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수용소 내 맘대로 읽기 – 열>
10.
9장, 10장 ‘성도들, 사제들, 설교자들’ : 코끼리를 토끼의 품에 집어넣는 개신교인들.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산둥수용소 안에는 각 종교가 있었다.
신부들은 누구하고나 잘 지냈고 모든 사람과 섞일 줄 알았다.
술,도박, 욕설, 음란을 일삼고 심지어 마약을 하는 ‘잡놈’과도,
그러나 그들은 “세상”사람들과 접촉해도 그들의 성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정신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형적으로 이들은 ‘남은 자’사상의 울타리를 가지고 똘똘 뭉쳤다.
이들은 속으로 세상을 혐오했으며,
이 죄악 많은 세상에 자신이 물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6개월 만에 산둥수용소에서 400명이나 되는 가톨릭 사제들이 떠날 때
수감자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하나님, 저들 대신 개신교인들이 떠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350쪽)
“저 봐! 저거... 무식한 잡놈들, 세리, 창녀들이랑 밥 먹고 웃고 떠들고...”
“니들은 세례요한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욕하더니,
이제 내가 먹고 마시고 어울리니까 또 트집이냐?“
그랬다. 예수는 낮은 자들,
고고한 자들에게 천하고 손가락질 받는 이들을 위해 왔고, 살고 죽었다.
그를 따른다면서 참 모순되게 말하는 것이 바로 현대판 유대교, 개신교인들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일본인들을 사랑할 수는 없지만
모두 잊고 잘 되어 평화를 회복하도록 애쓸 것이라는 비신앙인 수용자 말에
선교사인 베이커는 인간도 아닌 일본인들은 없애버려야 해! 라고 했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일본 섬 전체를 말살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율법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흔히 개신교인을 지칭)은 그런다.
술집을 가느니 백인시민협의회 kkk단에 가입하는 게 낫고,
카드놀이를 하느니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공격적인 전쟁에 참여하는 낫다고...
그러나 다행하게 산둥수용소에는 구세군이나 에릭같은 성자에 가까운 이도 있었다.
[정결이라는 기준으로 자신과 이웃을 판단하며(“그는 욕을 했으니 기독교인일리 없어!”) 율법 조항들을 늘여가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은 삶의 모호함 가운데서 누가 영생을 소유했는지의 여부를 사소한 악덕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 367쪽]
[사회 상류층이 사랑을 자신의 목표로 삼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반면에 거룩함이라는 개념 안에서는 사회적 기대치와 도덕적 열정을 조합할 수 있었다. 경건한 교인을 일컫는 “거룩한 사람”은 교회의 경건한 기둥이 되는 동시에, 재산도 가질 수 있고 명성도 즐길 수 있었다. - 366쪽]
- 지루한 사족 : 가끔 개신교인들의 지나친 율법적 기준 강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코끼리같이 큰 영생의 진리를, 토끼같이 작은 행실이라는 품에 집어넣으려는 끝없는 시도 같다는 서글픔이다. 그리스도보다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더 숭배하는 집단이 아닐까 염려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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