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3054일 - 좋은 소식이 된 임종>
"소식 들었어요?"
아내를 씻기고 1시간 30분에 걸쳐 큰일을 치르고 병실로 들어서는데
같은 병실의 간병사 아주머니가 그러셨다.
"무슨 소식이요? 저는 모르는데..."
"ㅇㅇㅇ아저씨 어저께 돌아가셨대요! 좋은 소식이지요 뭐,"
순간 멍해졌다. 누구인지는 아는데...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게 좋은 소식인가?
그러나, 정말 30초도 안 넘기고 내 입에서도 그런 말이 나왔다.
" 맞아요. 그러네요.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더구나 병원도 안 가시고 딱 5일 집에서 아프시다가 임종하셨다니!"
'ㅇㅇㅇ 아저씨'는 우리와 같은 병실에서 3년이 넘도록 바로 앞 침대에서 계셨다.
연세로는 80세여서 할아버지가 맞지만 우리는 모두 아저씨라고 불렀다.
간병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도 '젊은오빠라고 불러줘!' 하시며 늘 웃으셨다.
“김선생! 이거 하나 먹어”
“아이구! 아저씨 말씀 낮추세요.”
“에이, 그래도 책을 낸 작가인데 그렇게 불러줘야지~”
그러셨다. 아들이 여럿이고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아들도 있는데도.
할머니가 농산물시장 안에서 후진하는 트럭에 다리가 깔려 절단하시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때부터 병원에서 두 노인부부가 살기 시작하셨다.
자신도 파킨슨 병이 있으셔서 잘 걷지 못하고 병원에서 약을 타서 드시는 불편한 몸으로.
“아저씨, 간병인 아주머니 두시고 집으로 들어가셔요.
어차피 보험 재판 중이신데 당연히 간병비도 나오는데...
너무 무리하시다가 건강 상하시면 어쩌시려고요.“
그래도 듣지 않으셨다. 나중에야 그 마음을 알았다.
밤이면 가끔 병원 곁 식당에서 막걸리 한잔을 드시면서 우셨는데 이렇게 말하셨다.
“젊을 때 할머니 속을 많이 썩였어,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다 보니,
그래서 이제라도, 이럴 때라도 옆에 있어줘야지. 미안해서...“
그렇게 좁은 보조침대에서 버티며 온몸이 아프다며 졸기도 하셨다.
어디 나갔다 오시면 붕어빵이나 아이스크림을 꼭 사와서 병실 식구들에게 다 돌렸다.
“휴...어쩌냐,”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보험회사에서 이제 더 병원에 있을 수 없다고 퇴원하라네, 정리되었다고.”
“잘 된 거 아닌가요? 집에서 좀 편하게 지내시게 되었으니?”
“날마다 밥이며 살림을 해낼 수 있을까? 집도 이층이라 나들이도 힘든데...”
떠나기 전날 밤에도 또 눈물을 흘리셨다.
'집에 가서 잘 할 수 있을까?' 계속 염려하면서.
"여보, 나도 할아버지처럼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우리에게 닥칠 앞날을 미리 보는 것 같아 복잡한 심정이 된 내가 아내에게 물었다.
안타까우면서도 한편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5일 정도 집에서 아프시는 동안 아마도 가족들이나 친구들 문병도 받으셨을 거다.
병원 응급실이나 입원도 안 가실 정도였으니 그리 심하게 아프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 날을 정신 온전하게 가지고, 심한 꼴을 겪지 않는다면.
그보다 복 받는 임종이 있을까 싶어서 부러웠다.
얼마 전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원을 말해봐' 라는 소녀시대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내에게 그랬다.
"나는 있잖아, 소원이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는 그런 날이 얼른 오면 정말 좋겠어"
아내가 바로 그랬다. "그건 너무 큰 소원인데...“
그런데 요즘 구체적인 소원이 두어 가지 생겼다.
자꾸만 여기저기 돌아가며 생기는 아내의 난치병 만성질환 후유증들에 지쳤고,
나를 잠식하는 우울증이 두려워 잠을 설치면서 자꾸 간절해졌다.
"하나님! 제발 어떤 경우에도 자살만 하지 않게 해주세요!"
안다는 것, 경험 해봤다는 것이 때론 더 무섭게 한다.
아무래도 다가올 고통들의 크기나 깊이를 미리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몇 해 전 우울증에 심하게 시달리다 손들고 정신과로 가서 석 달 정도 치료받았었다.
“또 재발 하면 안 되는데...”
그때의 불면증 압박감, 분노와 슬픔으로 인한 호흡곤란의 악몽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그 상태가 심해지면 누구에게나 자살은 신앙의 차원이 아니라 질병의 차원으로 다가온다.
'제발 살아 있는 동안은 그런 일 오지 않게 해주세요!'
또 하나는 주변에서 자주 보다보니 두려워지는 것이 있다.
치매나 뇌질환으로 인한 인지 장애다.
어쩌면 병을 앓는 당사자보다 주변 가족들이 더 고통스러워지고,
그로인해 심한 갈등이 누적되면 사람다운 관계가 부서져 서로 미워하게 된다.
환자와 보호자, 가족과 가족들이 서로에게...
오래 못 살아도 좋으니 맑은 정신으로 지내다 가고 싶다.
또 그게 어디 건강관리나 각오만으로 가능한 거도 아님을 빤히 알면서도 빌게 된다.
원하지 않아도 오는 질병의 하나인데도 그 피해가 너무 참담하니 이게 소원이 다 된다.
"하나님이 이 소원만이라도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가난도 고단한 형편도, 병 낫는 회복도 다 안 들어주셔도 괜찮아요.
사는 동안 이 두 가지만이라도 피할 수 있게 해주세요! 부디..."
이 소원이 날이 갈수록 점점 간절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만큼 현실적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고,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 때문일까?
그래도... 오늘도 빌어 본다.
‘좋은 소식이 되는 임종’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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