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이의 외로움을 얼마나 알아줄까요?>
참 많이 외로웠을 겁니다.
“조금만 더 깨어 같이 기도해줄 수 없었니?”
그렇게 땀이 피가 되도록 괴로운 순간에 같이 기도하러간 제자들이
곤한 일정으로 잠이든 모습을 보면서,
두 번, 세 번을 깨우는 동안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정녕 니가 세 번을 나를 모른다 할거야.”
누구도 못하는 말,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신분을 알아준 수제자조차
잡혀가고 매 맞고 조롱당하는 순간에 외면할거라는 짐작을 하면서,
큰소리치는 제자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는 비통한 심정은...
어느 누구인들 내 몸, 내 가족 아닌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곁에 있어줄 수 있을까요?
어느 분이 제게 물어보더군요.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요?”
물론 저도 못합니다.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낙심합니다.
우리는 무슨 황당한 자신감으로 사랑을 말하고 나눔을 말하고 정의를 말할까 싶어서요.
그럼에도 변함없이 변함없는 사랑을 말하고 누구보다 가까운 우정을 과시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모두 무기력해질 연약한 사람들인데...
혹 자신에게 닥친 가난이나 질병이나 실패는 견딥니다.
그러나 자신과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에게 닥치는 고통에는 무릎이 꺾입니다.
그 힘든 순간에도 세상은 여전히 웃고 기뻐하고 성공을 누리는 이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축배를 드느라 바쁘고, 축하를 주고받는 사람들에게 잊혀져가는 외로움 때문입니다.
누가 남의 외로움을 이해할까요?
더구나 무너지고 보잘 것 없는 불행의 터널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라면,
단 한 사람
비웃음과 조롱속에 삶의 의욕을 상실한 세리의 집에 스스로 초청을 하라던 분
창녀를 향한 몰매를 막아주고 증오만이 육신을 갉아먹던 마리아를 인정해준 분
“너희는 내가 집에 들어 올 때 발 씻을 물도 향유도 주지 않았는데
이 여인은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칼로 그 발을 닦고 향유를 부었다.
나의 장례는 이 여인의 향유로 준비될 것이다“
그렇게 남들 앞에서 존재를 인정해주고,
아무도 함께 해주는 건 고사하고 다독여주지 않는 고독한 마리아를 챙겨주시는 분
단지 그분만 빼고 말입니다.
오늘 아내의 어머니가 쓰러져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참담하고 괴로운 심정으로 지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새 생명이 태어나고 만나고 결혼하고 성공을 기뻐하고 여전합니다.
세상은 변함없음을 보면서 엔도슈샤크의 소설 ‘침묵’을 떠올립니다.
한 사람이 목이 달아나고 세상에서 죽임을 당해도 끄덕도 안하고
파리 한 마리가 여전히 왱왱거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끔찍함을 본 신부의 느낌으로,
세상은 당연히 그렇습니다.
나도 여전히 그렇고 남들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다만 어두움과 고난에도 머리카락 한 올도 세고 계시면서
변함없는 지킴이이신 하나님이 계셔서 참 다행입니다.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어둠은 결코 위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빛이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하나님 없는 부유함, 행복, 성공이 더 무섭다는 어느 목사님의 고백에
아멘을 속으로 조용히 해봅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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