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함께 걷는다는 것은…’
지난 주 내 눈에 이상이 생겼다.
오른쪽 눈에서 실핏줄들이 터져 빨갛다 못해 시커멓게 되었다
흰자위가 다 사라지고 검붉은 자위는 거울을 통해 보는데도 무섭다
‘어쩌지? 또 안과를 다녀야하나?’
그러다 알게 되었다. 전에 없던 비대면 진료 방식이 생겼다는 걸
코로나 시국때문에 시한부로 운영하는 국가가 허락한 방식이다
‘닥터나우’라는 앱을 받아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안과를 예약했다.
한시간 후 전화가 걸려오고 나는 미리올린 눈 사진을 바탕으로
의사선생님과 5분정도 진료후 처방전을 받았다.
물론 나에게 오지 않고 내 주소지 가장 가까운 약국으로 전송되고
신청한 수령방식 택배로 다음날 집으로 배송되어 왔다.
‘와! 신기하다! 세상에 집에서 진료보고 약도 받을 수 있다니~’
아내와 감탄하며 좋은 세상 좋은 나라에 살고 있음을 실감했다.
아픈 게 뭐가 신날까만… 이 시국에 심각한 질병아니면
이런 방식이 훨씬 비용도 시간도 적게 들고 안전한 방식 같다.
사실 난 2년전에 건강검진에서 눈의 이상을 진단받았다.
‘황반변성’ 뭐라고 하는 이름인데 잘 외워지지 않는다
점점 시력이 나빠지다가 실명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후 4가지나 되는 안약을 하루 4번씩 넣어라는 처방과 함께
한달에 한번씩 계속 검사를 하며 한보따리씩 받아왔다.
몇달을 해도 ‘다 나았습니다!’라는 말은 못듣고 지겨워졌다
‘그냥 받아들이지 뭐…’ 결국 병원 가는 것을 그만두어버렸다.
코로나 시대에 매번 병원을 나가기도 힘들고 여러 이유로.
아내는 희귀난치병 발병 2년만에 양쪽 눈이 다 이상이 오더니
결국 한쪽은 실명을 하고 말았다. 한쪽은 건졌으니 다행인가?
그때는 무서웠다. 눈동자가 마치 흰자에 뜬 노른자처럼 떠다녔다.
보이는 건 45로 비스듬히 눞고 두개로 보이는 복시까지 왔었다
몇년을 안대로 가리고 살다 실명 후 오히려 빼고 편히 살았다
벌써 10년도 전 일인데 아직도 나는 그날의 기억이 슬프다
새벽에 깨어 다시 눈에 안약을 넣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온다.
이 정도야 의사선생님 말대로 열흘 안팎이면 나을테지만
계속 진행되고 있는 황반변성 뭐시기…하는 눈의 문제는
아마 어느날 점점 심해지고 마침내 캄캄한 감옥으로 나를 가둘거다
더 이상 책도 풍경도 못보고 아이들 아내, 친구도 못 보는 날이…
‘아내가 그 전에 세상을 떠나주면 좋겠다. 내가 돌보기 힘든
그런 날이 오면 누가 우리 둘을 다 살펴줄 수 있을까?’
물론 요양원 같은 곳에 들어가면 생존은 가능할 지 모른다.
그러나 손이 많이 필요한 아픈 아내를 생각해보면
그러기 전에 문을 걸어 잠그고 한 열흘쯤 곡식을 끊고 떠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은 잠시 슬프겠지만 길게 짐을 주며 사는 건 더 싫다.
‘그건 그때 닥치면…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 일이고!’
자꾸만 빠져드는 우울한 생각을 떨치고 싶어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부시럭 뒤척이다 잠든 아내를 깨우기 싫고 잠도 오지 않아서…
많은 생각을 하면 많은 걱정이 따라오게 되는 게
이전 젊을 때, 건강할때와 달라진 현상이다.
가족중 누가 많이 아프거나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는 나이가 되면
그렇게 흘러 간다. 전에는 다 이기고 넘어가고 다스릴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생각이 몰려와도 많은 대책과 준비를 하는 쪽으로 갔다
그리고 좋은 날과 좋은 환경, 좋은 소유들로 감사하며 감당했다
이제는 점점 단순해지는 복이 필요한 나이가 되어 간다
정말 지금, 여기를 모두인 것처럼 웃고 울고 받아들이는 지혜가.
먼 길을 빠르게 잘 가는 방법은? 이런 질문을 떠올리면
곧장 따라오는 흔한 답,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간다!’
맞다. 멀고 험한 길일수록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가면
쉽고 든든하고 언제 이 길을 이만큼 왔나싶을 정도로 가게 된다.
사랑의 깊이가 크면 클수록 그 효과는 더 높아서
황홀하고 들뜨면 길을 가는지 구름을 타고 가는지도 잊어먹을거다.
먼 길중에 가장 먼 길은 숨쉬는 동안 내내 가는 인생길이다.
어떤 여행이나 출장길, 목적지보다 길고 우여곡절 많은 인생길
내맘대로 그만두지도 못하고 돌고돌아도 못 벗어나는 그 길.
때론 그 길을 같이 가는 가족, 배우자도 더 이상은 동행 못하기도 한다
치통을 앓을 때도 그랬다. 아내가 해산을 할때도 그랬다
아무리 손을 잡고 곁을 지켜도 대신 하지도 덜어주지도 못하는
그런 순간들이 자주 있다. 오직 혼자만이 버텨야 하는 순간들
다행이 그 길조차 같이 동행해주는 사랑하는 이가 우리에겐 있다
예수님과 하나님, 소리지르고 가슴에 품고 붙잡고 울고 웃으며
세상 누구도 동행해주지 못하는 순간도 같이 있어주는 분.
이런 새벽이면 그 사랑하는 이와 오늘까지 걸어온 행운을 감사한다
부부사이에도 무기력하고 안쓰럽기만 한 순간에도 곁에서 걸어주는
진짜 동행자 진짜 힘이 되는 길동무가 되어주시는 사랑하는 분
언젠가 올 이 땅의 마지막날 괴로울 때도 내가 예상도 못하는
놀라운 위로와 신기한 방법으로 그 두려움 슬픔을 감당케 해주실지
모른다. 어떤 방법일지 모르지만 꼭 그랬으면 좋겠다.
고작 내가 할수있는 문 닫고 곡기를 끊는 유치한 선택말고
아름답고 평안하며 아무도 슬프게 하지않는 놀라운 방법으로!
오직 값없이 거저 주는 은총의 선물로, 은총의 길로…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영어가사에는 이렇게 불렀다.
내게는 이 가사가 좀 더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주와 걷겠네
모든 날, 모든 길을…’
~
Step by step, step by step,
I would walk with Je-sus,
All the day, all th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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