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가지 못한 길’
혼자 살고 싶었다
그럴듯한 멋진 스토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두려움 때문에…그래서 그랬다.
어린 14살부터 경주에서 서울이라는 낯선 곳으로 올라와
오랜 객지를 혼자 떠돌면서 생긴 생존의 지독한 그늘.
그런 피부에 와닿는 고생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배우자와 자녀 등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거 자신 없었다
그렇다고 노총각 독신남 그러다 홀아비 독거남으로 늙어가는
그런 타이틀은 꺼림칙하고 쉼 없을 주위 잔소리도 걸렸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독신 수도자였다.
신앙도 없는 총각이 수도자를 꿈꾸다니 말도 안되지만
아무에게도 왜 혼자 사냐고 시달리지만 않는다면
그 신분과 그 피난이 괜찮을 거 같았다.
그러나 그 엉터리 설계는 빛을 볼 수 없었다
독신 수도자가 되는 길도 방법도 몰랐고
주변 사돈의 팔촌까지 뒤져도 아무도 도움 줄 이가 없었다
이렇게 신앙과 거리가 먼 족보의 집안에 태어나다니…
더구나 하루도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만만한 날 없는 상황이
그런 길을 알아보고 기웃거리게 냅두지 않았다. 생존은 무섭다.
그러다… 룸쌀롱이라는 술집에서 일하다 덜컥 전도를 받았다
알고보니 개신교였고 그곳은 독신수도자랑은 거리가 멀었다
지금은 개신교도 그런 길이 열려있지만 그 당시는 없었다
포기하고 살다가 다시 수도자의 욕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도시 세계의 무한 경쟁과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지겨웠다
그래서 시골 자연 심지어 가난한 제3국까지 기웃거렸다
그러나 이미 내게는 아내도 자녀도 생겨 가장이 되어 있었다
그냥 풀죽은 가장으로 사는데…눈이 번쩍 뜨이는 만남을 시작했다
이미 독신수도자가 되기는 틀린 기혼자에 가능성 없는
개신교에 발 들여놓은 포기상태에도 불구하고 새 길이 보였다
가족단위 생활공동체들이 있고 그걸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영국의 브루더호프나 그와 비슷한 가족 단위로도 모이는
신앙을 중심으로 한 생활공동체들이 눈에 들어왔고 부러웠다.
수도원의 본질이나 성향을 담은 신앙가족 공동체에 꿈을 두고
기어이 독일도 가보고 프랑스의 떼제공동체도 머물러 보았다.
국내에서도 예수원이나 비슷한 실험을 하는 단체도 둘러보았다
그러다 유럽 탐방에서 돌아와 이사까지하며 시도를 했으나…
결론은 실패했다. 처음에는 남의 탓도 했지만 나중엔 인정했다
나의 성품도 신앙의 깊이도 턱없이 멀었고 체력도 열정도 모자랐다.
심지어 게으른 천성과 이기적 자유로 까칠한 나는 자격이 없다는 걸…
십년 이상이나 매달리고 안달을 하고나서 깨달았고 인정했다.
오히려 안되길 잘 되었다는 이상한 결론은 내게서 자신감을 압수했다
시들해진 삶과 찌꺼기만 남은 열정은 아내를 들볶다 기어이 탈이 났다
희귀난치병, 그리고 발목에 수갑이 채워지고 가족이 뿔뿔 헤어졌다.
총각때의 그 두렵던 생존이하로 추락하고 살아 남기 급급했다.
만약 내 주변이나 친인척 중에 나를 이끌어줄 사람이 있어
결혼하기 전에 그 길을 밟아 독신수도자가 되었다면?
난 지금 행복하고 만족하며 지내고 있을까?
아마도… 문제와 고뇌를 많이 품고 또 다른 벽에 부딪혔을 거다
그래도 종종은 그립다. 가보지 못한 그 길의 과정과 아쉬움들이.
적어도 누군가를 책임지고 내 인생을 포기하는 이 상황은 없을테니.
아, 그리고 못가본 그리운 길이 또 하나 있다
가정공동체 꿈이 뭉개지고 현실가장으로 버티고 살다가
순례자들이 걸어가는 길을 알게 되었다.
800키로 이상을 한달을 걷는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
그 길을 여러번 다녀온 화가 한 분의 작은 소책자를 우연히 보았다
2000년 초 쯤이니 동양인 최초는 몰라도 한국인으로는 최초일거다
아무도 모르던 그 시절 스페인에 유학 인연으로 몇번이나 완주하셨다
나중에 그 길을 못가게 된 내 이야기를 듣고 우리 병실에 까지 와주셨다
그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4권의 산티아고 책에 저자서명을 해주셨다.
12월 30일 눈이 산더미같이 오던 날 자전거로 서울서 출발해
눈사람이 되어 청주에 도착해서 나를 엄청 감동하게 하셨다.
그 길을 다녀온 언론인 출신 서명숙님도 큰 감동을 받아
제주 올레길이 탄생하게 된 동기가 된 스페인 산티아고 길.
내게는 그리운… 가보지 못한 또 하나의 길이 되고 말았다.
이제 흘려보내야 하지만 언젠가 제주 올레길이라도 완주하고싶다
그리운 마음도 씻고 한을 풀고 삶을 마무리 하고 싶어서…
살면서 어디 그리운 이름과 얼굴과 못다한 일이 그뿐일까만
길을 걷는다는 것은 순례자의 기본이고 본능이니까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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