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사람이 없어서…’
몇년 전 기사에 달린 사진 한 장을 보고 가슴에 칼이 스친 것처럼 아프면서 깊이 새겨져버렸다. 고등학생 남자 하나가 엘리베이터 안에 홀로 웅크리고 앉아 힘들어하는 모습…
그리고 기사에는 그 남자아이가 7시간인가 뒤에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극한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내용이 실려있었다. 혼자 감당 안되는 그 7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안으로 안으로 흘렸을까? 바깥으로 흘렸다면 세상을 다 잠기게 하고도 남았을 거다. 우주보다 크고 무겁다는 생명이었으니…
누군가 한 사람만 곁에서 그저 앉아 있어주기만 했어도, 눈물 펑펑 쏟으면 티슈 한장 슬쩍 건네만 주었어도 어쩌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성적문제라면 공부하는 법을 새롭게 연구하거나 돈 문제라면 누구에게 빌릴지 뒤져보거나 학생폭력을 당하는 중이었다면 용기를 내어 경찰서나 다른 단체에 도움을 요청했을지도 모른다. 곁에 누군가 한 사람만 있다면 그럴 힘이 생긴다. ‘같이 가줄래?’ 라거나 ‘나 너무 힘들어…’ 라고 중얼중얼 털어놓다가 무게가 가벼워져 다시 영차! 어깨에 지고도 일어 날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한 사람의 힘이란 그렇게 무지 큰 탈출구가 된다. 설마? 싶은 곁의 그 한 사람이 주는 위력은 아무 일 없을 때의 평범한 한 사람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다. 그걸 어찌 아는냐고? 내가 그 비슷한 자리에, 시간에 갇혀 본 적이 있어서 짐작한다. 때론 어처구니 없지만 길 강아지 한마리가 어슬렁 거리고 주저앉아 있는 나를 빙빙 돌면서 내 관심을 끌어서 그 강아지를 상대로 푸념 비슷하게 말을 내보내다가 죽지 않고 병원으로 돌아 온 적도 있었다.
고민이 될때는 그 고민이 물리적으로 사람을 눌러 죽이는 게 아니라 큰 화약고로 연결된 심지 작용을 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그 심지에 불티가 날리면 점점 타들어가서 쌓인 화약이나 폭탄이 터져버리는 것이다. 그 남학생이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비통한 맘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 심지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 곁에 한 사람만 있다면 그 심지를 가볍게 발로 밟아 끄는 것은 별 힘든 일도 아니다. 누구나 자기 심지는 못끄지만 남의 심지는 꺼줄 수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필요하고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진짜로 그렇게 믿고 애쓰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위태로운 고립감에 빠져 옥상에서 연락할 사람을 찾다보니 한 명, 한 명, 이래서 부담되고 이래서 미안해 못하고 어쩌면 거절할 것 같고 누구는 비웃을 것 같고… 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제외되고 정말 사람이 없는 경험을 했다.
한 밤중도 아니고 대낮인데도 그랬으니 새벽이나 늦은 밤이었으면 더 했을 거다. 우리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 노릇하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공사다망하게 사느라 바빠 정작 단 한사람이 필요한 위태로운 그 누군가의 곁에는 있어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바쁜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 그 남학생의 가족이나 친구 선생님도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죽을 정도면 나에게 털어놓고 말이라도 해보지… 왜 혼자 끙끙 안고 있었어? ㅠ’ 라고.
그 남학생의 외롭고 무서운 시간에 그들의 이름이나 전화할 생각이 떠오르지 않은 것은 무언가 걸리는 게 있었을 거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러기엔 당신이 너무 바빴거나 너무 잘나고 거리가 멀었거나 너무 미안했거나 무슨 이유였던 있었을 거다. 죽을 정도로 암담하고 슬프고 외로운데도 말을 못 건넬 그 무엇이.
아주 오래오래 엘리베이터 속에 혼자 웅크린 그 남자아이의 어깨가 자꾸 들썩거리며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오래 갈 것 같다. 나는 그 순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또 다른 그 남자 아이같은 내 주변의 누군가가 그러는 동안. 간혹은 내가 그 남자아이가 되어 쓸쓸하기도 하다. 난 누구에게 밤이든 낮이든 상관없이 ‘나 너무 힘들어! 너무 슬퍼…’ 라고 전화걸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게 누구일까? 있기는 하나? 등…
아주 가까운 부모 자식, 형제 사이도 마지막 외진 벼랑끝에 설때 멀리 있기도 한다. 혈육이라고 모두 그 곁을 지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가깝다고 더 무디고 일방적이라 남보다 도움 안되기도 한다. 그러면 그게 무슨 가족이라고… 핏줄은 그저 같은 공장에서 찍혀나온 닮은 물건과 같을 뿐이지….
사람은 사람에게 해결책은 못된다. 희망도 구원자도 못된다. 믿음의 대상도 못된다. 그럼에도 사람이 다시 기운을 내어 살 수 있는 자리로 가기 위해 일어날 때 부축할 정도는 된다. 사람이 목적지 자체는 못되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 고민할 때 이정표나 가이드 정도는 된다. 사랑을 담은 이웃은 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해준다. 서로 사랑하면 두려움을 내어쫓고 오래 견딜 수 있게 된다고…
우리가 오늘 너무 바빠서 너무 많은 사람의 친구는 되면서도 정작 꼭 필요한 사람의 단 한명이 못되는 안타까운 경우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소서! 잊지 않고 엉터리로 살지 않도록 깨워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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