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의 극치 - '하나님자리 제게 물려주시지요?'>
간밤에는 또 꿈을 꾸었다. 무엇이 불안했기에 그런 꿈을 꾸었을까? 내가 암이 걸려서 아픈데 찾아 간 병원에는 의사가 자리를 비웠고, 부득이 비슷한 증상을 가진 친구의 의사에게 약을 타서 돌아오는 꿈.
“아, 눈이 아프다...”
“또?”
“그러게 오늘만도 벌써 세 번째 약을 넣는데 안 좋아지네”
“아로나민 같은 거 좀 사다 먹어, ”
요즘은 눈이 계속 아프다. 보고 싶은 책을 몇 페이지만 읽어도 뿌리가 아프고 눈이 침침해진다. 마치 밀가루 풀을 한방울씩 눈에 뚝뚝 떨어뜨린 것처럼 뿌옇고 끈적거린다. 그러니 책도 펴기가 어렵고 글도 쓰기 불편하다. 내가 생각해도 자주 피로하고 간이 나빠진 것 같다. 먼저 병원에서 받아온 간 회복약도 아직 조금 남았는데,
간만 나빠진 게 아니다. 병원에서 아내에게 나오는 짜먹는 위장약을 나 하나 아내 하나, 그렇게 사이좋게 나누어 먹더니 이젠 아예 내가 두 개, 아내 하나, 어쩔 때는 내가 다먹고 아내는 안먹는 날이 부지기가 되었다. 만성 위염이 진짜 착 달라붙었나보다. 할 수 없지 뭐, 나중에 천국까지 데리고 가야겠다. 흐흐흐!
그런데 웃다가도 염려가 된다. 이렇게 여기 저기 나빠지다가 나 먼저 덜컥 하나님 만나러 가면 남은 아내는 어쩌지? 밤에 세 번 네 번 깨서 배뇨시키는 일은 누가 해주지? 머리감기고 목욕시키고, 때로는 바깥 구경은 누가 시켜주지? 갑자기 목에 뭐가 걸린다. 덩어리 하나가...
“야! 좋다”
“그러게 벽마다 손잡이도 다 있고, 집안에 턱도 하나도 없네!”
“목욕실도 특이하다. 들어가고 나오기 쉽게 낮춰서 바닥에 매립했네.”
아내가 아프기 전 다니던 모 교회에 한 분뿐이신 장로님이 아내보다 두 해 전에 먼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큰 과수원을 운영하시다가 새벽기도 마치고 아침 작업 중에 발병하셨다. 그 뒤로 큰 병원을 3년 넘게 전전하시다가 4살 정도의 인지기능만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우리는 교회를 떠나 병원으로 가고, 그 장로님은 다시 교회로 돌아오시고. 그렇게 장로님과 아내는 교회의 큰 기도제목 두 개가 되었다.
그 장로님은 먼저 살던 집과 과수원을 팔아서 큰 길 옆에 새로 집을 지으셨다. 마당도 널고 휠체어 타기 편하게 세멘으로 포장하고 집 들어가는 길도 경사로로 만들었다. 집을 한 번 들어가 보았는데 온통 장애인에 맞추었다. 벽마다 손잡이를 달았고, 목욕실도 환자용, 집안에는 턱을 모두 없애고, 그때는 아내가 지금처럼 장애가 심하지 않아 그다지 부럽지 않았는데 이제는 무지무지 부럽다. 아내도 그런 집이 있으면 돌아가기가 쉬울 텐데...
그런데 참 묘하다. 이런 염려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 시점을 돌아보니 금방이라도 큰일 날 것 같이 위급한 상황이 지나고부터다. 너무 아프고 어디를 어떻게 돌봐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을 때는 작아 보이고 사소한 문제는 염려 대상도 아니었다. 나중 내가 세상에 없을 때나 병원에서 나가서 생활할일 따위는 목록에 끼지도 못할 때는 걱정도 같이 없었다.
이제 조금씩 고비도 넘기고 심하던 상태도 좋아지면서 그 많은 문제들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한쪽에서는 가벼워지는데 한쪽에서는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아내에게서 내게로 불안이 자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더 이상 내려 갈 곳이 없다고 보일 때는 한편 편했다. ‘더 이상은 나빠질 것도 없잖아?’ 이러면서, 그런데 조금씩 올라가면서 상대적으로 바닥이 깊어진다. 떨어 질 곳이 생긴다. 추락하면 어쩌지? 그럼 또 아프고 힘들겠지? 이런 불안이 스며드는 것이다. 사람 삶이 참 고약타...
주위를 돌아보니 다들 그렇게 산다. 내리막과 오르막에서 오락가락하면서 말이다. 너무 어려울 때는 단순하게 ‘이것 하나만, 저것 하나만 해결되었으면‘ 하며 살다가, 좀 좋아지면 이것도 문제, 저것도 불평, 잘 지내던 사람사이도 다투고 헤어지기도 하고, 지나치게 교만 방자하다가 주위에서 원망도 듣고 등 돌리고 떠나기도 하고, 다시 어려워지면 반성하고 욕심 버리고 살기로 작정도 하더라.
두어 주 후인 12월 12일에 한 출판사에서 내 책을 출간해서 세상에 내보내준다. 아주 멋진 화가님이 그려주신 그림이 포함되어서, 책이 반짝거릴 거라고 편집해주신 분이 기대하라고 하신다. 고맙다. 나갈 수도 없는 내 처지를 생각해서 병원으로 와서 의논도하고 나머지는 전화 메일, 우편으로 주고 받으면서 일을 진행시켰다. 아, 이 책에 오래전에 받아두었던 최간사님의 추천사가 들어간다. 시간 많이 끌어서 무지 죄송했는데 이제 좀 맘이 편하다.
여러 가지 무겁고 부러운 일들이 많은 년말, 남들처럼 싱싱 다니지도 못하고, 아내에게 꼭 필요한 나중 살아 갈 준비도 할 여력이 없고 몸은 자꾸 불안을 안겨 와서 불안에 빠지는데 이렇게 위로를 주신다. 바닥이 멀어지고, 그래서 떨어질까 봐 무서울 만큼 상승시켜주신 고마운 하늘의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다.
하루살이로 맘 편히 평안하게 잘 살아왔는데 요즘은 자꾸 수명이 길어진 느낌이다. 내일 일도 생각하고 내년일도 걱정을 하고 있으니, 주는 복을 누리는 게 아니라 근심으로 누리는 한심한 신앙인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이젠 수명도 건강도 한보따리 달라고 할까? 염치없게도! 이러다 하나님자리 내게 물려주시고 은퇴하시라고 내 입에서 나오는 거 아닐지 진짜 걱정된다. 뭐 하나님이 재롱부린다고 생각해주시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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