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0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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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로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책은 어느 이웃분께 선물로 받았다.
내가 너무 힘드니 위안을 달라고 어린아이 떼쓰듯 댓글을 썼다.
감사하게도, 일면식도 없는 그 분은 내게 선뜻 이 책을 선물해주셨다.
희귀난치병에 걸린 아내를 간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멀쩡하던 아내가 어느날 갑자기 원인도 모를 통증을 호소하며 병상에 누웠다.
남편은 다니던 직장도 관두고 아내를 곁에서 간병한다.
아내는 여자로서의 모욕감을 모두 느낄 수 있으면서도
자신의 몸을 스스로는 마음대로 가누지 못해
남편에게 사소한 하나 까지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부모의 손길이 필요할 어린 아이들 곁을 지켜줄 수도 없다.
내 어머니의 임종도 전화로 들을 수 밖에 없다...
책의 어투는 담백하건만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면서 눈에서 후두둑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눈물을 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단숨에 다 읽었다.
표지 뒤편의 독자 서평에 쓰인 글귀가 가슴에 남았다.
건강하고 일이 잘 풀릴 때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너무나 쉽지만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픈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는 말..
한 명의 보호자로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남자로서
어느 집의 가장으로서 느끼는 솔직한 감정들.
책 후반부에 환자가 펜을 쥐고 삐뚤삐뚤 써내려간 메모와
어린 딸이 부모를 위해 쓴 편지와 그림이 실려있는데
그 대목에서 참 많이 울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누구도 못해주었던 온기 가득한 위안을 얻었다.
병원에서 보호자로 지내본 적이 있다면
아마 비슷비슷한 경험과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실제 경험과 맞물려
글귀 하나하나가 현실로 다가와서 읽혔다.
멀쩡하던 가족이, 연인이, 친구가, 하루아침에 환자가 되고
시름시름 앓고 있을 때의 당혹감.
보호자는 환자를 응급실에 뉘여놓고
병원 로비의 빈 의자를 찾아다니며 쪽잠을 잔다.
입맛이 뭐가 당기냐며 끼니를 거르기 일쑤이고...
밤엔 환자의 불편을 해결해주느라 잠을 설친다.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기력한 이를 앞에 두고 느끼는 답답함.
하얀거탑안에 갇혀있는 숨막힘과 대신 아파줄 수 없는 무력감, 같은 것들...
간병인을 쓸 형편이 되지 않아 직접 간병을 맡다보면
서로 신경이 예민해져서 다투기도 한다.
사실은 서로 고생시켜서 미안하고 대신 아파주지 못해 미안한 것이면서
그 미안한 마음을 엉뚱하게 다툼으로 표현하게 될 때가 있다.
당연하듯 멀어져가는 보호자 자신의 삶...
병실에 가만히 앉아 뭐가 그리 바쁘냐고,
책이라도 읽으면 되지 않느냐 물을지도 모르겠다.
병실의 삶은 그 나름대로 또 바쁘다.
새벽 5시에 수액병을 들고 들이닥치는 간호사,
외래 진료가 시작되기 전에 휠체어를 끌고 내려가 엑스레이를 찍게 하고
다시 병실로 와서 앉아있다보면 배식아주머니가 식사를 가져온다.
식판을 치우고 나면 담당 교수부터, 레지던트, 인턴 등등
의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회진을 하고
청소 아주머니가 지난 하룻동안 꽉 찬 휴지통을 비워주고
바닥을 깨끗하게 닦아주고 나가면
어느새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가 있다.
점심 식사가 나오고, 누군가가 병문안을 오고,
가끔은 처치실로 끌려가는 환자를 가슴아프게 바라보기도 하고,
주사바늘을 꽂아놓은지 오래되어 다른 혈관을 찾아야 한다는
간호사와 환자 사이에 일어나는 실갱이를 바라보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또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있다.
갓 의사면허가 나온 앳된 얼굴의 인턴과,
그보다는 조금 여유로워보이는 레지던트가 가끔씩 와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가는걸 지켜보다가,
또 환자가 보고 싶어하는 일일드라마를 틀어주고
그게 끝나면 환자를 부축해서 양치를 하고, 씻기고...
10시도 되기전에 이미 소등이 된 병실에
우두커니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다가
언제 잠든지도 모르게 잠들고...
새우잠을 자다가도 환자가 불편을 호소하며 깨우면
잠자리를 매만져주거나 혹은 의료진을 불러다 대령하고,
그러면 또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무얼 하는가 싶어지고, 사고는 단순해진다.
작고 사소한 것이 다 서러워지기도 한다.
환자는 몸의 통증으로 신음할때
그걸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보호자는
아무도 보듬어주지 않는 마음의 통증에 신음한다.
내가 경험한 병원에서의 삶이란 그랬다.
책에는 이렇게 세세한 일상 까지는 적혀있지 않지만
이 모든 과정을 다 경험하고서 깨달은 감정들을
책으로 냈을 것이다.
긴 병원생활로 인한 경제적인 궁핍,
환자의 차도에 따라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번 롤러코스터를 타고,
매일 함께 붙어있으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서로간의 다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럼에도 덤덤히 살아가는 것.
몸을 가누지 못하던 아내가 거칠게 까서 입에 넣어주는 귤 한알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
내 선택과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것.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본문 중에서]
삶은 고되고 고됐다. 매일 잠자리에 들 때면 밤새 나를 좇을 악몽과 그 꿈에서 깨어나면 찾아올 더욱 악몽 같은 현실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러나 지금보다 나은 상황일 때에는 어떠했던가 생각해 보니 마찬가지였다.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행복했던 때에도 나름의 괴롭고 아픈 일들로 잠자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어느 때에야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즐겁고 기쁜 일이 될 수 있을까? 별 것 아닌 일들로도 잠 못 이루던 날들이 후회스러웠다. - 33p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고 막다른 골목에 몰려 보아야 주변의 옥석을 가릴 수 있게 된다. 본인도 그렇지만 친구도 제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은 고개를 돌리거나 무시하고, 어떤 사람은 변함없이 대해 주고, 또 어떤 이는 더 가까이 다가와 자상한 도움을 주려 한다. - 43p
남은 건 사계절 필요한 옷가지 몇 개와 책 몇 권, 시디 몇 장 뿐이었다. 50년 인생을 살고 남은 것이 고작 승용차 트렁크에 담길 짐 몇 개였던 것이다. 아이들을 태우고 그대로 우주로 떠나도 될 만큼 정리가 되었다. 허무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너무 가난해져서 슬픈 것이 아니라 이제껏 아등바등 쥐고 살았던 것들이 그렇게 소중한 것들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 51p
'남의 암보다 내 감기가 더 아프다'는 말이 있다. 타인의 고통을 오롯이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 남의 상처보다 내 상처를 먼저 치유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인간의 한계다.
- 67p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책이 있다. 저 책의 제목대로라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범죄자였다. 아내가 심하게 아파서 사경을 헤매고 집안이 무너지고 나서야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기 시작했다. 감형, 아니면 미결수 정도라면 적당한 표현이려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사랑이라기보다는 '탐심'에 가까웠다. 아름답고 예쁜 대상에 대한 본능과도 같은 사랑이었던 것이다. 원하는 것이 앞질러 가면 못 채워진 갈증을 채우기 위해 마냥 질주하는 충동적인 감정이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구색'이 되었다. 남들에게 아내라고 소개하며 내가 멀쩡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도 아내는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의무'의 대상이었다. 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잔소리와 필요조건으로 애증이 교차하는 사이가 되어갔다.
그저 살아서 곁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아내 곁을 흔들림 없이 지킬 수 있게 된 것은, 아내가 시력을 잃어 영원히 볼 수 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고 나서였다. 퉁퉁 부은 얼굴, 여기저기 주사자국으로 멍들고 땀과 약으로 범벅이 된 아내를 붙잡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게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나는 간신히 사랑의 모습을 얼핏이나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 73p
언뜻 보면 아무 근심없이 잘만 살아가는 듯한 부러운 사람도 들여다보면 구멍 숭숭 뚫려 있고, 털어놓고 들어주다 보면 눈물 펑펑 쏟아지는 그런 사연 하나 쯤은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더욱 생각해야 할 것은 모두가 상처를 받지만 상처받는 모두가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원치 않는 불행으로 인해 몸과 영혼에 고통의 흔적이 남는 것은 슬퍼할 일이나, 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더 아름다운 인생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삶의 묘미인 것이다. -146p
우리 모두는 죽는다. 단 1퍼센트도 피하지 못하고 100퍼센트 죽는다. 어차피 사망률 100퍼센트의 삶을 살면서 가족에게 힘이 되지 못하고 아픈 몸을기대어 누일 사랑의 기억조차 만들지 못한다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인가? 서로의 어깨를 고스란히 기대어 이 길을 가는 것만큼 귀한 일은 없을 것이다. 고통뿐인 100퍼센트의 삶 말고 기대어 쉴 곳 있는 100퍼센트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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