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사랑과 품격 -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
아는 분이 몸담은 출판사에서 낸 책이다.
추천해주는 글을 보고 바로 구매를 했다
읽고 싶었다. 궁금했다.
아픈 아내를 13년째나 돌보며 병원살이를 하는 중인 나.
아픈 사람의 이야기가 진절머리 날 만도 한데 뭐가 더 궁금하다고...
저자 정호씨가 책속에도 여러번 쓴 남의 질문, 나도 그랬다.
“무섭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어요? 나라면 못할거 같은데...”
오랜 당뇨를 달고 살다가 심각하게 진전되어 신장투석을 하는 남편
말기신부전증으로 죽기까지 하루 건너 4시간씩 투석으로 하게 되었다
사는 날을 그렇게 보낼 수 없고 그 고통과 합병증은 외면 못할 일이었다
대안으로 나온 콩팥 이식, 많은 사람들이 공여자를 못 구해
줄 서고 몇년씩 기다리다 그냥 세상을 떠나기도 하는 그 난이도 높은 길.
정호씨는 자신의 콩팥을 남편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 검사를 시작했다
가장 확률이 높을 아들이 두 명이나 있었지만 정호씨는 뒤로 물렸다
아들 둘도 가족이 있고 가장으로 살날이 많은데 행여 지장이 될까봐
그리고 또 다른 한 생각이 그를 결심하게 했다.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뜨리지 않고,
달은 자신을 위해 어두운 길을 밝히지 않는다
이순을 넘어서니 자신만이 누리는 행복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로 인해 어느 누가 행복했다면
그런대로 잘 살아온 삶일 것이다 - 책속에서’
그랬다. 그는 남편을 사랑했고 같이 행복하기를 원했다.
그 사랑은 아들에게도 향했고 그래서 자신이 감당하기로 한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했다. 결심해도 여러가지 조건과 검사를 통과못해
장기를 제공하지 못한 채 배우자를 떠나보내는 부부도 많다
거부검사 혈핵형 등 여러 검사를 통과해서 콩팥을 줄 수 있는 것도 감사했다
제공 후 닥칠지 모를 그 두렵고 무서운 예상때문에 수술 직전에 포기하고
도망치는 경우도 숱하게 많아서 드라마 영화로도 다루어졌었다.
콩팥을 이식하는 수술이 끝나고 부부는 나란히 회복기를 보낸다
수술후의 고통, 병실생활의 불편함 슬픔을 보고 느끼며 알았다
자신이 얼마나 좋은 이웃과 지인들로 둘러쌓였는지,
그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운인지 고백한다.
나는 읽으면서 그 환경, 그 이웃은 저자인 정호씨가 만든 것이라 느꼈다
그의 지난 삶이 한올 한걸음씩 만들어온 결과로 보였다.
카톨릭대학 생명대학원을 졸업하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사목연구회와
카톨릭 생명윤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중인 그의 이력이 비쳐보였다
‘병원에 가보면 세상사람이 죄다 아픈 것만 같다
아프다는 것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친지와 벗들로 둘러싸인 환자에게선 밝은 기운이 느껴지고
홀로 웅크린 환자는 더할 수없이 아파 보였다
회복 또한 더딜 것만 같았다.
외롭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도 하니까 - 책속에서’
나도 13년 동안 병원을 스무군데 가까이 옮겨 살면서 겪은 일이다
여러 상태의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생생히 보았다.
잘 참고 밝은 사람, 옆 사람까지 잡아먹을 것처럼 못 견디는 사람
막다른 벽에 막혀 신음과 통곡을 해대는 사람
죽음도 수용해서 조용한 표정으로 맑아진 사람까지...
그리고 백배 천배 공감했다. 아니 깨달았다.
내게도 많은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그들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주셔서 자주 밝은 웃음을 짓고
너무 웅크린채 오래 참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맹세코 고백하기는 내 경우는 내가 쌓고 만든 덕분이 아니었다
순전히 주어진 은총이거나 아내와 자식들의 성품덕분이었다
공여자의 퇴원, 한 달 후 남편의 퇴원
그러나 첩첩이 기다리는 산을 넘는 생활은 계속되었다.
어쩌면 투석을 받으며 지낼 때보다 몇배는 신중한 생활
계속되는 이식수술후의 검사들 감염이나 혹시나 닥칠 거부반응 등
마음을 조리고 한 계단 한 단계마다 노심초사 건너는 생활이었다
모든 먹는 것을 환자에 맞추고 재료와 조리법까지 끓이고 소독하고.
그 과정에 돌보는 이나 환자나 지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세상 많은 가족들이 사랑한다면서도 넘지 못하고 걸리는 문턱이다
그 환자와 돌보는이의 역할이 오래가면서 지치고 원망하게 되는 슬픔
심하면 십년공부가 아니고 이십년 돌봄도 슬픈 동반자살이나
버리거나 극단적으로 돌봄을 끝내버리는 비극이 그래서 나온다
사랑도 못 넘는 그 지독한 과정 고통을 누가 알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는 안보이고 안들리는 그 실상...
‘ “병원에 연락하면 또 응급실로 오라고 할거고
당신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응급시르가는 것이 정말 지겹다고!”
“....휴, 나는 안 그런 줄 알아요? (생략)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
지난 30년 동안 얼마나 마음 졸인 줄 알아요?
그때마다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면서 지내왔단 말이예요.
미루고 미루다 이 지경이 되지 않았나요?”
가시 돋친 내 말에 나도 정말 놀랐지만,
성조(남편)의 마른 얼굴은 끝내 일그러졌다. - 책속에서’
참고 참았던 것일까? 벼르고 벼른 말일까?
내 경험으로는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고단함과 두려움이 쌓이고
생각의 차이가 충돌하는 순간이 오면 그만 터지고 만다
정말 이를 갈면서 쌓은 사실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었지만
쏟아지는 말을 다시 보면... 참아서 없어지지 않은 뭔가 있었다
상대가 환자라서 정당한 말도 못했던 보호자의 쌓인 감정
니가 알아? 몰라주는 간극을 삭이던 환자의 서운함 등
마냥 쌓여지다가 어느 순간 둑이 무너지고 심지에 불이 붙는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무사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
사랑해도 힘든 일들이 있는데 남들과 사이에는 말하면 뭐하나
이런 일, 저런 일, 꺼내면 맞장구치느라 밤을 몇번도 셀 수 있다
‘북극해 연안에 사는 이누이트는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린다
아니, 놓아 준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언제까지? 분노의 감정이 스르륵 가라 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꽂아 두고
돌아 온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 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감정을 그곳에 묻어 두고 오는 것이다 - 책속에서’
아... 어쩌면 고통의 감정을 다루는 법은 배우지 않고 물려주지 않아도
서로가 비슷하게 찾아내는 걸까? 그 신비함에 놀란다.
나도 십년을 넘기는 병원생활동안 셀 수 없는 분노와 미움 원망에
견디지 못하고 길에다 쏟아 놓고 병실로 돌아 오곤 했다.
심지어는 도로를 발길을 툭툭 차며 간혹은 길을 가다 만나는
죄없는 깡통을 발로 차서 하늘로 날리기도 했다. 휴...
정호씨도 그랬다. ‘이럴 때는 잠시라도 집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게 그간의 시간을 통해 터득한 최선의 방법이다.’ 라고 했다.
그리고 결과에 다다른다. 나도 무한히 반복했던 감정들...
‘성조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끓으면 마음이 쪼그라들곤 했다
그러나 서운한 감정을 가만 들여다보면 그 한편에 나의 모진 구석이
언뜻 비추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 또한 사랑의 일이겠지.
사랑은 내 눈에 상대의 감정을 담아 마음을 살피는 일이니까.
그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사랑이 아닐까, 하고 다독이고 다독인다. - 책속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다독이고 다독이는 결말 외에...
숱하게 많은 일과 숱하게 많은 날을 나도 그렇게 보냈다.
부부, 혹은 사랑하는 사이란 싸워서 이기는 상대가 아니니까
그리고 이긴들 더 많은 고통의 짐을 부르고 잠 못들게 하니까.
알면서도 잘 안되고 두 사람이 다 해내야 가능한 것이라서
한 사람만 무한히 시행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애석하지만... 그러다가는 온갖 폭탄이 만들어지고 그 중 몇개는
암으로 자해로 우울증으로 돌아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잘 극복이 되었다면 그것은 두 사람 모두의 덕분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바람이 지나는 길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부부지간이라도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부모 노릇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추측대로 상대방을 속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
부부가 아니라도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되는 대상이 사람이다
- 책속에서’
나는 책을 보면서 계속 바람소리를 수시로 들었다
긴장을 풀게 해주고 열을 식혀주는 바람의 서늘함도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자주 느끼지 못하는 경험이고 느낌이었다.
차의 향기를 느끼는 것 같고 시원한 대청마루에 앉은 듯 했다.
궁금증이 풀렸다.
나는 차를 배우는 대학원이 있는 줄 몰랐다.
‘한국다도대학원’ 정호씨는 그곳을 졸업했고 강사도 했다.
서원대학교에서 ‘차학교육학’과 ‘차학교수학습이론’을 강의했고
서울대학교 ‘다향만당’에서도 다도특강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으로 떠나는 꽃차여행> 과 <여행길에 찻집>,
또 <마음 하나 챙겨 떠나는 찻집여행> 등의 저서도 있었다.
그러니 정호씨의 생각과 결심, 행동에는 늘 차의 향기와 같은
품격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 차분하고 향기로운 생각들이 삶의 고비마다 영향을 미쳤나보다.
그는 그 언저리를 ‘침묵’이라는 단어에 담아 표현했다.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데 보통 2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침묵을 배우는 데에는 6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침묵이 말보다 어렵다는 애긴데, 그 말은 진정성이 담기지 않거나
숙고하지 않은 말은 침묵보다 가졉다는 의미 아닐까?’ 라고 했다.
2020년, 불과 1년전 일어난 일들이었다.
남편의 투석, 돌봄, 이식 결심, 수술, 후 회복기, 등을 따라 오면서
책을 거의 끝냈다(고 생각했다) 딱 두 페이지를 남기고...
해피엔딩의 기분으로 책을 덮겠네 하는 내 단순한 바람을 깼다.
단 두 페이지를 남기고 나는 머리를 얻어 맞는 충격을 느꼈다.
‘급성골수성백혈병’ 정호씨에게 닥친 질병 진단이었다.
몸이 자꾸 이상해서 검사받은 결과였다.
지금 정호씨는 남편이 누웠던 병실 침대를 종종 눕고
정호씨가 앉아 지키던 보호자 자리를 남편이 앉아 밤을 새기도 한다
콩팥을 준 의학적 원인이나 부작용 연결은 전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긴 불안과 스트레스 지친 몸을 추스르며 지나온 시간들이
결코 원인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책의 끝 두 페이지를 남기고 발병한 정호씨에게서
나의 앞날을 겹치며 본다. 두려움과 또 하나의 언덕으로.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병원 좁은 보호자 침대에서 살아 오면서
나도 여러가지 질병의 기초과정을 다 넘겼다.
당뇨 진입로를 들락거리고 황달과 입원직전의 간수치를 찍고,
위암 의심진단과 심장부정맥으로 응급실을 여러번 실려 갔다
이유를 못찾는 다리와 손목, 허리와 어깨 등짝의 근육통증으로
여러 병원을 다니며 치료받고 검사하기를 반복했다.
내게도 곧 닥쳐올 일만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정호씨는 이것도 또한 넘어가겠지 라고 자신을 추스렸다.
나는 한편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감사하다는 엉터리 생각을.
‘그래도 내가 아픈 아내보다는 분명 더 살 수 있을거야,
그것만이라도 정말 다행이고 하나님께 고맙지!’
정말 단 하루라도 내가 아내보다 더 살고
아내가 나보다 먼저 이 세상을 정리해주기를...
별 이상한 소원을 다 빈다.
(사랑이 뭐냐고 궁금해서 묻는 분들이나
배우자가 아파서 돌보는 분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고통속에서도 빛이 바래지지 않는 사랑과
일그러지지 않는 차의 향기, 바람의 느낌을 주는
품격을 공감하실 수 있다)
202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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