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가장 큰 소원은…’
아내는 희귀난치병에 걸린 후
몇군데 방송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기독교방송 수호천사와 새롭게하소서
그리고 Kbs 사랑의리퀘스트 병원비 모금방송 등
그들은 병이 나으면 하고싶은 소원을 물었습니다
아내는 막내딸에게 따뜻한 밥을 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막내딸이 스무살되기까지 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아내의 가장 큰 소원은 따로 있습니다
아이들도 모르고 형제와 친구들도 모르는 소원
저와 아내만 알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온전한 정신과 영혼으로 부디 생을 마치게 해주세요’
십년을 훨씬 넘는 긴 병원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나는 여러 사례들을 보았습니다.
몸은 망가지고 정신은 피폐해져 가족관계도 깨어지고
향기로운 삶이 아니라 그저 생존으로 몸부림치는 사례를…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원망이나 배신의 말을 마지막으로 하지않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슬픈 기억을 남기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떠나게 해달라는 소원입니다.
건강했던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는데 병원생활을 하며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질병의 독한 증상들과 그 결과로 따라오는 고통,
필연적인 재정 결핍의 고민들, 모두 멀어지는 외로움,
결국은 평생을 유지해온 감사와 고백들이 무너집니다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다시는 주워담지 못할 말들을
내뱉는 상황이 오는 것은 비극이고 공포입니다
반드시 질병이나 사고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치매라는 노화로 인한 의학적상태가 와도 그렇습니다
아내는 그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합니다
90대 중반의 연세를 살고 계시는 홀로 되신 친정아버지는
그 정정하던 정신이 흐려져 씻지도 않고 종종 기억도 못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내의 불안은 더 구체적 기도가 됩니다
어쩌면 몸이 살고 죽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이 세상과 다음 세상을 가리지 않고 유효한 기도 제목입니다
며칠 전 정기적 진료와 검사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많이 지친 아내는 대기하다가 중간에 기운을 잃고 쓰러졌고
돌아와서도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며 씨름중입니다
밤에는 몸이 뒤틀리고 숨쉬기가 편치 않아 끙끙앓고
춥다가 덥다가 체온 조절이 안되어 나를 괴롭혔습니다
마치 심술이 나서 일부러 변덕을 부리는 사람처럼…
그 상황을 곁에서 지켜보며 속으로 빌었습니다
‘하나님, 잠든 사이에 아내를 데려가주시면 안되나요?
회복의 은총을 줄 수 없다면 부디 고통스럽지 않게
천국으로 데려가시는 사랑이라도 주시면 안되나요?’
예전에는 누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화를 내거나 서운했고
아내의 빈 자리를 보며 살아갈 자신이 없어 안된다고 빌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오랜 생각과 확인을 거쳐 기도합니다.
그것은 나만의 소원이 아닙니다.
아내가 바라는 가장 큰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제게도 내려주셨으면 하는 소원입니다
평생을 지키며 쌓아온 믿음의 마음과 고백들이
세상을 떠나기 몇날을 남기고 물거품이 되는 불행은
정말 속상하고 끔찍하기 때문입니다.
순전히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라면
우리의 결심과 힘만으로는 이룰수없는 불가능의 영역입니다.
* 사진은 얼마 전 병원에서 특별히 차려주신 아내의 생일밥입니다.
미역국과 작은 조각케익이 코로나로 통제되어 오가지 못하는 병원생활의
한 부분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몇번이나 생일을 더 맞이할지…
마흔에 시작된 투병이 쉰의 중간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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