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기도 18 - 때로는 무기력함이 선물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통장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잔고가 ‘0’원… 빵원이었습니다. 아파트 임대료가 허리가 짤린 채 전액이 아닌 일부만 나가고 잔고가 제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뒤로 나갔어야할 전세보증금 은행대출이자도 펑크가 난 채 연체가 되어 있었고…
늘 자동이체는 말 그대로 자동으로 나가고 나는 늘 통장의 잔액이 그 액수보다 조금씩 많게 유지를 했습니다. 임대료 관리비 대출이자 전화요금 등 다른 공과금이 나가는 통장은 많을 때는 70-80만원선을 유지하고 적을 때도 20-30만원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모자랄 예상이 되면 카드 서비스를 빌려서라도 채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출금이력을 살피며 알아보니… 매달 얼마씩 지원되어 나오던 주거비가 중단되어 있었습니다. 곰곰 기억해보니 막내딸이 대학원으로 올라가면서 알바를 못해 쪼달리는 생활비를 해결해보려고 몇 달 걸려 청년주거급여를 신청했고, 그 심사가 통과되어 주거비 지원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동시에 부모인 우리집 지원비가 중단되었던 것입니다. 사전 예고나 연락도 없었고 문자 한통도 없었습니다. 전혀 몰랐던 나도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아 펑크가 났던 것입니다.
몇 날의 잠시동안이었지만 그 작은 착오로 생긴 나비몸짓이 연쇄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직접 연관은 없지만 주말이 끼는 바람에 며칠간 온갖 짐작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기다리는동안 잊어버리려 무리한 운동을 했던 것이 비염을 최악으로 일으켰습니다. 평소 약을 조금씩 먹으며 유지하던 것을 늘려 이삼일 복용해도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연달은 재채기에 수도꼭지처럼 흐르는 콧물과 숨이 막혀 잠을 못자는 동안 혓바닥은 물집이 잡히고 헐어버린 입안이 괴로웠습니다.
참다못해 약을 두배로 늘려 먹었더니… 온몸은 땅으로 꺼져들어가듯 가라앉고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웠습니다. 정신도 오락가락 비몽사몽 늘어져 헛소리가 나오고 뭔가 판단을 하는 일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픈 아내가 죽지 않을만큼 밥만 챙겨주고 나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아내도 그런 내 상태를 보며 혼자 시무룩 끙끙 어두운 표정으로 마냥 티비만 보며 참아야 했습니다. 순식간에 나와 아내가 비참한 일상에 몰려 아주 나쁜 품질의 생존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만약 앞으로 주거비가 계속 중지되면 생활의 어떤 부분을 줄이고 무엇을 포기하고 버텨갈지 생각하느라 슬퍼졌습니다.
다행히 평일이 되어 긴 시간 통화를 하며 알아보니 구청 담당자는 전산착오로 벌어진 일이라며 바로 잡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무 사전 통보도 없이 중단되는 바람에 속이 타고 여러 곳이 연체된 것을 항의했더니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짐작으로는 전산착오로 일어날 일이 아니고 담당직원의 부주의로 변경해서 일어났다고 었지만 그냥 참기로 했습니다. 빠른 시간에 정상으로 수습이라도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종종 그런 일이 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러려니 합니다.
불과 한달도 전 나는 큰소리를 쳤습니다. 누구에게가 아니라 나 스스로 지금처럼 이렇게 병원탈출을 성공적으로 유지만 하면 너무 행복하다 싶었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게 임대아파트 덕을 보며 살 수 있고, 세곳의 병원에서 진료와 약을 처방받아 먹이면 아내의 질병을 악화되지않게 잘 돌보면서 살아질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나 우리를 아는 형제 지인들에게도 손내밀지 않아도 되니 으쓱 어깨도 오르고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습니다. ‘걱정없어~ 잘 지내고 있어!’ 아이들 전화에도 그랬습니다. 마치 내가 유능한 해결자라도 된 기분에 아내에게 큰소리도 쳤습니다. ‘나 만난거 복이지? 하하하!‘ 라고…
그런데 불과 작은 일 한가지가 펑크나고 몸의 약점이 드러나니 순식간에 자신감은 사라지고 모래위에 세운 집처럼 허상이 깨졌습니다. 내 처지나 능력이 튼튼한 범선이 잔잔한 호수위를 항해 하는 것이 아니라 겨우 몇개의 나무를 묶은 뗏목에 실려 거친 바다위에 떠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고 절망스럽지만 그게 현실이고 그게 내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걸 까먹고 뒷골목의 3류 건달이 자기 동네에서 왕처럼 무서운 게 없는 기분에 빠졌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나는 사별했어요’라는 책에서 본 기억이 났습니다. 공동저자 몇 분들이 당한 현실은 아무도 미리 예상하거나 준비를 해도 감당 안되는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운동을 나가던 남편이 몇초 순간의 빗길 미끄럼 차사고로 모든 것을 상실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도 그랬고, 남편보다 먼저 정상을 올라가던 씩씩하던 아내가 암말기 판정을 받고 불과 7개월만에 사별하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상황이란 누구도 마주칠수 있는 운명을 말해주었습니다. 모든 해결능력과 준비가 가능할 것 같던 삶이 전혀 그렇지 못한 어떤 길을 가게되는 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와 사별의 운명처럼 내 욕심과 별개로 우리의 삶은 진행된다는 것을 또 실감하게 되었습니디.
너무 비관적으로 사는 것도 분명 은총받는 신자의 삶이 아니지만, 지나치게 자신의 능력이나 형편을 믿는 것도 진짜 신자의 태도가 아님을 제대로 얻어맞으며 배웠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고 누구를 만나 어떤 상황이 되든지 변함없는 단 한가지는 그 모든 순간마다에 내 곁에 머무르며 나의 기도와 신음과 형편을 지켜보며 걸어가주실 분이 있다는 행운입니다. 종종 그 사실을 잊고 큰소리치는 나를 그저 웃으며 넘겨주시고 등돌리지 않는 분이 계심은 큰 은총입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착오에서 깨어나도 죽음이 아니고 그분이 앞에, 곁에 동행해주시고 위로해주신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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