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미시감 기시감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희망으로 2018. 6. 13. 11:02

<오늘 나를 흔드는 ‘미시감’과 ‘기시감’>

생전 처음 하는 일인데도 마치 언젠가 했던 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기시감’이라고 한단다. 반대로 늘 하던 일인데도 어느 순간 처음하는 일처럼 낯선 느낌이 드는 것을 ‘미시감’ 이라고 부르고.

그러보니... 사랑은 ‘미시감’에 빠진 사람이 하는 것 같다. 곁에서 보면 별 다르지도 않은 사람을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처럼 푹 빠져서 쳐다보고, 별 신나지도 않은 일도 마치 세상의 최고의 기쁜 일처럼 희열에차서 한다. 고작 밥먹고 차마시고 말하는 등에도. 수도 없이 심드렁하게 반복해오던 일들을 단지 누구 한사람 때문에 생판 처음 겪는 감정처럼 언제 이렇게 행복했었나 하는 표정으로.

반대로 미움은 ‘기시감’에 빠질 때 하는 것 같다. 별 감정도 거슬림도 없이 늘 보던 사람 늘 있던 일도 어느 날 어느 순간 내 마음이 변덕으로 보기 싫어지면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못견디게 불편했는데 이 악물고 참아온 감정처럼 못견뎌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미우면 발뒷꿈치가 계란같다고 터무니없는 욕을 한다더니. 별 이유가 안되어도 미워 못견딜 말이되고 미워서 상종도 하기싫은 상대가 되고 눈앞에서 꺼져버렸으면 싶은 분노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정말 그 사람이, 그 일이 언제나 모두에게 불편하고 화를 부르는 나쁜 것이었을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낄까? 그것과 똑같은 말과 일을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 했어도 그렇게 미워하고 화를 내며 받아들일까? 상당부분 자신이 없어지는 자문자답이다.

문제는... 이 현상이 책에서 글자로 존재하는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늘 상대를 바꾸어가며 나를 따라오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어제까지도 누군가가 그랬고 어떤 일들이 그랬다. 때로는 선을 넘는 과한 편애나 편견을 동반해서 당황하게 하고 감정을 흔들어 서로를 고단하게도 만들었다.

오늘 나의 하루는 또 얼마나 두 개의 감정, ‘기시감’과 ‘미시감’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지지고 볶으며 보내게 될까? 오직 흔들림없는 일관성과 맑은 마음을 허락해주시기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선선한 그늘을 주는 숲들의 산책길에 빌어본다. 제대로 살자! 바보같이 흔들리지말고...

(딸이 보내온 꽃 - 분명 처음 만나고 처음 느끼는 두근거림이다! 이전에 온 꽃과는 다른 아름다운 생명이라서~)

이미지: 꽃, 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