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 하나를 대접해준 분들’
12월, 성탄절이 있는 겨울 계절
송년과 새해가 맞물리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기가 되면
떠오르는 따뜻한 분들에 대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서울이라는 크고 낯선 객지에 부모님이 사업실패로
고향으로 돌아가버린 후 혼자 남겨졌습니다
서울 변두리 상계동에서 자취를 하면서
버티고 살던 청년시절이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짧은 직장을 옮겨다니며 간신히 월세를 내고
김치국이나 콩나물국을 사흘치나 끓여놓고 먹고 했습니다
보온 밥통 같은 것은 꿈도 못꾸던 살림이라
식은 밥을 한덩이 넣고 데워서 먹기 좋아서 그랬습니다.
“김선생! 이번 년말에 어디가?”
“아뇨, 별 일 없고 집에서 지낼건데요”
“그럼, 별로 기대는 말고 집에와!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정말요? 저야 좋지요!”
총각인데도 부득 우긴 담임목사님과 다른 집사님들 때문에
비어있던 성가대 지휘자가 오실 때까지 대타를 하던 중
성가대원을 하던 집사님이 혼자 지내는 나를 불러주셨지요
그 집의 아이들이 고등부 주일학교에 나오고
저는 교사이기도 했으니 서로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혼자 자취를 하며 객지 생활을 하는 중 많이 외롭고
싫은 날들이 명절이고 년말년초 그런 때입니다
모두 각자 가족들끼리 보내는 동안 나는 갈 곳도 없고
누가 와주지도 않아 빈 방에 혼자 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남들은 기쁘고 신나는 날이 나에게는 더 외로운 순간이 되는…
“집사님, 계세요! 저 왔어요!”
“어휴, 추운데 얼른 들어와요!”
“이거… 같이 먹으려고요”
정말 그 당시 겨울은 왜 그리 추웠는지
귀가 얼고 옷도 시원치 않아 온몸이 얼어붙었습니다.
작은 빵 봉투를 내밀며 들어선 집사님 집은
상계동 밭 가운데 만들어진 비닐하우스 집이었습니다
그 위를 헝겁으로 된 보온덥개를 한겹 더 씌운 집.
불법이고 무허가지만 당시 그 동네는 여기저기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잘 아는 사이나 막역하지 않으면 초대도 잘 안했습니다
연탄 보일러 불을 얼마나 많이 돌리셨는지 바닥은 뜨끈하고
작은 창(유리인지 필름이었는지 기억이 애매한)에
온도차로 인한 습기가 심해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맛있는 저녁과 커피 과일이 연이어 나오고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고 떠드는 동안 밤이 깊어졌습니다
아이들 방을 하나 비워 자고 가라고 하셔서 못이기는 척
정말 오랫만에 심신이 따뜻한 하루밤을 잘 보냈습니다.
그 기억은 이후로 한동안 추운 방에 초라한 밥상을 다시
마주치면서도 마음만은 푸근하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그 초대와 따뜻한 대접과 그 가족과 같이 보낸 시간의 기억은
그 전과 그 후 수 년동안 듣고 배운 어떤 설교보다 강했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상계동을 떠나 먼 수원으로 직장을 따라 옮길 때
군대를 제대해서 갈 곳 없는 친구에게 월세방이지만
당시 큰 목돈이던 보증금과 살림을 거저 다 넘겨주고
달랑 가방 하나만 들고 옮기는 결심을 하게 했습니다
‘사랑은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는 힘이 세고
옆으로 옆으로 이어서 옮기는 힘은 더 세다’
지금도 누군가의 난처한 처지나 고통을 보게되면
그때의 기억이 나서 마음이 움직이게 됩니다
비록 부자도 아니고 비닐하우스 집에 일용직으로 사시면서도
그분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가족이 있었고
그 가족의 자리로 혼자 지내는 나를 초대해주셨습니다.
내가 받아 본 그 느낌은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은 선의로
너무 큰 평생의 온기가 되어 내 속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나 아내가 짐스럽고 힘들게 느껴질 때도
측은지심과 좀 더 노력하게하는 동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작은 자 하나에게 환대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또 다시 혹한과 년말년시를 맞으면서 그 시절 그 추억이
추울 뻔 한 나의 지금 처지를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수십년이 지난 오늘도 고맙게도 변함없이…
'이것저것 끄적 > 길을 가는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서, 나라고 왜 안미울까만.. (0) | 2022.01.08 |
---|---|
졸업, 그리고 입학… (0) | 2022.01.03 |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0) | 2021.12.19 |
못난 사람? 겉으로 드러난 게 전부는 아니다 (0) | 2021.12.18 |
날마다 짐을 져주시는 하나님 (0) | 2021.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