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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은...>

희망으로 2019. 6. 19. 11:28

<나의 소원은...>

수술을 하고 돌아온 아내는 두 주가 넘는 날들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항생제 링거를 달고 살았습니다. 좀 심한 염증때문에 그랬고 더구나 폐렴의 증상이 좀 보여서 따로 폐질환 항생제도 추가로 맞았습니다. 그 때문 이었을까요? 다시 돌아온 재활병원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아내는 화장실을 갈 시간은 고사하고 참을 틈도 없이 설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속옷이랑 환자복까지 다 버리고 미어지는 맘으로 화장실로 데려 갔습니다.

더 큰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변기에 앉은 채로 다시 설사를 하면서 기운이 딸린 아내는 실신을 했습니다. 넘어지는 몸을 붙잡고 옷도 추스리지 못하고 나는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아내를 휠체어에 싣고 침대로 와서 눕혔습니다. 잠시후 정신이 돌아온 아내는 아주 작은 숨을 쉬기 시작했고 의사를 부르거나 구급차를 부르지 말라며 안정을 취했습니다. 그 사이 속옷과 환자복을 또 갈아입히고 나도 나가 떨어졌습니다. 너무 지치고 한편 두려우면서도 맘이 주저앉았습니다.

이번에 수술을 거치면서 처음으로 아내와 나는 비슷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하늘이 부르면 기꺼이 가는게 좋을지도 모른다고. 담낭 염증의 통증으로 너무 아픈 과정을 겪은 아내는 아내대로, 맥이 너무 약해져서 응급실에서 검사를 위한 피를 뽑지못해 의사가 두명이나 교대로 감에 의존하며 채혈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나대로 그랬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신체의 상태도 그 순간에 다가왔음을 인정하면서.

수술후 아내가 그랬습니다. ‘마취중 그대로 세상을 떠나도 좋겠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면서. 아직은 나도 아내도 반반의 정도지만 이대로 조금 더 상태가 나빠지면 우리의 마음은 그저 수용이 아니라 비는 소원이 될 것도 같습니다. 살아야할 애착은 점점 없어져 그만 떠나고 싶은 이 소원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아닌지 몰라 애매하기는 하지만.

그러던 중 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보면서 저절로 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저 부부에게 주신 복을 주세요!’ 하는 강렬한 소원의 기도가. 기사속의 부부처럼 오랜 세월을 산 후에만 자격이 주어지는 걸까요? 그래야만 가능 할까요? 그러려면 아직도 더 살아야 하는 데... 하지만 단지 나이나 산 세월 숫자가 중요한건 아닐텐데 하면서.

결혼기념일 64주년을 하루 앞두고 아내를 따라 세상을 떠난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이미지: 사람 2명, 웃고 있음,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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