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날마다 한 생각

누가 누구를 돕는건지...

희망으로 2014. 8. 15. 15:17

<누가 누구를 돕는다구?>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드린다!’

 

이 말이 맞는 것일까? 참 자주도 사용하는 표현이다. 하나님께 우리가 위해 줄 무슨 대상이 있을까? 내 것을 받아서 채워야 할 결핍이 하나님께 있기는 한 것일까?

 

돕는다는 것은 더 많이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에게, 더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낮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지? 모르는 이름인데...”

 

낮선 주소에서 편지가 한 통 병실로 왔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주소. 개봉해서 읽어보니 울타리가 유난히 높은 곳, 갇힌 자들이 생활하는 교도소에서 왔다. 무슨 일로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기독교교도소이고 2년 조금 넘게 남았다니 다행이다.




 

재식 형님!’

이렇게 시작된 이 편지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월간쪽지 해와달에서 우리 가정이야기를 보았다고 한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이인데 나중에 살다 자기에게도 그런 불행이 닥치면 잘 견디고 넘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았단다. 그리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날마다 하는 묵상뿐이라며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한다.

 

누가 더 낮은 곳이고 누가 더 처지가 어려운 것일까? 기준에 따라 왔다 갔다 하니 막상막하인걸까?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가족이라는 팀으로 견디고 있고 남들에게도 민망하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심신의 자유는 누리는 중이니 내가 오히려 위로하고 도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틀을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두 어장 답신을 썼다. 내 형편이 그리 밝은 전망도 없고, 또 글로 보이는 만큼 씩씩하거나 웃고 살지는 못하지만, 하루씩 견디다 보니 7년이나 살게 되었다고, 그러니 너무 잘하려는 기준이나 혹 닥칠 염려를 너무 하지 말고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 노력하며 가정을 이루어가면 잘 될 거라고,

 

어쩌면 돕는 기준으로 보면 내 형편이나 내게 편지를 준 그 분이나 둘 다 그다지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 분은 나보다 더 희망도 없고 부글거리는 분노를 가지고 살지도 모르는데 성경구절을 첫 머리에 적어 보내올 만큼 넉넉했다.

 



하나님, 제게 왜 그러세요?’ 라고 필립 얀시는 책에서 물었다.

하나님 어디 계세요?’라고 신학자도 물었고 히틀러의 학살에 죽어가면서 어느 소년도 물었다.

 

도무지 나는 하나님께 드릴 물질도 재능도 영광도 거의 없는 처지다.

사랑의 너그러운 여유도 자꾸 야금야금 줄어들고 있는 게 내 눈에도 보일 지경이다. 그러니 걸핏하면 묻게 된다. ‘하나님 제게 왜 그러세요?’라고, 그러니 돕기는 고사하고 날마다 도움 받을 일이 줄서서 기다린다. 이것도 도와주세요, 저것도 필요해요! 라고,

 

그러다 조금만 늦어도 바로 튀어 나온다 하나님, 어디 계세요?’ 라고, 차마 못한 한 마디는 좀 민망해서 슬쩍 속에 감추고, ‘도대체 뭐하느라 안 보이고 늦고 그래요? 죽을 지경인데...’

 

아이쿠! 죄송해요

아뇨, 제가 잘못했네요

 

병실 바로 앞 장애인 화장실에서 한 할머니가 문을 훤히 열어놓고 볼 일을 보는 중이었다. 연세가 많고 몸이 많이 불편(뇌질환으로 편마비가 온 경우 등)해지면 그렇게 남의 눈 생각하는 스타일이 어쩔 수 없이 사라진다.

 

그 와중에 빨리 화장지통도 비우고 바닥도 걸레질을 하고 다른 층으로 가야하는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그 할머니 다리 사이로 대걸레질을 하다가 걸레 숱이 발을 타고 넘어버렸다. 물이 묻고...

 

대개 이 상황이면 서로 삿대질이 나오고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지는 법이다. ‘이게 뭐예요!’ 라고 하면, ‘좀 발을 들어주면 되잖아요! 바쁜데그런 식으로,

 

그런데 내 눈앞에서 이상한 말들을 주고 받으셨다 그 두 분이,

아이고 발을 치워드려야 하는데, 미안해유!” 할머니가 먼저 그랬다.

제가 조심해야 하는데, 아님 좀 있다가 했어야 하는데...미안하네요.” 라고 청소 아주머니가 말 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바꾸는 일이다

 

C S 루이스가 그렇게 말했단다. 참 얼굴 뜨겁게 한다. 내게...

돕는 기준도 모르고 감춘 삿대질로 따지기만 하던 내 상식을 무안하게 한다.

 

돕는 것은 반드시 많이 가지고 힘센 사람만이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서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걸 이렇게 말하던가? ‘나눔이라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채권자와 채무자처럼 일방적으로 주거나 갚는 일이 아니고 기쁨으로 나누는 사이, 관계가 아닐까 싶다.

 

그까이거 가난하고 망가진 몸뚱이, 일그러진 삶이면 어떠랴, 어차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모두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질 유한 생명인데, 잘 난 사람이나 못 난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왕이나 백성이나 우린 모두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바라는 사람들 아닌가?

 

기쁨, 자유, 희망, 평안 그런 대상을 더 얻고 싶어 하는~~

손에 든 목적지 주소 다시 확인하고 또 걷자! 고립되는 욕망 말고 나누는 세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