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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있냐고 질기게 묻는 사람

희망으로 2013. 7. 3. 08:48

<기적이 있냐고 질기게 묻는 사람>


운동하느라 걷고 있는데 카톡 문자가 왔다. 

아내와 같은 종류의 병을 가진 분이다. 그리 심한 편이 아니지만 심한 불안과 의문을 잔뜩 가진 분이다. 도움말을 부탁한다면서 끝없이 내게 기적이 존재 하냐고 반복해서 묻는다.
처음에는 내가 그렇다고, 우리가 그 증인이라고도 해보았지만 도무지 믿지 않는다. 하루만 지나가도 다시 진짜 기적이 있느냐고 또 묻는다. 말이 소용이 없다.

아내의 정도에 비하면 훨씬 건강한데도 더 불안해하고 더 비관적이다. 기도, 예배, 무엇이든 모든 초점을 오로지 기적이 일어날 지에만 매달린다. 심지어 기독교가 자기와 맞지 않는 게 아닌지, 종교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지를 고민한다고도 한다.

기적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오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걸 위해 신과 종교가 있다면 그건 머슴신이거나 돈 받고 물건을 주듯 하는 상인종교일 뿐이다

믿음은 기적이 오지 않을 때도 신과 우리가 모두 여전히 소중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기적이 없어도 우리는 무엇인가 할일이 있고 그럼에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말했다 이적과 증거를 끝없이 요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고기뱃속에서 사흘을 죽은 듯 지냈다가 살아 나온 요나, 십자가에서 죽고 사흘만에 살아나셔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기적보다 큰 기적은 없다는 말

기적은 꼭 내게, 나를 위해서만 있어야 한다는 건 기적의 선한 동기와 모순되는 욕심이다. 누군가를 위해서거나 모두를 위한 것도 값지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 당장에는 손해 보는 것 같이 보이는 돌아가는 기적이, 고작 이승의 백년을 잘 지내자고 육신에 내리는 기적보다 백배 천배는 더 크고 중요한 것이다.

제발 그분도 좀 관점이 이동했으면 좋겠다. 병이 없고 형편이 넉넉해도 평안이 수시로 위협을 받는 험한 세상살이인데 끝없이 기적만 바라고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데 조금만 잣대를 넓혀보니 우리 모두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노력보다 큰 행운을 바라고, 굳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아도 남만큼, 혹은 더 가져야 기분이 좋아지는 심보. 땀 흘리는 과정보다 결실의 영광만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태도 등, 별로 다르지 않는 불로소득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는한 평안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