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는 어디 있나?’
“혼자 있기 싫어…”
그렇게 수시로 나를 불러 붙잡는 아내도
하루 한 번, 한시간 정도 나를 풀어 준다.
걷기, 그 시간은 몸의 건강과 마음의 자유를 위해
내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기쁜 시간이다.
오늘 아침도 몇개의 쌓인 설거지를 해치우고
아파트 옆에 붙은 작은 숲길로 걷기를 나섰다.
새삼 알게 된 느낌 하나,
발밑에 밟히는 감각이 다르다
세멘으로 포장된 길과
사람들이 걸어서 다져진 좁은 흙길이.
딱딱하게 닿는 세멘길을 피해 폭신한 길로 간다
운동화를 통과해서 오는 그 다른 느낌
사람의 감각이 예민함에 새삼 감탄한다.
‘아내는 맨발로도 이 차이를 모르는데…ㅠ’
마음이 살짝 저려 온다.
지금은 걷지도 못하고 누워만 지내는 아내
발을 딛어도 공중에 둥둥 뜬 것 같다던
예전 아내의 말이 떠올라 슬퍼진다
‘내가 아내보다 착하게 산 것도 아닌데…’
내게 주신 건강한 감각을 고마워하다가
아내 생각에 미치자 불공평한 은총에 혼란스럽다
왜 세상은 언뜻 보기에 억울한 불행들이 있을까?
착하게 살아도 심한 고난과 질병으로 울기도 하고
악하게, 자기만 알고 사는데도 넘치게 잘살기도 하니.
문득 주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습관처럼 흘려듣고 수학공식처럼 외우던 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 요한복음 18장 36절]
당신이 세상의 왕이라면 스스로를 구해보라는
빌라도의 조소 섞인 질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
아… 어쩌면 아내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
아내의 나라는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저 위에 있을지도!
그러니 어쩌면 억울해 보이는 슬픔과 고초를 감수하는지도…
나보다 착하고 나보다 신실한 성품으로 살던 아내가
불공평해 보이는 질병으로 모든 것을 잃어도
속수무책 죄인처럼 고스란히 감당하며 사는지 모른다
나중에 갈 아내의 나라가 따로 있기에…
나도 조금은 억울하고 궁금했다
나보다 욕심을 챙기며 자기만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이던
다른 어떤 사람보다 내가 더 심하게 당한다 느꼈던 감정을.
내가 견딘 긴 세월도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내게도 이 세상은 온전히 내 나라가 아닐지도,
그래서 언뜻 이해못할 날들을 허덕이며 사는지도…
“주님, 막힌 담과 같고 뿌연 안개같은
의심과 답답함을 조금은 걷어내고
맑은 산소를 주심같이 깨닫는 위로를 주시니
고맙고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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