 최종적으로 주사기로 동공 뒤쪽에 물도 빼내서 검사하고 약도 주입하기로 했습니다. 그 치료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고 영구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어질수도 있는 마지막 결정이라고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는 아내와 나는 그러겠다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두 눈으로 보던 세상을 하나에 의지해서 살아야합니다. 그것도 제3번 시신경이 마비가 와서 동공 운동이 100% 안되는 왼쪽 눈에 의지해서 복시 상태로 말입니다. 한걸음 좋아지기가 이렇게 힘이 듭니다. 이러다 뒤로 가는 건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생깁니다. 그러나 아내는 괜찮다고 나를 위로합니다. 어제도 그제도 이런 상태로 지냈는데 더 지낸다고 무슨 큰일 나느냐고 하면서...


- 저녁

좀 우울해졌던 아내는 기어코 눈물샘이 또 터졌습니다. 그럴줄 알았습니다. 본래 감추고 참는다는 슬픔은 새빨간 거짓말인 것을 저도 압니다. 언젠가는, 무슨 일에 기대서도 울어야 비워지는 법칙인걸 설마 이만큼 산 제가 모르겠습니까. 우는 도화선은 딸아이와의 어제 저녁 통화내용 때문 이었습니다. 아는 분이 한동대 여름 영어캠프를 할인케이스로 신청해서 같이 지낼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해서 미리 의사를 물어 보다가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은 돈도 비싼데 부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 하나는 그곳에 오는 아이들은 다 넉넉하고 부자집에서 오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것도 부담이 된다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자기 때문에 아이가 주눅 들고, 좁은 컨테이너에서 부엌도 욕실도 없이 불편하게 살게 해서 친구들집을 갔다 올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 같다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아이 아니라고, 하나님이 돌보셔서 구김살 없고 사리판단을 잘하는 착한 딸이라고 했지만 눈물은 이미 그치지 않을 만큼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사는 그림자가 길어집니다. 모두가 그렇듯 하루에 쌓인 고단함은 저녁이면 더 허리가 휘어지고 힘든 날은 더 길어지는 법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생명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참 견디기 힘듭니다. 이 세상을 힘들게 참고 살아도 다음 세상도 힘들거나 아예 없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으니까요.
    
돌아오는 길에 농협 자동화 박스를 들렀습니다. 요즘 농협체크카드가 사용 중지되어서 생필품 살 때마다 현금으로 주면서 샀더니 돈이 하나도 없어서 얼마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통장에 해와달 이름으로 얼마가 입금이 되어 있습니다. 순전히 이유를 만들어서 보내주신 것 아닐까 생각하며 그래도 고마웠습니다. 집사람과 웃으며 기뻐하고, 뭘 사줄까? 호기를 부려볼 수 있는  거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생각도 못하고 바라지도 않을 때 하나님은 무엇인가를 주십니다. 이제 그만 울어라! 하시면서, 그렇지요. 세상엔 사람의 숫자만큼 힘든 사연이 있고 또 그 숫자 만큼, 아니면 더 많은 숫자 만큼 다시 살아내는 힘을 주는 사연이 있습니다. 때론 인정하고 때론 부정하여서 그렇지 꼭 있습니다. 그러니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하나를 만나고 긴 그림자를 줄여봅니다.


- 밤

아내도 나도 지친 마음으로 공감을 해봅니다. ‘당신은 눈이 안 좋고 나는 이가 안 좋고, 사람은 왜 이렇게 구석구석이 불완전할까? 늘 아프기도 자주하고 몹쓸 병이 들 부위도 무지 많고,’ 그러면서, ‘그래서 사는 것은 고해, 고통의 바다라고 하잖아’ 아내가 대답합니다. 벌써 한참을 새벽에 기도회도 못가고 몸살을 달고 사는 사람처럼 시름시름 늘어집니다. 늘 앉아서 기도하던 의자에 먼지가 쌓였겠다 실없는 생각도 떠오릅니다. 혹시 나를 기다리다 하나님도 먼지 쌓인 건 아니겠지? 어서 툭툭 털어서 시침 뚝 떼고 앉고 싶습니다. 어차피 이만큼까지 왔는데 이제 처음 생긴 고난처럼 응석을 부리기도 민망합니다. 그렇다고 또 초보자처럼 긴가 민가 고개를 갸웃거리는것도 얼굴 간지럽습니다. 그게 언제 써먹던 수법인데 새삼스럽게 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조금만 더 버티면 익숙해질거야 나아질거야 그러면서 살아온 시간이 아깝습니다. 그래서라도 또 다른 세상이 시작되는 이 땅의 끝까지 잘 걸어가고 싶습니다. 그 곳에 도착하면 만신창이 되어버린 이 몸과 마음은 훌훌 벗고 다시는 상하지 않는 몸과 마음으로 바꾸어주실 것을 굳게 믿어봅니다. 안주시면 그때야말로 진짜로 젓먹던 힘까지 다해 떼를 쓸것입니다. 누워서 떼굴떼굴! 우리 아이들에게서도 못 본 온갖 방법으로,  
        
오늘도 하루는 길고 먼 여행 같았습니다. 늘 같은 숫자의 시간으로 돌아 오고, 같은 병실에 같은 식판으로 밥을 먹지만 결코 같은 날이 없었던 하루가 지나갑니다. 다시는 돌아 오지도 못하고 되풀이 해볼 수 없는 그런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 하루도 나중에 우리의 영혼이 평안에 들어갈지 못 갈지를 계산하는 자료가 되겠지요. 그렇게 귀한 하루인데 지나갈 때는 늘 불평과 비명으로 얼룩지게 보내곤 합니다. 미련스럽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