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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은 기쁜 날일까? 슬픈 날일까?

희망으로 2016. 4. 20. 23:36

<장애인의 날은 기쁜 날일까? 슬픈 날일까?>

 

온 몸에 1톤 트럭이 얹혀 있는 압박감에 꼼짝도 않고 숨은 답답하고...

그런데도 이 악물고 참으면서 정말 열심히 재활치료 시간이면 치료실로 갔지요.“

 

그랬구나, 그래서 이 정도라도 앉을 수 있게 되었구나. 장하다 동생!”

 

왜 그렇게 제가 열심히 재활치료에 열심이었는지 이유를 아세요?”

그거야 당연히 좀 나아져서 생활에 복귀하고 결혼도 하고! 뭐 그런 의욕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죽을려고요. 죽을 수 있을 만큼만 얼른 나아지려고..."

 

그 동생은 일산 한 재활병원에 1년 반을 있는 동안 만나서 같이 지낸 잘 생긴 친구였다.

이제 나이 서른인데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온 몸은 그저 머리에 달려 거추장스럽게 덜렁거리는 짐가방 같은 처지였다. 칠순이 넘은 엄마가 씻기고 밥 떠먹이고 휠체어에 태워 치료실을 데리고 다녔다.

 

공연장의 잘나가던 조명담당 스탭이었고 외국도 다녀온 유망주였다. 강원도 어느 스키장에서 야간에 스노우보드를 타다가 펜스에 충돌해서 목이 부러지는 대형사고가 나기 전 날까지는.

실려서 병원으로 이송되고 머리에 톱 드릴 망치로 쇠 박는 소리까지 직접들어야 했던 중환자로 12년을 지나 50%도 안되는 생존가능성에도 간신히 살아 났다. 그 친구는 그걸 반기는게 아니라 불행으로 여겼다.

 

중환자실에서 누워 의식은 있는데 여간호사가 대 소변을 다 치우고 몸을 씻기고 하는데... 정말 괴롭더라고요. 일반실로 나오고 나서도 연로하신 엄마의 수발을 받는데 그것도 죽기보다 힘들고. 그런데... 죽고싶은데 죽을 수가 없는 고통을 알아요?”

 

“......”

 

한발짝은 고사하고 손가락도 하나 못 움직이는데 죽을 방법이 없잖아요. 칼을 들 수 있나, 약 한봉지를 내 입에 넣을 수가 있나... 그래서 결심했지요. 어떻게 하든지 손 하나만 움직일 정도로 라도 재활치료를 해서 죽자! ...”

 

그랬구나...”

 

그런데, 휠체어에 태워주면 꿈틀거려 밀어서 계단까지라도 갈 정도가 되어 드디어 죽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그렇지? 엄마 생각해서도 그러면 안되지.”

 

아뇨, 그래서가 아니고, 겨우 온 몸에 쇠덩어리 칭칭 감은 무거움과 돌아가며 오는 통증을 조금씩 덜어내는데, 굴러서 죽지도 못하면 어쩌지요? 죽는다는 보장도 없고 또 중증 상태가 되어 중환자실로나 들어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실행에 옮길 자신이 없어지는 거예요.”

 

,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이런 경우구나. 죽고 싶어도 죽을 길이 없고 보장이 안 되어 못 죽는 내 동생뻘 친구. 마음이 아팠다. 그 병원에서 헤어진 후로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조금만 앉아서 무얼 하다보면 엉덩이에 욕창이 생겨 두세달은 누워 지낸다는 괴로운 소식도 빠짐없이.

 

420. 오늘 이제 두 시간 정도 남았다. 장애인의 날이라고 아침부터 관련 기사 뉴스 행사 등 여러 가지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반갑지 않고 오히려 우울해져서 얼른 지나갔으면 싶은 마음에 종일 입에도 안올리고 귀도 닫고 눈도 피하고 종일을 보냈다.

 

아내는 만 5년을 장애 1등급으로 지냈다. 그러다가 5년째 느닷없이 마지막 재판정(3번째는 영구판정이고 그 결정이 끝까지 이어진다)에 복합 4등급으로 떨어졌다. 1급에서 4급으로, 거의 추락을 한 셈이다. 장애등급이 그렇게 곤두박질 떨어질 만큼 회복이 1년 사이에 되는 환자란 사실은 없다. 상식적으로. 급성기는 1년이나 2년 안에 그렇게 회복될 수도 있지만 7-8년이나 느리게 회복되는 경우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아무튼, 복지정책의 문제인지 장애등급제도의 결함인지 끝장이 났다. 그래서 가정으로 돌아가면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장애활동보조 도우미 시간이 모두 사라졌다. 그 말은 장애활동 보조 도움을 받아 나는 하루 8시간이라도 생활비를 벌러 나갈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버렸다는 것이다. 아내가 벌떡 일어나 살림을 하고 다닐 정도로 회복이 되던지 아내나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아무 해결책이 없이 붙어 있어야 한다는 선고가 내린 것이다.

 

오늘 저녁 6KBS 우리들의 세상인가 하는 고발 프로그램에 65세 된 뇌병변 장애1급의 장애활동보조 도우미 되시는 분의 고발이 나왔다. 연령 65세부터는 노인장기요양법에 의해 적용을 받게 되는데 어제까지 받던 월 195시간의 도움 시간이 월80시간으로 뚝 떨어지게 되어 큰 낭패에 빠졌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65세가 된다고 1급 장애인이 35급으로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연로해지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움직이던 범위가 더 줄어드는 것이 상식인데 법은 시간을 반토막도 안되게 줄여 버린다는 것이다. 그 보조 도우미 되시는 아주머니는 정작 다른 분을 또 돌보면 아무 상관이 없는데 환자가 불쌍해서 고발 프로그램에 그 사연을 알리러 나왔다.

 

국가가 무슨 땅 파서 퍼주는 단체냐? 고 말한다면 참 할말이 없다. 그리고 자기 삶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고 헤쳐나가야지 자꾸 기대고 의지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할 말이 없다. 그 누구도 자기 힘으로 돌아다니고 벌어먹을 수 있는 건강이 있다면 그런 복지 정책에 기대어 생존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주 소수 위장 혜택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 자존심 상하고 구차한 경험을 본인이 직접 해보았다면 그런 말은 하기 힘들 거다.

 

이제 국가로부터 도움 받는 직접적인 액수는 한 달에 4만원이 전부다. 무슨 도로통행료 할인이니 전기세 30%할인, 쓰레기봉투 몇 장 등 혜택이 있기는 하지만 별 없어도 표 안날 정도다. 그러면서도 심적 부담이 안 떠난다. 의료비야 사실 희귀난치병에 저소득층에 해당되어 감면해주는 것이니 굳이 장애등급과는 상관도 없으니까.

 

그럼에도 나도, 아내도 입이 자꾸 닫아 진다. 무슨 염치가 있어서 할 말이 있다고. 개인이든지 단체나 국가든지 남의 도움으로 거의 십여년 째를 버티고 살아온 주제에 남의 도움에 대해 많다 적다, 준다 안준다 말 꺼내는 게 수치스럽기도 하다. 아픈 사람 다친 사람이 그거 받자고 스스로 그렇게 된 사람이 한명이나 있겠냐만 결과적으로 겉으로 모양새는 그렇게 되었으니.

 

하지만 사랑이니 나눔이니, 또는 사회적 복지니 하는 것은 모두가 자기 힘으로 자립적으로 사는 것을 도덕적 기준으로 내세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비난해서는 안된다. 누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고 악의적으로 그런 상태가 된 것도 아니니까. 국가 단체는 혹 그런 부담을 불편해하고 줄이고 통제하려고 할 수도 있지만 종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까지 그러는 것은 정말 서럽다.

 

가장 서러운 사람은 장애인의 날에 수치와 불행의 그늘에서 허우적거리는 장애인, 또 그 가족들이라는 것을 왜 몰라주고... 혼자 힘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당당하게 재미있게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가장 절실해지고, 그렇지 못한 상황에 주눅들고 가장 괴로운 날이 오늘이고,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혼자 힘으로 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운 사람처럼 몰아세우는 그런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