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예약을 해두었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병실이 비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진짜로 가는 거야?’
아내는 아직도 조금은 불안해하며 물어본다.
참 먼 거리를 돌고 돌아 드디어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받으러 가게 되었다.
처음 발병 후 일곱 번이나 거듭된 재발로 죽은 오징어처럼 늘어져버린 몸을 끌고
삼성 응급실만도 다섯 번, 중환자실 두 번, 열군데도 넘는 병원을 전전하며 씨름했다.
완전히 나을 수 있는 치료 방법도 치료약도 없다는 한국 최고의 삼성병원 교수님께
몇 번이나 선고를 받았고 겉이고 속이고 좌절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비슷한 병으로 항암치료를 받은 사람의 권유로 실 날 같은 희망을 가지고 예약을 해두었지만
계속 어긋나기만 한지 삼 개월이 넘어가던 참이다.
처음에는 돈이 마련되지 않아서,
KBS1 사랑의리퀘스트 프로그램에서 지원해주어서 비용이 마련되니 또 재발, 응급실 중환자실로, 나을 만하니 입원실이 없고, 입원실이 나오니 간 수치가 너무 높아져서 응급 치료차 또 보류...
그러는 동안 지쳐가고 있던 나와 아내였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하시려고 이렇게 빙빙 돌려서 몰고 가시는 걸까?’
부랴부랴 퇴원 처리를 하고 병원을 나서니 비가 내리고 있다.
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안산 인천을 지나 일산으로 달렸다.
돈 아낀다고 앰브런스를 기어이 안타겠다는 전신마비 아내에게 졌다.
10년 된 LPG 승용차에 태우고 쓰러지는 몸을 바로 잡으며 5분마다 괜찮냐고 물으며...
길을 몰라서 헤매느라 더 늦어지는 바람에 좀 속을 태웠다.
바닥난 가스를 충전해야 하는데 충전소는 안보이고 이래저래 급한 마음에 차만 흔들린다.
정문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데 빗방울은 뿌리고 바람은 불고...
짐은 등에 메고 몸을 못 가누는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는데 쉽지 않다.
차만 도착하면 다가와서 부축하는 삼성과 달리 도와주는 직원도 없다.
바람에 문은 닫히고 쳐지는 아내 몸을 끌어안고 씨름하는데 휠체어는 밀려 돌아가고...
간신히 입원 수속 9층 병실에 눕혀놓고 차를 지하에 주차하고 나머지 짐을 메고 올라오니
저녁 밥 시간은 이미 지나서 배식은 안되고 몸은 녹초, 배는 꼬로록...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하나 김밥하나사고 냉동만두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때우는데 눈물이 핑 돈다. 창피해서 숨겨가며 닦아가며...
다리 펼 틈도 안주고 연달아 불러대는 간호사와 주치담당선생님의 문진과 서류들...
그러나 본격적인 치료를 다음날부터 해보자는 교수님의 자상한 설명에 지쳤던 몸과 마음이 조금은 평안을 회복했다.
그렇게 첫날이 갔다.
오늘은 새벽부터 채혈공세가 심하다.
간밤부터 금식해서 배고픈 집사람을 세 번씩이나 채혈했다.
침대로 9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서 CT, MRI, 초음파 등 세 번을 사진촬영하고
돌아오니 벌써 한 낮, 간신히 점심밥을 먹었다.
이어 혈장교체시술을 위해 정맥에 관시술하러 또 내려갔다.
목 아래 오른쪽 가슴 윗부분에 관을 삽입하고 올라온 아내는 좀 무서워했다.
피를 묻힌 환자복을 갈아입히지도 못한 채 좀 있다가 다시 3층 혈액분석실로 직행,
혈압기를 달아놓고 혈장교체기에 호스를 연결, 혈장교체를 시작했다.
이틀에 한번씩, 한번에 4시간 가까이씩 그렇게 8회 정도 할 예정이다.
다행히 새로 교체된 기계로 시간이 많이 단축 될거라는 시술간호원의 말에 좋아했는데 문제가 바로 생겼다.
100정도 되던 혈압이 시작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90에 이어 80중반으로 떨어지고 교체속도를 내렸지만 계속 혈압은 떨어졌다.
76, 74까지 떨어져 또다시 속도를 더 내리고...
결국 혈액분석실 직원이 신경과 주치의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좀 쉬었다 할 수 없냐는 신경과 선생님의 제안에 의료기계 업체와 의논,
중간에 세웠다 할 수는 없다는 답변에 다시 또 의논, 70이하로 떨어지면 중지하기로 결론,
우려하던 일이 실재로 닥치는가 싶어 마음이 졸여왔다.
도움이 될까싶어 허락을 받고 집사람의 두 발과 다리를 열심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30분 정도를 70 중반에서 멈추더니 드디어 82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다시 20분 정도 후에 84 86으로 오르고...
마사지로 온 몸과 이마에 땀은 흐르는데 혈장이 계속 교체가 되는 것만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세 시간 정도에 무사히 끝났다.
처음 예상보다는 줄었지만 새 기계의 표준보다는 좀 늦어져버렸다.
저녁7시30분이 넘어서 끝나고 병실로 올라오니 아내와 나는 또 녹초에 허기가 몰려온다.
늦은 밥을 먹자마자 또 피를 빼러 오고 소변주머니 교체하러 왔다갔다.
피에 묻은 환자복 갈아입히고 굳어진 팔다리 마사지로 풀고...
이렇게 앞으로 한 달여를 보내게 될 것 같다.
이 교체가 끝나면 항암주사 치료를 상태 보아가며 또 진행할 것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을 거고 환자의 체력도 따라가기 힘들 거고,
사실은 오늘 새벽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눈뜨기 직전 새벽에 집사람과 내 안경이 부러지고 알도 빠져 깨어져 버렸다.
나는 꿈일지도 모른다 떠올리면서도 무언가 두려운 마음으로 조각들을 찾아 모았다..
하도 마음에 걸려 얼른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소중한 가족이나 귀중한 것을 잃는 꿈이란다.
어떤 사람은 시험에 떨어졌다고 말하기도하고..
혈장교환 도중에 혈압이 뚝 떨어질 때 사실 속으로 철렁 내려 앉았다.
혹시 그 꿈이 이런 건가?
아침에는 떨쳐버리자 하면서도 바로 기도를 했다.
내가 언제 그런 것 믿고 여기까지 왔나 속으로 몇 번을 다짐하면서...
아직 하루가 다 가지는 않았지만 다행하게도 넘어가는듯 합니다.
집사람은 일어나고 걷는 꿈을 세 번이나 꾸었는데 아직 그 꿈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불길한 꿈이 먼저 맞아들어 간다는 건 너무 억울하다.
다시 돌아보니 오늘도 하루가 길고 고단했다.
그리고 새 희망과 꿈을 가져보는 하루이기도 했다.
지금 집사람은 고단함과 통증으로 잠이 들었다 깨다가를 반복한다.
때론 집사람이 잠이 들고 다시는 깨지 않았으면 더 좋겠다 싶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내 권리도, 내 능력도 아니다.
오직 사람을 창조하고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그 분만의 권리다.
우리는 다만 서로 사랑하고 나눌 권리만 타고 났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는 길이 없을까?
너무 힘들 때면 한번만 그 계획표를 훔쳐보고 싶다.
그래도 못 믿고 못 견딜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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