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수용소 내 맘대로 읽기 – 여덟>
8.
7장 ‘설탕, 그리고 정치’ : 옳은 것과 가능한 것 중 무엇을?
사람들은 일생동안 늘 대면한다. 그리곤 선택한다.
‘옳은 것’과 ‘가능한 것’ 둘 중의 하나를,
창조 때는 ‘사람이 독처함이 좋지 않다’고 하며 이브를 붙여주신 하나님이
신약성경에서는 결혼 하지 않은 사람은 그대로 결혼하지 말라고 했다.
언제 종말이 올지는 아무도 모르니 ‘심판 전’이라는 단서가 사실 애매하다.
“신부님, 좀 더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평생 혼자 사는 선택이 옳은 선택일까요?”
“그럼, 옳은 선택이지!”
“만일 사람들이 모두 결혼하지 않고,
신부님처럼 수도원에서 신앙의 길을 가면 인류는 망하지 않을까요?“
“걱정하지마라. 옳은 길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가능한 것은 아니란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때론 ‘옳은 것’에 대한 끝없는 설명과 주장을 하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따지지 않는 면이 있다.
때로는 고의적으로 외면하면서 말하기도 한다. 나쁜 의도로...
산둥수용소에서도 그런 상황이 왔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해 방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옳은 것’이 있지만 벽에 부딪혔다. 소위 현실적인 힘이 버티는 불가능.
결국 ‘가능한 것’을 집행하면서 자신도 서글프고 약자들을 더 몰아낸다.
그래도 최악을 피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무엇인가 해야만 했다.
참 더러운 세상이다.
남에게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숱하게 그래야 할 때가 있다는 게.
위로 합리화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
그것을 못 견디면 사기에 가까운 ‘자유로운 방관자’가 되거나,
저돌적으로 들이받고 장렬하게 죽던지 미치던지 둘 중의 하나를 하게 된다.
라인홀드 니버는 인간의 선함과 합리성이 민주주의를 발흥했다고 했다.
하지만 산둥수용소에서는 인간의 악함과 이기심을 억누르기 위해 민주주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경제체계는 사회주의 방식을 선택했다.
그것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은 끝없이 탐욕적이고,
한편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 덜 일하고 더 가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은 부끄럽지만 모순의 원천이다.
산둥수용소에서 일어난 설탕과 감자 사건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세상이 말하는 공정과 공평은 크기와 무게를 똑같이 자른 감자를 말하고,
천국이 말하는 공정과 공평은 필요에 따라 차이가 나는 사랑의 방식이다.
[자유로운 방관자들의 마음에는 늘 이상적인 해결책이 떠오를 수 있고, 이런 해결책은 우리 마음에 그럴 듯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방법들이 정치적으로 무용지물이고 실행될 가능성도 없다면, 도덕적인 가치도 전혀 가질 수 없다. - 239쪽]
[사람들이 공평을 외치는 진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저 자기 것을 더 받아내려는 욕구였지.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이웃이 우리만큼 많이 받았냐가 아니라 이웃이 우리보다 많이 받으면 안 된다는 거네요. - 262쪽]
[인류 역사상 미덕보다는 이기심이 정의의 발전했다는 기묘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 264쪽]
-지루한 사족 : 하늘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가능한 것’에서 ‘옳은 것’으로, 사랑에 바탕한 공정 공평이 이루어져가는 나라를 말할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약을 동시에 먹이는 어리석은 공정함을 집행하지 않고 증상에 맞는 처방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 끝 말은 참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이웃을 희생시켜서라도 이웃보다 더 많이 갖기를 바라는 죄인이다. 따라서 인간다운 사회를 이루기 위한 효과적인 법이란 인간의 행동을 충분히 통제할 만큼 “현실적”이어야 한다. -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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