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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거짓말이라는 포장지에 쌓여...

희망으로 2011. 3. 25. 07:27

사랑은 거짓말 포장지에 쌓여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덥고 비도 많이 왔다. 사내 둘로 늘 전쟁터이던 집에 결혼 초부터 그렇게 바라던 딸이 10년만에 늦둥이로 태어난 축복의 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아이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별명으로 불렀고 지금도 휴대폰에는 그렇게 담겨져 있다.

 

그러나 계절에도 겨울이 있고 봄이 있듯,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사람에게는 기쁜 날과 힘든 날이 교대로 있는 게 법칙이었던 것 같다. 백일이 채 안되었던 7월말 휴가철이었다. 우리 결혼을 주례를 보아주고 20년이 넘는 세월을 신앙의 부모 노릇을 해주던 목사님이 독일 선교사로 계시면서 잠깐 한국에 들어오셨다. 제자 훈련과 공동체로 모임을 가지던 몇가정이 여름 수련회 겸 딸아이 나눔이 유아세례를 받기로 했다. 한 형제가 가지고 있던 콘도 회원권이 있어 미리 예약도 했다. 강원도 삼포 코레스코콘도에서 34일로!

 

오랜 위궤양과 직장암으로 판정이 났지만 너무 연로하시고 체력도 떨어지셔서 수술을 않기로 하고 계시던 아버지를 평상시 찾아뵙던 것처럼 들러서 하루 밤을 잤다. 충주에서 늘 한달에 하루씩 올라왔고 시장을 좀 보고 하루씩 자고 내려갔던 그대로! 그리고 다음 날 강원도로 출발했다. 전날 말씀은 좀 별로 없었지만 잘 다녀오라고 더운데 아이 조심하라고 하셔서 특별히 걱정은 않고 그러겠다고 집을 나섰다. 단지 다른 때는 바로 위 형님이 도착하면 늘 돌아가던 것은 하지 못했다. 너무 일찍 출발하느라,

 

그러나 그것이 큰 이유가 되고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강원도에 도착하고 유아세례도 마치고 다음 날 비가 오는 데도 모래사장에서 축구를 하면서 지쳐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가 뛰어와서 급한 전화라고 넘겨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다. 모든 행사는 취소되고 다섯 가정이 넘는 사람들이 대충 씻고 그 길로 밤 귀가 길에 올랐다. 낮에 종일토록 뛰고 지옥도로라는 여름 휴가철의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 왜 그렇게 멀고 힘들었는지... 다음 날 새벽에야 도착한 장례식장은 물바다가 되어 차가 잠겼다가 간신히 빠진 뒤라고 엉망이었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우리를 보냈을까? 그 정도 힘드신 상황이라면 좀 붙잡아도 되었을 텐데, 왜 그냥 가라고 하셨을까? 삼복더위에 치른 장례를 마치고도 오래도록 의문이 가지 않고 서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15년쯤이 지난 지금 조금씩 이해가 된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우리를 보냈던 아버지의 심정이!

 

아내는 몇 년 전부터 심한 희귀난치병에 걸려서 사지가 마비되고 병원을 떠나지 못한 채 24시간 나의 간병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대소변도 자율적으로 보지 못하고 장이 마비가 되었다. 폐도 한쪽이 이미 마비가 되었고 오랜 침대 생활로 온 몸의 구석구석이 망가져가기 시작했다. 눈도 양쪽이 다 고장이 났다. 이 병이 원래 NMO(시신경 척수염), 또는 데빅씨병이라 부르는 눈이 멀어지는 자가면역질환이라 예상도 했지만... 한쪽은 눈동자가 마비고 한쪽은 망막 동맥폐쇄로 실명에 가깝다. 1년을 치료 받았지만 거의 회복불가능으로 최근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나도 군대 복무중인 두 아들과 홀로 생활하고 있는 중학교2학년짜리 딸아이에게 자주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응급실을 몇 번이나 가면서도 괜찮아하거나 조금 불편하다는 정도로 둘러친다. 물론 아이들이 엄마 병을 알고는 있지만, 아내도 자주 나를 속인다. 몸 속의 통증이 심한데도 참고 참으며 말을 안 하다가 못 참을 지경이면 이미 응급실에 누운 뒤였다. 오죽하면 간호사들이 아내 말을 못 믿는다고 회진 오면 나에게 묻는다. 열은 없는지 밥은 좀 먹었는지, 속은 괜찮은지 등 등.. 한편으론 이해를 한다. 바닥끝까지 가 있는 이 힘든 날에 날마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미안해서 그럴까? 하고, 나도 아이들이 비관하거나 너무 마음 아플까봐 거짓말 하는데 그 마음을 왜 모를까.

 

오늘도 가족 간에 사랑은 거짓말이라는 포장지로 예쁘게 쌓여서 배달이 된다. 하나님은 이 거짓말을 용서해주실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