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무거운 짐보따리 위에는 빗방울도 무겁다.

희망으로 2013. 7. 30. 13:12

<무거운 짐보따리 위에는 빗방울도 무겁다. >

 

같은 병실의 다른 간병인 아주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깼다.

 

“7층에 우편물 찾아가라네요!”

 

밤에 모자란 잠이 몰려와서 아침밥 먹고 잠시 틈에 누웠는데 깜박 잠들었나보다.

멍하니 올라간 7층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보내면 누군지 어떻게 알아요!“


 

짜증이 섞인 말과 함께 우편물 하나를 내민다.

보니 병원 주소와 내 이름은 있는데 호수가 빠져 있다.

그럴 수 있겠다...’ 미안해야하나? 속으로 그런 생각하며,

애매한 채 한쪽이 북 찢겨나가 개봉된 봉투를 들고 내려왔다.

 

그런데 와서 열어보니 그냥 안내 인쇄물이랑 지로용지, 신청서 양식 달랑 한 장씩이다.

가난한 나라 장애자들을 배에 태워서 수술을 해주는 머쉬십이라는 단체의 안내문.

나와 아내만 늘 남의 도움 받는 게 미안해 그저 작은 돈을 이미 보내고 있는 단체다.




 

도무지 이거보고는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내게 연락을 했지?

그렇다면 굳이 개봉을 안 해도 알 수 있었겠다.

그런대도 허락도 없이 편지를 뜯어보았으면 따로 양해를 구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한마디 말도 없었다.

 

내가 알고도 이렇게 보내라고 한 것도 아니고, 왜 내게 신경질 내며 말을 했을까?’

돌아와 내용을 보고나니 뒤늦게 속이 부아가 난다.

 

나는 내게 뭘 보내는 분들에게 늘 병실호수를 적어 달라고 했다.

집사람 이름도 주소 끝에 적어달라고 당부를 했다.

병원을 여기 저기 떠돌다보니 우편물이랑 물건들 받을 일이 부지기다.

병원에서 헷갈릴까봐 내가 얼마나 신경을 쓰는데, 이건 예상 못하고 온 것이다.

 

병원을 떠돌면서 생기는 고단한 여러 일 중에 한 가지다.

내 잘못도 아니면서 또 겪다보니 화도 나고 심사가 불편해진다.

아내가 눈치를 채고 따지러 올라가잔다.

 

관두자, 바로 말했어야 하는데 이미 때를 놓쳤잖아.

이제 가서 뭐라고 해봐야, 짜증 안냈어요, 하고 변명하면 밝힐 방법도 없으니...“

 

밤에는 작은 일로 길게 못자고 잠 설치고,

낮에는 큰 일 보느라 30, 1시간 땀 빼며 씨름하다보니 인생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일까지 겹치면 더 우울해진다.

이렇게 사니까 이제는 별 사람들이 다 무시하고 막 대하는구나 싶어서,

 

아내에게 내가 이렇게 우울해지는건 다른 더 큰 원인 때문이라고 했다.

그 원인이 내게 있어서 작은 일에도 우울함이 깊어진다고 했더니 이렇게 말한다.

 

그럼 더 큰 원인인 내가 없어져야 되겠네...”

 

, ...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고 간단한 답이라면 내가 도망이라도 갔겠다.

손가락질을 받던지 욕을 바가지로 먹던지, 그게 보장하는 해결책이라면,

하지만 과연 내 인생이 아내만 없으면 행복해질까?

사람의 행복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렇게 근본 원인이라고 느끼는 대로 남들을 다 없애면,

이 땅에 살아남을 사람 한명이라도 있을까?

 

이래저래 우울해지는데 문득 어젯밤 한 사람이 생각난다.

어깨가 아파서 복도에서도 만지고 다니는 걸 우연히 보았던 모양이다.

건너편 병실의 아가씨 같은 아이 엄마가 병실로 씩씩하게 들어 왔다.

파스랑 근육진통제연고랑, 비닐장갑을 끼고 활짝 웃으며 우리 병실로,

 

복도에서 보니까 아저씨가 어깨가 아픈가 봐요. 내가 이거 발라주러 왔어요!”

 

도무지 어려워도 않고 쑥스럽지도 않아하면서 그 밝은 표정으로 들어와선

내 어깨의 옷을 조금 벗기곤 파스를 붙였다.

내게 한 장 더 달라더니 양쪽을 붙이고 연고를 발라서 마사지하듯 문질러주었다.

아내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고, 다른 사람들도 쳐다보고 있다.

 

얼마나 시원하고 고마운지~

 

세상엔 그런 사람도 있다. 남의 통증에 자기 약을 가지고 와서 도와주는 사람.

그리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웃으며 돌아가는 흔치 않은 사람이 말이다.

친절을 받고선 감동을 했다. 내 손이 닿지 않아 혼자서 잘 부치지도 못하는 자리였는데,

아내도 곁에서 어떻게 못하곤 끙끙거리는 나를 보기만 하던 참인데,

 

세상엔 남을 힘들게 하는 교양 없고 매너 없고 자비의 마음도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큰 원인을 치우지 않고도 잠시, 혹은 하루를 기분 좋게 해주는 사람,

온 몸의 고통은 덜어주지 못해도 작은 어깨 한나라도 시원하게 해주는 사람도 있다.

 

나를 속상하게 한 사람은 헉헉거리며 멘 무거운 짐보따리 위에 내린 빗방울이었다.

너무 무거울 때는 물방울 하나도 무게를 더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나를 기쁘게 해준 사람은 땀 흘리는 내 얼굴에 부채질 한 번 해준 사람이다.

목덜미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 한줄기도 잠시 짐 무게를 잊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 바람을 보내 준 바람 같은 사람.

 

세상은 흔하게 그렇다.

누구는 남을 북! 긁어서 상채기를 내거나 무거운 짐 위에 돌 하나를 슬쩍 더 올리고,

또 누구는 소리도 없이 뒤로 와서 슬그머니 짐수레를 살짝 밀어주는 마음을 보태고,

 

자꾸 속상하게 한 시간만 기억하고, 그런 사람만 상대하면 정말 살기 싫어진다.

일부러라도 떨치고 밝은 얼굴로 내게 기운 나게 한 일들만 떠올리고,

그 사람만 생각하면 조금은 가벼워진다.

 

누구를, 어디를 많이 보고 살 것인가가 우리의 평안을 좌우 한다.

세상에 특별한 행운만 가졌거나 불행만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