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175 – 세상이 온통 아프다. 그래서 나도 아프다.>
세상이 온통 아프다 그래서 나도 아프다.
아닌가? 내가 아프니까 세상이 아픈 건가?
아침 6시30분에 문자가 왔다.
아이가 목감기가 걸려 걸어서 가기가 좀 힘들다고,
30분을 걸어서 가는 학교를 좀 태워달란다.
목이 불편해 말도 안하는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데
하늘이 회색빛이다. 내 마음처럼...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 사람들이 참 많이 아프다.
바로 곁의 아내는 7년째 병원에서 아예 살고 있고
나도 여기 저기 고장난 채로 버티고 있다.
떠올려 보는 사람마다 본인이 아프던지
사랑하는 가족이 아프던지 온통 세상자체가 큰 병동이다.
며칠 전 일산 암센터로 문병 와주신 인도선교사 공인현목사님도
우울증 치료를 받다가 최근에 좋아지셨단다.
나도 작년에 우울증치료를 받았다. 또 다른 재속수도원을 하시는 박총님도 그랬다고 스스로 말하셨다.
아내도 오랜 투병에도 잘 버티더니
어저께는 결국 60일치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다.
누구 몇몇만 그런 걸까?
아니다. 옆구리 찔러보면 다 아야! 소리가 나오는 사람들이다.
지금 어디가 아프던지 지난 날 어디가 아팠던지,
아님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서 같이 아프고 있는 중이던지,
사랑하는 아내를 10년 넘도록 돌보는 김병년목사님도 그러시고,
소풍중인 엄마를 돌보는 황교진형제도 그러고 살고 있다.
세상은 다 건강한 사람들이 사는데 그중에 몇이 아픈 것이 아니라
다 아픈 사람들 중에 몇이 다행스럽게 안 아픈지도 모른다.
개인으로 보면 늘 건강하다가 잠시 아픈 게 아니라
늘 아픈 중에 좀 덜 아프거나 가끔 한 곳도 안 아픈 채 건강하는지도...
‘밥퍼’로 알려진 최일도목사님이 예전에 그런 말 하셨다.
자신은 인간의 바탕이 선한 것이 아니라 악하다고 생각한다고,
성선설이 아니라 성악설을 믿는다 하셔서 그때는 참 이해가 안 되었다.
‘어떻게 목사님이 사람의 본성을 악하다고 보시지?
그것도 많은 사람들에게 밥도 주시고 병도 치료해주시며 평생을 보내는 분이...‘
그런데 살다보니 점점 그 말에 공감이 된다.
사람은 본디 선한 성품인데 살면서 망가지거나,
늘 선하다가 가끔 악한 게 아니라는 것을.
또 모두가 선한데 몇몇이 악한 게 아니라 모두 악한데 몇몇이 선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 건강하면, 자기만 행복하면 세상도 몽땅 그런 줄 안다.
물론 그 반대로 보기도 한다. 자기가 아프면 온통 아픈 세상으로 보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인데 터무니없는 그런 말 하지 말라는 분도 계신다.
신앙심이 약해서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이나 한다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다. 하나님을 바보로 보지마시라.
그건 사람들이 바라는 희망사항일 뿐이지 결코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
모두가 건강하고 모두가 불행이나 상처라고는 조금도 없으며
배고픔도 추위도 이별의 눈물도 없는 그렇게 좋기만 한 세상을
지금 당장, 여기에 주시고 있다는 주장은 하나님을 바보인줄 아는 말이다.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지어 영원히 삽시다!’라고 하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내려가자!’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족들이 저 아래 신음의 세상에 살고 있는데
빛나는 산위에서 셋이 영원히 살 수 없다고 죽으러 내려가셨다.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고, 하나님이 도와주실 필요한 일도 전혀 없는
그런 세상을 주시고, 하나님이 스스로 왕따를 당하거나 잊혀질 일을 하실거라고?
그런 세상을 주시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고 이 세상은 아니다.
지금 여기 이 땅은 모두 아픈 중에 몇몇만 안 아프고
늘 아프며 사는 중에 가끔 안 아프고,
모두 슬프고 괴로운 중에 몇몇이 좋은 일로 웃으며 사는 곳이다.
그런데도 무정하신 하나님은 그 속에서 서로 돌아보라며 냅두신다.
서로 손잡아주고 등 두드려주며 함께 헤쳐 나가라고 말만 하신다.
그러다 못 견디게 외로우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라고 기다리신다.
죽음이 삶 위에 언제나 구름처럼 떠다니고 있으며 생명의 주인이 네가 아니라고
날마다 순간마다 새기듯 알게 하신다.
오늘 창고 두둑하니 몇 년 끄떡없다 배 두드리며 시건방 떨지말라며...
진짜 믿음이 좋다는 것은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아픈 중이고 사람은 본성이 악하며 늘 고통 중에 산다는 것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너도 우리도 모두 그렇다는 것,
그 상황을 좌우하는 자루가 우리에게 없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진짜 믿음은 좋을 때가 기준이고, 잘 된 사람만이 복의 기준이라고 보지 않고
그런 복만 날마다 달라고 목매지 않고, 그것도 나만, 내 가족만 달라고 조르지 않고,
이 땅에서 서로 힘이 되면서 보탬이 되게 애쓰고 사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는 걸,
울 일이 많아서 자주 울고, 탄식하는 사람 곁에서 같이 탄식하고,
악한 사람들이 서로 상채기를 낼 때 나도 당하면서 복수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면서 하루씩을 살아 내는 것이다.
그걸 믿음이라고 보아주실 거다. 진정 니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실 것이고.
“딸아, 니가 아프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
아내야, 당신이 오래 아프니 내 마음도, 내 몸도 따라 많이 아프다.
이 세상을 지나가느라 우리가 몹시 고단하구나.
어떻게 덜어줄 수가 없구나. 그저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자.
사이사이로 주시는 기쁨과 웃음을 진통제 삼아 넘기면서...
바닥에 떨어져도 먼저 떨어져서 기다리고 있는 분
죽음이 너무 두려운데 먼저 죽어서 기다리는 분
종종 억울해서 못 견디겠는 데 더 억울함을 참고 감수하신 분
온갖 유혹을 견디느라 힘든데 더 큰 유혹을 먼저 뿌리친 분
그 분, 예수님이 하늘을 포기하고 이 땅 우리에게로 와주셨으니
할 말이 없잖아? 한편으론 그래도 위로가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