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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울증 진단은…‘학습된 무기력 우울증’

희망으로 2023. 1. 31. 18:40

‘학습된 무기력 우울증’

5년 간격으로 두 번이나 지독하게 힘들었던 공황장애 우울증으로 시달렸다. 2013년, 2018년. 그리고 어김없이 세번째로 위기감이 느껴지는 딱 5년만인 2023년을 맞이 했다.

다시는 겪고싶지 않은 그때의 날들, 처음에는 처음이라 힘들고 두려웠다. 밤이면 밤마다 잠에 들면 악몽 가위에 눌려 식은 땀을 흘리다 깼다. 안 자려면 온몸이 밀려오는 탈진 비슷한 고단함 뒤틀림으로 몸도 피곤했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불길한 미래가 파탄을 내는 상상이 목죄어 오는 것이었다. 숨은 안마셔지고 가슴이 아팠다.

그럼에도 쉽게 정신과를 갈 엄두를 못냈다. 한 번 약을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소문이나 정신과 치료 경력이 남에게나 나 자신에게도 부끄럽고 약점 같고 자존심도 상해서 아예 대책중 하나로 끼지도 못했다. 그런데 열흘 한 달을 그렇게 사니 체중은 6킬로 이상 빠지고 밤낮이 구분이 안가도록 비몽사몽 짜증만 나고 예민해져서 견딜 수 없었다.

두 번째 발병한 증상은 처음과 또 달랐다. 여기저기 내 건강에 심각한 빨간 경고 진단이 나오면서 그게 심지에 불을 붙였다. 위암증상, 황반변성, 간수치 입원 직전 상승, 갈수록 돌아가며 병원을 다녀도 끝이 없었다. 종일 죽음을 계속 생각하며 무슨 방법이 아프지 않고 비참하지 않을까 찾았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 가족에게 상처를 많이 안주는 방법일지 고심할 정도였다.

그러다 ‘에이, 아무 방법이나!’ 그러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존경하는 분과 마지막 통화라고 생각하며 대화를 하다가 철렁하는 심정으로 내려와 빨리 정신과로 달려 갔다. 처음 회복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고 병원 가는 것도 한번이 어렵지 두번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석달 안팎의 치료를 두 번 받았다.

계속 약을 복용하지 않은 것이 원인일까? 쉽게 완치가 안되고 재발을 잘 하는 통계가 말해주듯 최근에 다시 종종 밤에 뒤척이고 무섭고 슬프고 불안한 생각들이 몰려와 날을 새곤 한다. 경력자가 되면 요령도 생기고 회복의 기억도 힘이 된다고 어느 책에서는 말했는데 아직 그 정도 수준은 안되나보다.

겁도 나고 슬슬 이전의 기억이 되살아나 우울증에 대한 여러 책을 뒤적이다 내가 해당하는 경우를 알았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정신과 전문의로서 대학병원, 정신과 전문병원, 개인 의원 등에서 수천 명의 환자와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치료해온 김한준, 오진승, 이재병 정신과 전문의 3명이 쓴 <오늘도 우울증을 검색한 나에게> 에서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보았다.

[개인이 회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부정적인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어떠한 시도나 노력도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결론지으면서 무기력해지는 현상입니다. 다시 말해 환경적 요인(신체적 질병, 경제적 원인, 대인관계, 군입대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지속될 때, 개인의 노력으로 이를 회피하거나 해결하기에 한계를 느끼면 그 사람은 학습된 무력감을 느끼고, 이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해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내 경우에 맞는 우울증 발병의 원인으로 가장 와닿았다. 내가 어떻게 바꾸거나 고칠수도 없으며 피하지도 끝낼 수도 없는 환경. 딱 그랬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면서 그냥 버텨야 하는 병원에서 먹고 자는 간병 15년이라는 긴 세월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버티는 힘이 바닥날 시기마다 몸살처럼 나를 흔들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나라의 가장 큰 종합병원도 못고치고 세계 어느 나라도 치료법이 없다고 선언한 난치병. 그 병을 달고 사는 아픈 아내를 죽일 수도 살릴 길도 없는 환경에서 곁에 산다는 것. 등에는 짖누르는 바위를 짊어지고 버티며, 사방에서는 끝도 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맨손으로 밀어내며 물속에 침몰하지 않으려는 반복만 해야하니…

그래도 고맙다. 정신과 우울증 분류에 들어가고, 학술용어도 있는 경우라니 아주 캄캄하지는 않다는 반가움이 느껴졌다. 내가 유난히 심지가 약하거나 못나서가 아니고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경우라니. 그래서 완치가 보장없는 우울증 반복에도 불구하고 약과 상담 운동 등 여러 치료법을 병행하며 견디면 어느 날은 환경이 바뀌겠지. 그때는 다시는 재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들었다. 부디 그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