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가던 것들이 하나하나 다 감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화장실을 갈 때 마다 감사를 느낍니다.
필요할 때 화장실이 바로 가까운 곳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저절로 감사합니다! 하게됩니다.
아무리 큰일도 급한 일 보다는 다음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참으로 감사할일입니다.
그러나 더 감사하는 것은 내가 혼자 힘으로 걸어와 혼자 힘으로 대소변을 볼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몰랐고 당연했습니다.
아내의 대소변을 7-8개월이 넘도록 매번 호스로 손으로 빼내면서 뒷바라지를 하다보니 생긴 변화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많이 감사할일인지 점점 크게 생각됩니다..
병원을 열군데도 넘게 다니다보니
열에 둘 셋 정도가 대소변이 혼자 힘으로 힘들어 기저귀를 차거나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사람이 비교적 심한 상태로 다닌 병원들이라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같은 시각에서 보면
밥을 잘 먹을 수 있는 것,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
걸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것,
세수나 샤워를 혼자 할 수 있고, 등등
모두가 대단한 일도 아니고 누구나 하는 흔한 생활의 하나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것을 스스로 하지도 못하고
점점 심해져가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자주 보다보니 어느 것도 당연한 것이 없어졌습니다.
심지어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편하게 숨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내가 호흡마비로 중환자실에 며칠을 있는 동안 내내 느꼈습니다.
지난 추석 명절을 병원에서 보내는 동안 여러 감정들이 쉴 새 없이 오갔습니다.
더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부터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게 되는 건 아닐까
내 인생에 자유란 없어진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죽지 않고 견디며 살아 낼 수 있을까? 등...
지금 있는 병실에 바로 옆자리에 37살 먹은 처녀가 중증으로 3년째 누워있습니다.
뇌수술을 세 번이나 했는데 목으로 호스를 꼽고 먹는 것과 가래를 빼내다가 지난 달에는 목을 봉했습니다.
그뒤로 계속 먹을 때마다 숨이 막히고 가래가 쌓여 수시로 비상이 걸립니다.
추석날은 병원에 남자 직원들조차 잠시 없어 간호사의 숨 넘어가는 급한 도움 요청에
내가 등 뒤에서 팔로 가슴아래를 팔장끼고 위로 쓸어올려 토하게 했습니다. 간호사들과 함께,
그런데 그 환자를 간호하는 사람이 칠순된 아버지입니다.
3년을 버티다 이제 지칠대로 지쳐 대소변을 치우고 목욕시키고 밥먹이든 일을 다하다가도 수시로 내뱉습니다.
... 죽어라! 이제는 내가 죽겠다! 소리를 탄식조로 합니다.
부인은 오래전에 주식투기를 하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이혼하셨고
공무원으로 딸 다섯인가와 아들 하나를 다 대학보내고 키우셨답니다.
그런데 막상 병난 딸 간병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겁니다.
외국가고 의사와 결혼하고 딸 자랑을 많이 하시지만 내가 보기엔 그보다 중요한 문제가 해결이 안됩니다.
아버지의 건강조차 보장이 안되는 것을 보면 병원비만 보내주는 걸로 해결될 일은 아닌듯합니다.
하루종일 기독교방송을 틀어놓고 사시며 '딸아 된다 해보자!' 하시면서 힘을 내어 간병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3년 가까이 끊었던 술을 다시 입에 대기 시작하시는 모습을 보니...,
칠순되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라도하면 그 딸은 어떻게 될지가 큰 짐이신가봅니다.
...그에 비하면 아내나 나는 비슷하게 살수있으니 한편 다행인가요?
서울 삼성병원 있을 때 현성이라고 19개월 된 아이가 같은 병실에 한참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놀다가 넘어져서 가볍게 병원을 갔더니 뇌종양이 발견되었답니다.
그런데 악성으로 진단되어 수술도 해줄 수 없다는 병원의 말에 눈물로 보냈습니다.
기적처럼 다니던 성당의 수녀님이 기도 중에 응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검사했더니 양성으로 진단이 바뀌어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깨어나지 못하고 50일을 중환자실에서 무의식 상태로 지냈답니다.
나는 아내가 불과 며칠을 중환자실에 있는데도 별별 생각이 다떠올랐습니다.
의자에서 새우잠을 자며 버틴 며칠이 몇 달 같기만 했는데 현성이부모는 50일을 어떻게 버티었는지...
그런데 그 현성이가 얼마나 성격이 느긋하고 잘 웃는지 내가 그 아이에게 흠뻑 빠졌습니다.
흰옷 입은 의사만 보면 울면서도 아픈 것도 잘 참고, 밥도 잘먹어주고, 하루 종일을 누워지내도 잘 보채지도 않더군요.
졸릴 때만 빼고는,
나는 현성이에게 손바닥을 비비며 쏘리 쏘리 하는 춤 동작을 가르쳤더니 들기도 힘든 팔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병실 사람들이 다 보면서 얼마나 신기해하고 기특해하는지...
현성이를 보면서 겨레 기쁨이 나눔이 우리 세 아이들이 큰 병 아프지 않으면서 커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또 생각나는 한분은 젊어서 선생님을 하시던 할머니이신데 머리뼈를 한쪽을 덜어내고 계셨습니다.
한쪽이 푹 꺼진 모양이 처음에는 좀 무섭기도 했습니다.
머리를 보호하는 단단한 바깥 뼈를 치워야 그 안에 수술을 하고 아물도록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더군요.
나중에 병원에 보관해놓은 머리뼈를 다시 씌우는 수술을 한답니다.
한번에 할수 없어서 다 아물면 다시 반대쪽 머리뼈를 덜어내고 또 수술을 할 예정이랍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선생님은 어찌나 명랑하시고 유머가 있으신지
보름간 같이 있는 동안 온 병실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이 활짝 펴졌습니다.
일본어와 영어가 능숙하셔서 아침마다 영어로 인사하시고 자기 소개도 일본어로 하시는 등 쉬지 않고 장난도 치셨습니다.
심지어 침대 올리고 내리는 리모콘을 전화기라고 들고서 여기저기 전화하셔서 배꼽을 쥐고 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뇌 수술 후휴증으로 신경이상이 와서 수시로 벌레가 보이고
심지어는 아이가 보이기도 하시는 등 가슴 아픈 모습도 보았습니다.
순간 순간 치매기도 오셔서 그럴때마다 간병인에게 미안해하고 잘못했어! 하시며 기죽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집사람은 그 할머니선생님에 비하면 정신이 늘 맑고 또렷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직은 머리 부분에 이상도 없고 수술할 일도 없으니 참 감사할일입니다.
그리고 숱한 환자들을 돌보는 가족들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정성어린 가족도 있었고, 지쳐서인지 학대에 가까운 폭언과 구박을 하는 가족도 보았습니다.
이도저도아닌 멍해져서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우울하고 먼곳만 보는 가족들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참 힘들어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공통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때때로 저도 무섭습니다.
정작 아내가 잘 유지를 해줄지도 문제이고 제가 같이 그 시간동안 잘 견뎌낼지도 불안합니다.
우리 두사람이 다 잘 버티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잘 해줄지,
필요한 비용이나 살림들은 해결해나갈수 있을지도 불안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감사한지 몰랐던 많은 것들이 감사한 대상으로 바뀐 만큼 예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힘도 생기겠지요.
그저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지혜를 배우며 살아가보는 중입니다.
설사 내일은 내가 못견디고 주저 앉더라도 그것은 내일 생길 일이지 오늘은 아니니까요.
내일 불행을 오늘로 당겨 올 필요까지는 없겠지요.
모든 힘든 분들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세상을 떠난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던 소중한 오늘이 우리에게 있으니까요.
(추석 날 뜬금없이 인도로 가고 싶었습니다.
종이도 없어 휴대폰 메모에 적었습니다.)
갠지스 강가로 가고싶다.
산 사람 죽은 사람들과 함께 계단을 내려가
갠지스 강에 몸을 담고 싶다.
찌들린 마음도 내려보내고
고단함에 너덜해진 육신의 찌꺼기도 씻어보낼수 있다면
탁한 물이면 어떻고 냄새나면 어떠랴
푹 들어갔다 나올 땐
그 분이 요단강에서 나올 때 처럼
하늘이 열렸으면 좋겠다.
수증기처럼 가벼워져서
하늘로 날아가고 싶다. 자유롭게
형체도 없이 무게도없이...
'아내 투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만 내리고 싶은 투병생활... (0) | 2009.10.13 |
---|---|
해찬솔님의 모금 제안 글 (0) | 2009.10.05 |
[스크랩] 때론 능숙한 보호자가 되고싶은데... (0) | 2009.09.28 |
벌써 추석이 다가오는데 우리는 아직도 떠돌고있네요... (0) | 2009.09.23 |
오늘은 조금 바쁘고, 조금 화가나고, 많이 감사한 날!|투병생활,일기 (0) | 2009.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