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나쁜 년이 되어줄래?>
아침에 머리 감기고 세면시키려고 샤워실로 아내를 데리고 들어갔다.
좀 일찍 아이를 학교 데려다 주고 오느라 설쳤더니 잠이 모자라 고단하다.
“아...이럴 때는 돈 주고 딴 사람 시키고 좀 자고 싶다!”
“돈 많아? 얼마나 있어?”
“돈? 많지! 왜? 들고 도망가려고?”
“.........”
“아주 들고 가기 좋게 문 앞에 잘 보이도록 놓아두지 뭐,”
“사라져줄까? 그러지 말고 당신이 가면되잖아 ”
“아니, 그냥 도망가면 안 돼!
그럼 사람들이 아픈 마누라 두고 내뺐다고 얼마나 욕하겠어,
그리고 당신이 도망가도 그래, 못살게 굴어서 아마 그랬을 거라고.
그러니 내 돈 다 들고 도망가! 십 원도 남기지 말고 싹 다 챙겨서.“
“그럼 남들이 나 욕하잖아...”
“그래야 나도 양심에 가책도 없고 미안하지도 않고 편히 살지!
남들이 나 불쌍하다고 하고 당신 나쁜 년이라고 할 거고,
그러니 나를 위해 나쁜 년이 되어줄래? 흐흐”
에휴...어쩌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한심하다.
하지만 내 꼴을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어떻게 바빴는지 정신 줄을 놓았는지 티셔츠를 6일째 입고 있었다.
그런데 세어보니 바지는 그 사이 3번이나 갈아입었더라.
아내 목욕시키느라 젖어서 다른 반바지로 갈아입고,
밤늦게 아이 데리러가느라 서늘해져서 반바지에서 다시 긴 바지로 갈아입고.
그런데 서글픈 건... 티셔츠 하나를 6일째나 입어도 아무도 한마디도 안한다는 사실.
한 방의 환자들도 간병인도, 병원의 다른 선생님도.
하기야 아내도 딸아이도 아는 척도 않는데 무슨 말하랴.
내 존재감이 이렇게 없나? 나도 나를 못 챙기고 남도 나를 투명인간처럼 보다니.
기다리다 급하면 그냥 내가 나쁜 놈 되어 먼저 도망을 갈까? 참...
(동행 - 그래도 아내의 부축을 받아 함께 도망가면 참 좋겠다. 심심치도 않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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