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하루만 살아 내면 된다

희망으로 2021. 7. 26. 09:17

<하루만 살아 내면 된다>

 

1.

 

일생은 하루가 모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기억이나 바람을 빼고보면 

삶에는 어제도 내일도 없다

오직 오늘만 있을 뿐...

우리는 모두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나고 어디로 갈 것인지 

선택의 주사위를 던지며 앞으로 간다.

종일 자업자득 또는 타의로 온갖 과정을 마주친다

밤이 오면 완성 미완성, 감사와 후회가 남지만

시험종료 벨을 들은 듯 다 멈추고 그저 품에 담는다

부디 잠에 들어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면 하루는 완성으로 끝난다.

성공과 실패는 상관없다. 

평안만 상실하지 않으면 잘 살아낸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인생에 대한 온갖 두려움과 근심을 떨치고

겁내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2.

 

우리는 하루를 살아낼 수 있으면 

열에 아홉 긴 일생을 끝까지 살아낼 수도 있다

생존의 가장 작은 단위인 하루는

한 해의 축소판이고 일생의 축소판이다

아침은 봄이고 유년기며 낮은 여름이고 청년기다

저녁은 가을이고 중년기고 밤은 겨울이고 노년기다

그러니 하루를 잘 살아내는 능력만 있다면

인생을 살아낼 최소 기본능력을 가진 것이다

문제는 이 하루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윤동주의 우물속에만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속에도 온갖 우여곡절과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추억과 회한이 있다는 것이다

넘지 못할 담과 아픈 가시철조망에 걸려

기어이 하루를 마치지 못하고 쓰러지기도 한다

많은 생명들이 하루의 중간에 가기도 한다

 

3.

 

나는 두 번의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5년 간격으로 나를 찾아온 이 나쁜 친구는

한 번은 밤마다 잠을 이룰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롭혔고

또 한 번은 옥상 난간을 넘고싶은 충동으로 몰고 갔다

하루를 잘 마칠 수 없게 만드는 그 순간들은

일생을 작살내버릴것 같은 공포를 안겨왔다

그런 하루는 그냥 단순히 하루가 아니었다

스스로 정신과 문을 열고 들어가서 석달씩 치료를 받았다

간신히 다시 회복한 후 밤이면 잠에 들어갈 수 있었고

긴 일생의 길을 올라 생존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하루라는 가장 작은 단위는 그렇게 중요하다

왜 그때 벼랑끝으로 몰리고 숨조차 쉴 수 없었을까?

당시를 돌아보면서 그 이유를 짐작해보았다

몇가지 잡히는 이유중 공통점은 선택의 잘못이었다

첫번째 우울증과 불면증을 부른 것은

투병과 살림에 들어가는 경제적 불안이 불러온

성급한 선택 때문이었다

생사를 다투는 아내의 중병 급한 불은 끄고도 계속 되는

병원생활에 따라오는 비용이 감당못할 지경이었다

일을 전혀 할 수 없어 수입은 없는 상황에다 

막내딸은 점점 많은 비용을 필요로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누가, 언제, 얼마를 보태주실 지는 늘 불규칙한 일이고

당연히 예상도 계획도 도무지 세울 수 없는 살림이었다

나의 재정적 불안은 나에게 뭔가를 하도록 몰아 세웠고

눈에 안보이는 신의 돌보심보다 내 능력의 끝에 보이는

잔머리와 계산, 힘써도 안되는 노력을 선택하게 했다

글을 팔고 책을 내고 단체나 인맥에 매달려서라도

그 불안한 재정적 구덩이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욕심처럼 쉽게 그 잔머리 선택은 결실을 얻지못하고

사람에 기대었던 기쁜 소식은 끝내 오지 않았다.

잔뜩 부풀었던 희망고문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무너짐이 너무도 고맙다.

그때 시도하고 선택한 결정이 잘되었다면 나는 

쉽게 기어나오지 못할 큰 구덩이로 미끄러져 들어갔을거다

한번의 당첨으로 집을 거덜내는 복권중독자 처럼 망해서

지금의 생만 아니라 다음의 생도 작살내는 삶을 살았을거다 

 

4.

 

5년 뒤 두번째 조울증과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정신과 치료는

지나친 건강염려와 빨간경고등에서 비롯되었다

건강검진에서 위험, 의심, 수치과다로 나온 몇가지 진단에

나는 악순환에 빠져 패닉이 오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사흘도 못사는 처지의 아내가 떠오르고

내가 없으면 대신 짊어질 아들 딸의 망가지는 미래가 보였다

인터넷을 뒤지고 사방팔방 공부로 과다한 선택을 했다

몸에 좋은 건강식품과 보조약품을 사고 먹기 시작했다

동시에 병행해야한다는 운동요법을 욕심을 부려 계획했다

그런데... 무리를 해서 운동을 하면 몸이 따르지 못했다

다른 부위로 부작용과 통증이 시작되고 

합병증처럼 서로 물고물리며 난감한 딜레마에 빠졌다

당뇨를 잡자고 음식을 삼가하면 황달이 오고 빈혈로 어지러웠다

운동은 다리와 허리의 근육통을 부르고 멈추면 다른 곳이 나빠지고

면역력이 떨어져 약을 먹으면 간수치가 오르기 시작했다

헤어날 수 없는 진흙 늪에 빠진 우울한 기분은 마침내

병원 옥상으로 올라가 오열하게 했고 펜스넘어 몸을 던지고 싶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8층 아래 차들이 생생지나가는 도로가 보였다

누군가 호소할 사람이 필요했고 붙들고 한바탕 울고나니

조금 정신이 돌아와 정신과 병원을 또 가야겠다 결심했다

 

5.

 

사람은 세상을 사는 동안 끝없는 갈림길에 마주친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좀 더 큰 일에까지 다양하다

수시로 우리는 선택을 내리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어떤 목적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하고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진행해서 끝을 볼 것인지를.

하루에도 수십번 그 선택과 행동의 순간에 마주치는데

아무 생각없이 내버려두면 사람의 본성과 환경은 

어떤 선택을 내리게 할까? 선한 방향으로 갈까?

아니면 악한 방향으로 갈까?

내가 경험한 바로는 늘 불안하고 악한 방향으로 

익숙한 길을 가는 것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때는 형편이 안좋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랬고

안그러면 남보다 뒤떨어 진다는 기분으로 그랬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시도하려고 한다

최대한 주변 사람이나 인맥을 이용해서라도

더 많이 내 이익을 손에 쥐고 싶은 선택으로 흘러간다

뭐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고 

세상은 또 그런 사람을 유능하다고 하니까 

당당해도 되잖아! 하고 속으로 합리화 하기도 한다

그러기위해 사소한 거짓이나 포장이 좀 섞여도 괜챃고 

다른 누군가가 내가 얻는 대신 좀 줄어들면 어때?

손해를 좀 봐도 경쟁세상인데 할수없지! 하면서

때로는 남의 곤경을 못본척 외면하기도 한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욕심의 목표를 달성하면

대신 성공의 쾌감과 전리품이 넘치게 들어오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 충동과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6.

 

그런데... 그렇게 살아서 얻은 결과가 누적되면 

최종적으로 우리 인생은 성공하는걸까?

그렇게 이어진 시간들 끝에는 행복이 당연히 기다려주는걸까?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도 어려울 일도 없겠지.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이상한 결론을 우리는 어렴풋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살면서도 자식들에게는 그렇게 살지말라고한다

또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여러 종교의 구절이나 성인들의 말을 새기며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을 본으로 세우고 닮으려 애쓴다.

비록 평생 잘 안되는것처럼 보이는 신앙인의 삶이지만 

모두들 적어도 그 바람 정도는 가지고 산다.

우리는 알아야한다. 

그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내 욕망을 채우고

불문곡직하고 성공한 부자가 되려는 길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선택하는 그 순간 이미 망하는 길로 들어선다는 걸...

 

7.

 

나는 두 번의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알았다

조급하거나 과도한 선택을 하면서 살면

결과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이미 평안을 잃는다는 것을

일이 성공하여 욕심을 채우게 되면 자신의 능력에 취할것이다

성취감은 자기능력에 대한 우월감과 남을 낮춰 차별을 부르고

더 크고 더 높은 다음 욕망, 다음 욕심이 줄을 설 것이다

그 과정의 반복은 필연적으로 신과 사람에대한 겸손은 사라지고 

감사나 존경심은 점점 작아져 마침내 사라진다.

반대로 유혹과 욕망을 따르는 선택을 했는데 망하면 어떻게 될까?

재수가 없어서 그렇고 누구탓인지를 찾으며 원망에 빠질 것이다

혹은 자기비하와 좌절감 패배의식에 몸부림칠 것이다

그것은 실패로 감수할 것보다 더 큰 고통이 될것이다

그 자리는 지옥이고 쓰디쓴 마라의 물보다 더 쓴맛일거다

그러나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않는 길을 솔직하게 간다면

일이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상관없이 살아질 것이다

성공한다면 도우신 신과 이웃에 감사할 것이고

실패한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좀 더 노력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대신 스스럼없이 신의 위로를 구할 것이다.

최소한 생명을 스스로 내팽개치는 극단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내 욕망을 따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택의 길에는 

출발하는 순간부터 애당초 행복이나 평안은 없는 법이다

일시적 성공으로 인한 쾌락과 승리감은 만끽할 수 있더라도...

 

8.

 

선택의 순간은 하루에도 열두번도 넘게 닥친다.

유혹과 욕망은 위쪽으로는 달콤한 향기를 날리고

바닥에는 독이든 잔을 내밀것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에게 우쭐할 시험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시험치말고 다만 경배하라!’고 사탄에게 말했다.

빵도 만들고 권력도 손아귀에 들어오는 그 유혹 그 시험은 

얼마나 달콤하고 솔깃한 구미를 당기는가!

베드로가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

변화산에서 황홀할때 초막짓고 여기서 살자고 했을 때,

또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권세를 누리자고 말할 때 

예수는 주저없이 잘라 말했다.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 라고.

그 또한 얼마나 달콤하며 우쭐할 대상들이던가

그 유사한 충동 유혹들이 우리네 일상에 부지기로 온다

겉옷만 바꿔입고 속은 같은 사탄이 종일 우리를 유혹한다.

조금만 말을 번지르하게 하고 조금만 모른척 외면하고 

조금만 바른 생각을 미루면 생길 소득과 즐거움을 내밀며

권력과 출세가 손에 들어온다면서 우리를 충동질한다.

안타깝게도 충실한 훈련을 쌓지 못한 우리는 종일 당한다. 

진실하지도 솔직하지도 못한 의도를 숨기고

진실하지도 솔직하지도 못한 말과 행동을 하면서..

그 대가로 챙긴 콩고물같은 이익은 

우리를 영원히 죽게 하는데 모르고 독배를 들이킨다

하루 이틀, 일년 이년, 평생을... 

그러다 반드시 쌓인 중독으로 죽는다.

 

9.

 

언젠가 봉쇄 수도원 생활을 기록한 다큐를 보았다.

서원하고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담장안에서

평생을 사는 이들의 일상을 찍은 담담한 모습들을 보았다

그 하루를 보면서 존경스러우면서도 나는 못할 것 같은 장면은

하루에 몇번인지도 모를 기도회를 날마다 반복하는 것이었다.

내가 방문해서 직접 보고 확인했던 태백의 예수원도 그랬고 

프랑스 떼제공동체를 갔을 때도 보며 든 생각이었다

하루 온 종일을 노동과 기도만 반복하며 살았다

그들은 왜 하루에 적게는 5-6번

많게는 수십번 기도를 하는지 그때는 몰랐다.

새벽3시부터 일어나 기도로 시작하고

노동하다가 종소리만 들리면 모여서 기도하고 

어두운 밤이면 기도로 마치고 잠에 들어 하루를 보냈다.

그저 지독히 신심이 넘치거나 직업처럼 사느라 그런가 했다

그러나 자기에게 일어나는 유혹과 욕망을 확인하고 

선한 욕구인지 죽음으로 끌고가는 욕망인지 분별하기 위해서는

그런 시간을 가질수밖에 없다는 걸 이제사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루에도 열번 백번 우리속에서 가시덤불 씨앗처럼 싹이트고 자라는

온갖 유혹과 욕망의 순간들을 알아차리고 당하지 않으려면

그런 훈련과 일상을 살아야만 된다는 것을.

산다는 자체가 수도생활이고 세상이 온통 수도원인것을...

 

10.

 

그래서일까? 하나님은 진작 그런 사실을 알려주셨다

일용할 양식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것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루치 만나를 내려준 광야생활도

오늘 근심은 오늘로 족하다는 충고를 주신 것도 그래서일거다

하루를 살아내는 기본부터 배우라는 권유

이 모든 하나님의 방식은 바로 하루를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삶인지 말하는 것 같다

생존의 가장 필수 단위고 기준인 하루 하루,

그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하루살이가 늘 되고 싶었다

그러나 수시로 몰아치는 핑계같은 처지로 아직도 못되었다

마음은 이 순간도 여전히 십년 오십년 뒤를 걱정하고 있다

하루를 살아내기만 하면 된다는데,

그러면 일생이 흔들리지 않는다는데...

 

 

2021.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