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줄 수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 - 우리집 넷째 아들>
“아파...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아”
열흘 정도의 기간에 연달아 세 번을 장거리를 오가고, 피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또 맞고 온 항암주사로 녹초가 되어 재활치료도 건너고 누워만 지냈다. 일주일쯤이 지나면서 아내는 조금 나아질만하니 또 눈 통증이 심해지는 모양이다.
- ‘하나님, 저는 한 사람만 사랑하기에도 벅차다구요. 가진 체력도 마음도, 비용도...’
저절로 그런 비명 비슷한 투정이 나온다. 정말 단 한 사람도 더 사랑으로 대하고 보아줄 여력이 없는 심정이다. 아픈 사람이든 외로운 사람이든, 내게 남은 에너지가 없다. 고갈된 느낌,
오전에 우편물이 하나 왔다. 뜯어보니 사진 두 장과 편지도 들어 있었다. 네팔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아들, ‘따망’ 에게서 왔다.
몇 년 전부터 작은 금액으로 몇 군데 후원을 시작했다. 우리에게 도움주시는 분들의 손길이 그야말로 생산적으로 투입되는 도움이 아니고 그저 연명하고 유지하는 비용만 같아서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작은 금액이라도 누군가에게 꼭 도움이 될 일을 시작했다. 시간을 내기도 힘들고, 몸으로 하기도 힘들어 후원하는 것으로,
두 살이던 아이가 벌써 다섯 살이 되었고 키도 자랐다. 국내의 몇 명과 단체는 소식을 듣기만하지 개별적으로 지켜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아이는 첫 번째 발걸음이었고 가족으로 마음먹었기에 계속 사진과 소식을 받고 있다.
“머리가 몸에 비해 되게 커 보인다! 따망도 나중에 덩치가 큰 애가 되려나봐~”
아내는 아이의 사진을 보면서 그랬다. 더구나 이번 보내온 사진에는 1년에 한 번만 줄 수 있는 선물비의 규정에 따라 보낸 돈으로 염소를 사서 주었나보다. 염소보다 덩치가 작은 아이의 모습에 웃음과 기쁨을 느꼈다.
이번에 항암주사를 맞는 과정에 전에 없이 좀 벅차다가 또 도움으로 넘겼다. 그래서 그나마 유지하던 바깥으로 흘려보내는 쥐꼬리만 한 후원도 다 중단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몹시 마음이 침울했다.
어떤 분들은 그런다. 아무리 가난해도 정신만 행복하면, 혹은 영적 신앙심만 좋으면 다 견디고 살아낼 수 있다고, 나도 종종 그 말에 동의를 한다. 의술도 안되고 돈 있어도 무기력한 경우도 많았으니까. 그리고 사람사이의 미움과 갈등은 그것하고 또 상관없이 못 견디는 괴로움이 되는 경우도 겪어보았으니,
하지만 이젠 조심스럽다. 몸의 고통은 몸의 해결책이 필요하고, 마음의 괴로움은 마음의 위로가 있어야 하며, 영혼의 구원은 영적인 감사와 깨달음이 반드시 따로 따로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며, 그것은 떡은 입에도 대지말고 말씀으로만 살라는 명령은 아니었다. 몸은 떡으로, 영혼은 말씀으로 살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상식적인 지적이었다. 형제더러 가서 잘 먹으라, 너희 배는 너희가 알아서 채워라!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가르치고 너희가 줄 수 있으면 주라고까지 했다.
-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자도 없구요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요한자도 없어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를 사랑하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나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이라는 찬양곡에 나오는 가사다.
하나님은 ‘이젠 정말 바닥입니다. 지쳤다구요’ 하는 내 투덜거림에도 아주 작은 염치 하나와 실오라기 같은 사랑의 마음을 주셔서 ‘따망’과 맺어주셨다. 염소의 고삐를 잡고 흐뭇하게 웃을 개구쟁이 아이의 얼굴을 내게 보도록 해주셨다. 그 어리고 작던 아이가 몇 년 사이에 키가 훌쩍 자란 모습으로,
이것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인가 보다. ‘봐, 너도 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나눌 사랑이 아직 있잖아? 그러니 너도 힘내!’ 라고,
“아파...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아”
열흘 정도의 기간에 연달아 세 번을 장거리를 오가고, 피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또 맞고 온 항암주사로 녹초가 되어 재활치료도 건너고 누워만 지냈다. 일주일쯤이 지나면서 아내는 조금 나아질만하니 또 눈 통증이 심해지는 모양이다.
- ‘하나님, 저는 한 사람만 사랑하기에도 벅차다구요. 가진 체력도 마음도, 비용도...’
저절로 그런 비명 비슷한 투정이 나온다. 정말 단 한 사람도 더 사랑으로 대하고 보아줄 여력이 없는 심정이다. 아픈 사람이든 외로운 사람이든, 내게 남은 에너지가 없다. 고갈된 느낌,
오전에 우편물이 하나 왔다. 뜯어보니 사진 두 장과 편지도 들어 있었다. 네팔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아들, ‘따망’ 에게서 왔다.
몇 년 전부터 작은 금액으로 몇 군데 후원을 시작했다. 우리에게 도움주시는 분들의 손길이 그야말로 생산적으로 투입되는 도움이 아니고 그저 연명하고 유지하는 비용만 같아서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작은 금액이라도 누군가에게 꼭 도움이 될 일을 시작했다. 시간을 내기도 힘들고, 몸으로 하기도 힘들어 후원하는 것으로,
두 살이던 아이가 벌써 다섯 살이 되었고 키도 자랐다. 국내의 몇 명과 단체는 소식을 듣기만하지 개별적으로 지켜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아이는 첫 번째 발걸음이었고 가족으로 마음먹었기에 계속 사진과 소식을 받고 있다.
“머리가 몸에 비해 되게 커 보인다! 따망도 나중에 덩치가 큰 애가 되려나봐~”
아내는 아이의 사진을 보면서 그랬다. 더구나 이번 보내온 사진에는 1년에 한 번만 줄 수 있는 선물비의 규정에 따라 보낸 돈으로 염소를 사서 주었나보다. 염소보다 덩치가 작은 아이의 모습에 웃음과 기쁨을 느꼈다.
이번에 항암주사를 맞는 과정에 전에 없이 좀 벅차다가 또 도움으로 넘겼다. 그래서 그나마 유지하던 바깥으로 흘려보내는 쥐꼬리만 한 후원도 다 중단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몹시 마음이 침울했다.
어떤 분들은 그런다. 아무리 가난해도 정신만 행복하면, 혹은 영적 신앙심만 좋으면 다 견디고 살아낼 수 있다고, 나도 종종 그 말에 동의를 한다. 의술도 안되고 돈 있어도 무기력한 경우도 많았으니까. 그리고 사람사이의 미움과 갈등은 그것하고 또 상관없이 못 견디는 괴로움이 되는 경우도 겪어보았으니,
하지만 이젠 조심스럽다. 몸의 고통은 몸의 해결책이 필요하고, 마음의 괴로움은 마음의 위로가 있어야 하며, 영혼의 구원은 영적인 감사와 깨달음이 반드시 따로 따로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며, 그것은 떡은 입에도 대지말고 말씀으로만 살라는 명령은 아니었다. 몸은 떡으로, 영혼은 말씀으로 살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상식적인 지적이었다. 형제더러 가서 잘 먹으라, 너희 배는 너희가 알아서 채워라!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가르치고 너희가 줄 수 있으면 주라고까지 했다.
-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자도 없구요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요한자도 없어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를 사랑하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나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이라는 찬양곡에 나오는 가사다.
하나님은 ‘이젠 정말 바닥입니다. 지쳤다구요’ 하는 내 투덜거림에도 아주 작은 염치 하나와 실오라기 같은 사랑의 마음을 주셔서 ‘따망’과 맺어주셨다. 염소의 고삐를 잡고 흐뭇하게 웃을 개구쟁이 아이의 얼굴을 내게 보도록 해주셨다. 그 어리고 작던 아이가 몇 년 사이에 키가 훌쩍 자란 모습으로,
이것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인가 보다. ‘봐, 너도 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나눌 사랑이 아직 있잖아? 그러니 너도 힘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