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변할지도 모릅니다>
병원에 무지 오래 같이 지내는 한 환자가 있습니다.
몇년째 같은 층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얼굴보고 스치고 지냅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너무 미워 못 견디는 내 불편한 마음입니다.
오죽하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그 사람이 오면 그냥 계단으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보내고 옆 엘리베이트를 탑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유없이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샤워실 변기에 아내의 소변통을 비우고 있는데
뒤에서 시비를 걸듯 잔소리를 했습니다.
‘방금 변기에 소변을 버렸냐? 누가 여기에 버리라고 했냐?’
뭐지? 그럼 소변통의 소변을 어디다 버리라는거야??
속으로 생각해봐도 답이 없는 데 화가 났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인간이 지난 번 쓰레기통을 비우고 나오는데?
문이 조금 덜 닫혔다고 문 꼭꼭 안닫았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때는 알았다고 문을 꼭 닫고 돌아섰는데... 따라 오며 계속 그럽니다.
일부러 싸움 거는 것 같아 간호사실로 가서 따졌습니다.
환자를 상대로 멱살 쥐고 싸울 수도 없는데 저 사람이 자꾸 시비를 건다.
소변통을 어디서 비우고 씻어야 하는지 정해달라! 그랬습니다.
간호사실에서 그럽니다. 그 사람 하도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시비걸고
싸움질하고 다퉈서 이미 요주의 인물이라고 자기들이 말하겠답니다.
그리고 바로 가더니 그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정당하니 딴소리 말라고.
그리곤 병동 게시판에 아예 소변통은 샤워실 변기에 버리고 씻어라! 라는
알림 공문을 붙여주었습니다. 그 뒤로 그 시비는 다시 안합니다.
그 사람은 소변기 앞에 방울 떨어졌다고 화장실 바닥에 물을 쏟아놓습니다.
뇌경색으로 반신마비로 위태롭게 걷는 사람들이 많은데 참 위험합니다.
병실에서도 얼마나 깔끔을 떠는지 다른 사람들이 지겨울 정도로 멀리 합니다.
밥먹는 중 재채기한다고 싸움이 붙어 결국 다른 병실로 강제 이동도 되고
이일 저일 간섭을 얼마나 하는지 쌈닭이라고 다들 손을 내젖습니다.
옥상에 운동하러 가면 얼마나 담배를 피우러 자주 올라오는지
담배 연기때문에 그 사람만 오면 난 내려오거나 한쪽으로 갑니다.
얼굴만 나타나면 민폐와 짜증이 늘 따라오는 그 사람이 정말 밉습니다.
하도 그러니 아내도 나에게 내 건강을 위해 좀 덜 미워하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문득 복도 끝에 몇 사람이 모여 있는 걸 보았습니다.
서너 사람이 모여 머리컷트기로 머리를 짜르고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환자들이 바깥출입이 통제된지 8개월이 넘어가다보니
모두 머리는 길어지고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난감해졌습니다.
전에는 병원으로 오던 이미용 봉사자들도 못오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다 간병인중 기술을 가진 분이 있어 복도끝에서 짜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미운 남자환자가 다른 남자들의 목덜미 머리를 털어주고 있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채 가렵고 따가울 잘린 머리카락을 눈으로 보면서 털어내줍니다.
너무 까탈스럽고 깔끔을 떠는 평소의 성격에 딱 어울리는 장면입니다.
얼마나 자주 씻고 냄새나 지저분한걸 못 견디며 남에게도 잔소리하는데
그 성격에 아주 잘 어울리는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한참 바라보다 문득 다른 모습들이 이어 떠올랐습니다.
환자들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간섭하고 말 걸고 뭘 갖다주고 그랬던 기억이.
나처럼 말도 못 붙이게 쌀쌀맞게 굴지않는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이고
그들은 한 두번 이상 도움을 받거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정도로.
어쩌면... 십년이 지나도 선뜻 친구가 되지 못하는 저와는 많이 다릅니다.
어쩌면... 저보다 더 다른 환자들에게 꼭 있어야 할 유익한 이웃일지 모릅니다.
저는 피해를 주지 않고 최대한 조용히 지내주는 이웃 방 사람이지만
외로움과 곤란과 불편을 찾아가며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역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미운 환자는 때로 지나치고 기분 상하게 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정말 답답하고 무섭고 난처한 상황이 생겼을 때는 말 걸고 손 내밀 수 있는
병원생활하는 입장에서 더 없이 필요한 옆 병실 이웃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저를 보고는 한 데나리온을 땅에 묻어둔 사람이라고 혼내고
그에게는 몇 데나리온 장사하다가 까먹어도 잘했다고 그럴지 모릅니다.
누가 칭찬받는 사람이 될지 갑자기 어두워지는 예상이 몰려옵니다.
우선 내 마음속 이 미움부터 좀 지우고 녹이고 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고사하고 장점 인정도 잘 안하고 늦는 내 기준으로?
좋고 나쁨을 분리하는 이 좁아터진 심보는 좀 고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혼나는 수준을 넘어 무익한 종아! 야단맞을지도 모릅니다.
살다보니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하는 오류가 많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너무 인색하다는 뉘우침과 불안함이 오는 날도 있습니다.
오늘이 그랬습니다. 내일은 좀 달라지면 좋겠는데... 예상으론 잘 안될겁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이 조명이고 저울이고 길이 됩니다.
자꾸 드러나고 비추어보고 반성하다보면 달라질지도... 기대해봅니다.
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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