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단 한사람이라도 족하다. 간병도 그렇다>
나는 오랜 시간을 병든 아내를 간병하면서 보내고 있다.
잠시도 아니고 집이라는 익숙하고 편한 공간도 아니다.
24시간 병원 병실에서 좁고 작은 보조침대에서 지내고
밤에는 돌아눕다가 행여 떨어지지 않도록 웅크리고 잔다.
그 세월이 12년째 연속이니... 그다지 짧은 시간이라고는 못한다.
그 세월동안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뭘까?
의사가 아니니 아내의 질병을 직접 회복하거나 고치는 일은 내 역할이 아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어서 그 비용을 부담하지도 못하니 그 또한 내 일이 아니다.
나는 그저 잡다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 긴 날을 보내고 있다.
아픈 아내가 필요로 하는 데 스스로는 못하는 일들,
몸을 못 움직이니 목마르면 물을 주고 끼니때마다 밥상을 가져다 먹게 돕고
다 먹으면 치워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세수나 양치, 목욕도 시켜주고 그런 일들.
몸뿐만 아니라 더러는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쩌면 그게 더 큰일이다.
슬프고 기쁘고, 궁금하고 외롭고... 때로는 큰 기대가 무너져 절망도 크고,
그 여러 감정의 순간마다 들어주고 대답해주고 달래주고 그런다.
은행이나 주민센터에서 일이 생기면 위임장을 들고 대신 해주기도 한다.
그 결과로 몸과 마음이 좀 더 편해지고 어떤 경우는 덜 힘들게 된다.
사람이 누구를 사랑하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지게 알게 모르게 힘쓰고
원하지 않는 것을 피할 수 있도록 돕지 않을까?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며 웃고 울 것이다.
외로움은 덜어주고 고단한 상황은 피하게 해주고 싶을 것이다.
그 사랑하는 대상이 연인이나 부부, 또는 자녀나 부모일 수도 있다.
신기한 것은 아픈 환자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닥치는 일들이 비슷하다.
실재로 많은 건강해보이는 사람들도 의외로 놀라운 것은
알게 모르게, (심지어는 본인도 모른다)검진으로 병이 발견된다는 것.
또 상처받고 언젠가 얻은 트라우마와 경험들이 무의식 불안이 되어
어두운 구덩이나 동굴처럼 맘 깊숙한 곳에 꼭꼭 숨어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환자가 아닌 사람도 잠재적 환자일지도 모른다.
아픈 가족을 돌보다 정작 환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보호자 이야기를
긴 병원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듣고 직접 보기도 했다.
순서가 없다는 사람의 죽음처럼 질병도 순서나 예고없이 그렇더라.
진단과 검사를 받지 않았을 뿐이지 입원한 환자보다 더 나쁜 상태로
생활전선에서 참고 일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실상은 오십보 백보일지도 모른다.
환자와 아닌 사람이 날때부터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과
언제라도 그 둘이 바뀌거나 하나가 되기도 하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간병으로 하는 일이나 사랑하면 하게 되는 일이나 비슷하다.
잘하는 간병은 분명 사랑으로 하는 돌봄이다.
사랑없이 하는 간병은 당해본 사람은 말이 필요없이 바로 안다.
그 느낌과 눈치는 환자를 많이 불편하고 처참한 기분이 들게 한다.
사랑만 이별이 있고 상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얼른 죽기를 바라는 간병을 받는 환자는 끔찍하게 연명하는 것이다.
잘하는 간병이란 그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대하듯 해주는 것이다.
간병에는 테크닉이나 기술, 정보가 좀 필요해서 다른 차원같지만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사랑도 기술이다. 그렇다면 둘이 참 비슷하다.
참된 사랑은 곧 교육적 학습능력을 잠재적으로 가진다고 했다.
어떻게하면 잘해줄까? 더 좋아할까? 자꾸 궁리하게 만들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니 아픈 환자를 사랑하는 사람 대하듯 정성을 다한다면
분명 환자가 나아지고 평안으로 안정된다.
내 근처의 사람들이 가끔 던지는 칭찬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나에게는 ‘아내를 정말 사랑하네요!’ 하고
아내에게는 ‘남편 사랑을 많이 받네요! 신랑 잘 얻었어요!’ 라고.
왜 간병을 잘하는데 말은 사랑한다고, 사랑 받는다고 표현을 할까?
그런걸 보면 간병은 사랑이 맞다! 사랑으로 하고 사랑으로 받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을 간병하듯 챙겨준다면
어떤 사랑하는 사람도 배려받고 고마워하며 행복해질거다.
간병할 때 조심해야할 것이 두어가지 있다. 문병할 때도 해당된다.
하나는 지나친 기대나 희망을 남발하면서 환자를 강요하면 안된다.
그러다 자칫 조급해지면 둘다 큰 좌절하거나 원망을 키운다.
하나는 정반대로 비관적이고 슬픈 얼굴로 기대도 의욕도 없는 태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한숨은 식욕도 없애버린다.
지나치지 않으면서 따뜻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랑도 그렇다. 좋을 때는 별도 달도 다 따주겠다고 큰소리 치다가
감정이 변하면 니꺼 내꺼 따지고 아픈 다리 한번 안주물러 준다.
간병하는 사람이 환자에게 철칙으로 지켜야할 안정감 일관성 너그러움을
사랑하는 이에게도 그렇게 대한다면 사랑하는 사이에 흔히 생기는
소유나 욕심, 강제로 인한 불화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이미 상처받고 불안한 심리를 가진 많은 현대인들에게 간병하듯 사랑하면
다툼과 미움으로 인한 파국을 면할 것이고 서로 화목과 감사를 이룰 것이다.
서로에게 없으면 안될 사람으로 인정하면서 이별을 작정할 수 있을까?
내가 가끔 잠이 모자라 고단하거나 피로가 쌓여 몸이 아프면 아내가 그런다.
‘당신은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거야? 도망도 안가고...’
주위 여자들이 ‘남자들은 마누라 아프면 다 도망간다!’는 말을 들은 때문인지.
나는 왜 도망은 고사하고 짜증도 화풀이도 거의 내색을 안하면서 잘 참고
아픈 아내를 웃으며 돌볼 수 있는 걸까? 내가 성자도 아닌데...
그렇다고 아내가 돈다발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처가가 재벌도 아닌데도?
우습지만 정말 난 자주 아내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아이들을 좋은 성품으로 키워준 것도 고맙고 남 험담을 안하는 성품도 예쁘다.
내가 예전에 마음 편하게 못해주고 성질부리며 보낸 날들이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하듯 간병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가끔 하나님을 향해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하나 없이 병들고 상처받은 우리를 간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생각도 든다.
종종 사는 게 고단하다는 이유로 난폭하고 질병에 신음하며 따지는데도
변함없이 약속하고 들어주고 갖가지 통로로 알게 모르게 도우며 위로를 주신다.
예수님은 또 얼마나 병든 사람을 사랑스럽게 대하셨던가!
귀신들고 악취나는 병자도 품고 천하고 초라한 가난뱅이 죄인도 가까이 하셨다.
위로하고 병고치며 먹을 것도 주셨다. 가능하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받는 사랑이 뜨겁고 뭉클하면 줄 수도 있어야 사람답고 제자답지 않을까?
사랑으로 간병하거나 간병하듯 사랑하거나 상관없이...
권정생 선생님의 ‘오물덩어리처럼 딩굴면서’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길고 긴 고통의 날들을 보내면서 처음 예수를 듣고 만난 5살때부터
폐병 친구들의 죽음을 연달아 겪으면서 담은 생각들이다.
‘단 한사람이라도 족하다. 사람을 낚아 그를 사랑하면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를 사랑하지는 못했다. 내가 필요할 때면 불렀다가 필요 없으면 잊어 버린다. 그를 믿으면 병을 고칠 수 있기 때문에,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기 때문에 필요했던 것이지 사랑한 건 아니었다.
베드로가 예수를 따라다닌 것도 나와 흡사한 생각에서였을 게다. 머리에 금관을 쓰고 높은 보좌 위에서 낮고 천한 인간을 다스리는 그리스도는 인간의 사랑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묻은 손으로 모든 영광을 버리고 홀연히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신 예수는 인간의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다. 비록 비천한 고기잡이 베드로 같은 인간에게도 한 사람으로서의 깨끗한 사랑의 피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 우리는 예수의 참 뜻을 모른다. 사랑이 무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스도는 한 인간으로서 우리 곁에 와 사랑을 구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신앙은 이렇게 사람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족하다. 사람을 낚아 그를 사랑하면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길이 된다. 피와 피가 통하는 사랑, 그것만이 그리스도와 나와의 사랑인 것이다. - 권정생의 ‘오물덩어리처럼 딩굴면서 중에서’]
나는 그 한사람으로 아내를 맞이해서 사랑하는 중일까?
변함없이 이 생을 마칠 수 있다면 고맙지만 사람은 하도 약해서 알 수가 없다.
부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같은 심정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도 변함이 없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릴뿐...
* 딸이 보내준 꽃을 들고 잠시 웃는 아내
20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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