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자를 모르겠다.
여자도 점점 모르겠다.
인간은 더더욱 모르겠다.
많이 만나고 겪을수록 사례만 많아질 뿐
무슨 존재인지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다만 우리는 비슷한 부분을 열심히 발견하여
계란처럼 꾸러미를 만들고 울타리를 치고
조금씩 안심을 할 뿐.
2.
세상의 모든 학문과 법칙에도 감정이 있다.
과학에는 정말 피 없는 이론만 있고 감정이 없을까?
많은 과학들이 가설과 증명으로 힘을 얻는다.
가설에는 스토리가 있다. 의지와 취향이 개입된다.
인내와 욕구가 이끌기도 한다.
하물며 사람의 일생과 사랑에야 말해 무엇할까.
3.
병원 창밖으로 따뜻한 봄날에 사람들이 오간다
햇살과 꽃나무 바람에 날리는 머리결이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다.
분명 그러하다.
세상에는 내 바람이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 있다.
태어나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살고 죽는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고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게 있다니.
많은 불행은 때로 남과의 비교와 경쟁에서 오기도 한다.
그 부담, 책임조차 내려놓아도 된다는 걸 배운다.
4.
그래도 여전히 모르겠다.
손 닿지도 바꾸지도 못하는 남들의 슬픔이
파도가 제방을 넘어 옷을적시듯 힘들게 한다.
가족의 이름으로, 이웃의 이름으로,
때론 정의의 이름으로 신앙적 의무의 이름으로
그 무게를 지고 눌려가며 신음하는 내 안의 불투명 정서도
아주 훌륭하게 정리를 해준 성경과 선배와 결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규칙과 변덕의 주문에 걸려 살아가는 나약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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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 모든 모름을 깔려죽지 않을 만큼 가볍게 만드는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