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기도 33 - ‘까먹지 말고 쫌…’
많은 것들을 까먹고 까먹고 또 까먹으며 삽니다. 주로 좋았던 일, 행복했던 날, 고마웠던 분들을 까먹습니다. 정작 더 먼저 잊고 털어버려야할 나쁜 일, 미운 사람, 불행은 행여 잊을까봐 꼭 붙잡고 힘주어 웅켜쥐면서 말입니다. 어리석음은 인간이 타고난 본질이라고 누가 그럴때 나는 웃었는데 살아갈수록 동의를 하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그 해도 다른 해와 다름없이 아내와 병원생활을 지겹다며 원망을 꼭꼭 씹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한 통의 119구급대 직원의 전화를 받기전까지…
“선생님 자녀가 지금 구급차로 ㅇㅇ의료원 응급실로 가고 있습니다. 아직 의식이 없어서 연락드리니 오셔야겠습니다!”
운전을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났습니다. 청주에서 충주까지 지방도로가 고속으로 갈 수없어 한시간 반이나 걸리는 데 온통 딸아이 생각뿐이라 기억도 안나는데 안전하게 운전하고 간게 지나고보니 기적같았습니다.
이틀을 응급실에서 아이곁에 지내고 새벽에 다행히 깨어난 아이를 데리고 외할아버지 집으로 갔습니다. 도저히 혼자 내버려둘 수 없어 청주에는 머물 방도 없지만 그냥 병원 병실에 같이 지내더라도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아이가 간절히 말 했습니다. 지금 친구들과 중학교를 졸업하고 싶다고…
그저 생명을 건지고 다시 회복한 것만도 고마워 아이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사실 이미 딸아이가 어릴때 무사히 다섯살만 넘으면 우리는 아이 양육을 위탁받은 사람의 입장으로 아이를 돌보겠다고 자주 기도 서원을 드렸습니다. 물론 아이 엄마와 의논한게 아니라 아이아빠인 저 혼자 결정한 기도약속이었지만.
돌아보니 참 여러 슬픈 일 고단한 날이 있었지만 잘 넘기며 이제 성인이 된 딸이 고맙습니다. 아이 엄마가 희귀난치병이라는 전혀 계획에 없는 중증질병에 걸리기 전에 하나님께 잘 맡겼습니다. 불행이 닥치고 형편 어려워져서 그런 기도와 약속을 드렸다면 그건 순전히 발뺌이고 책임지지 않겠다는 몹쓸 아빠의 뻔뻔한 핑계가 되어버렸을겁니다. 다행히 그 이전이라 진심으로 서원한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셨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런데 그 고마운 하나님의 돌보심과 지켜주심을 세월이 가면서 까먹습니다. ‘뭐 하나 잘되는 게 없네?’ 그런 불평을 겁도 없이 염치도 없이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굳이 딸아이의 경우만이 아니라 많은 일들을 그렇게 싹 안면을 바꾸고 시침을 떼며 삽니다. 진짜 잊어먹고 기억이 없기도 합니다.
은혜를 모르는 동물이나 사람이 나중에 몇배로 불행을 만나는 이야기를 책이나 영화, 동화에서 봅니다. 남의 이야기는 당연히 벌 받는거라고 동의하면서 정작 내 이야기는 무슨 배짱으로 변덕을 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내게 일어난 사랑과 기적들을 까먹지말고 적금처럼 잘 보관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감사가 많은 인생이야말로 얼마나 복 받은 일 아닌가요? 생각만해도 흐뭇하고 기쁠테니 말입니다.
하나님, 여지껏 주신 행운과 선물들 정말 정말 생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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