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했던가요?>
두 주간, 14일이 넘도록 꼬박 응급실을 거쳐 수술을 받고 회복과정을 아내 곁에 머무르면서 한번도 샤워를 못했습니다. 조금은 더운 초여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기본 세면과 머리만 감는 정도로 버텼습니다. 날마다 계단오르기를 하면서 날마다 씻던 일상이 중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나는 못한 걸까요? 아니면 안한 걸까요? 처음 응급실에 있을 때는 그렇다치고 나중에 입원실로 옮기고나서는 마음만 먹으면 할수도 있었을 겁니다. 아무리 종합병원이 재활병원처럼 샤워실 시설은 안갖추어져 있다해도.
그러니 엄격하게 말하면 못한게 아니고 안한 게 맞습니다. 그럼 왜 안했을까요? 쉬지않고 계속 통증을 호소하고 잠못이루는 아픈 아내가 있으니 그랬을수도 있습니다. 수시로 간호사를 부르고 어떻게든 조치해야했고, 배변 소변 해결도 해야했습니다.
꼼짝못하고 열흘넘게 누워지내는 바람에 온몸에 통증도 만만치 않아 마사지하고 운동시키고... 그러다가 잠시라도 틈나면 쉬고 싶었습니다. 샤워보다는 누워서 모자라는 쪽잠도 자고 싶었고, 아님 물에 잠긴 기분을 풀려고 나가서 커피 한잔 마시며 벤치에 앉아 바람이라도 쐬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알았습니다. 종종 혼자 숨진 채 발견되는 사람들의 뉴스를 보면서 정말 밥숟가락 들 힘도 없어서 굶어죽는걸까?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하고 밥 얻어먹으러 길에 나가고 그럼 안죽을텐데, 사람들이 그렇게 비난을 합니다. ‘게으르고 약해빠져서라고....’ 어쩌면 저도 조금은 그 비난에 알게 모르게 동감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 보름넘게 목욕도 안하면서 알게 된 것은 게을러서 못한 게 아니고 하고 싶은 의욕을 상실해서 그렇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굶어 죽어간 그들도 숟가락 들 힘도 없어서가 아니고, 밥을 먹고 나서 뭘 하고싶은 의욕이 도무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했습니다. 그걸 하기보다는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은 힘든 마음이 가득차서 그냥 냅두다가 몸이 망가진 것이 맞을 겁니다.
바깥에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아래 깊고 어두운 이유를 모르면 쉽게 비난만 하게됩니다. 게을러서, 약해빠져서 그런다는 가시들어간 말을 하게됩니다. 불행해본적 없는 사람일수록 더 그러기 쉽고, 가르치는 공부만 한 사람들은 더 힘주며 그럽니다. 심지어 나무라는 태도로 화를 내며 정죄를 합니다.
경험해보고 아파보니 알겠습니다. 그렇게 쉽게 말해서는 안되는 고단한 마음이 있고 사정이 있더라는 것을. 제발 그저 눈에 보이고 지적하기 좋은 현상만 앞세워 흉보지 말고, 그보다 더 아래, 더 심하게 다친 마음도 먼저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주변만 아픈 게 아니고 일상이 전부 아프게 된다는 이해심으로.
시인 안도현은 그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그럽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는 무슨 대단한 희생이나 봉사보다 먼저 연탄재도 함부로 발로 차지 않는 조심스러운 배려에서 출발해야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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