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가는 길/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그럼에도 다행인 것!

희망으로 2013. 4. 12. 22:58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그럼에도 다행인 것>

 

두통약을 두 개째 먹었다.

지끈거리는 통증이 머리만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 기분도 많이 나쁘게 하고 있다.

집사람은 병원을 가라고 성화다. 처방을 받아 약 지어먹으라고...


나갈까 말까?’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잠깐만 누워있어야지 했는데, 잠인지 졸음인지 깜박 시간이 건너뛰었다. 아내가 소변이 마렵다고 부르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나 좀 걷고 올께!”

어지간하면 거르지 않고 밤이면 두 시간 안팎 걷는다. 바깥 공기도 마시고, 종일토록 건물에 갇혀 답답했던 마음도 풀고 오는 자유 시간, 두 시간.


오늘은 이 찬양이 나를 낚았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한 시간째 반복해서 듣고 또 듣는다. 가끔 이 무한반복 마법에 걸리면 벗어나기 참 힘들다. 때때로 기어이 사람을 울리고 만다.


진통제 효과가 떨어지는 걸까?’

다시 머리가 흔들리며 욱신거린다. 속도를 늦춘다. 많이 느리게, 거북이처럼 어슬렁거리는 정도로, 그래도 줄어들지 않는 두통...


나이 들면 걱정이 많아진다던가? 그래서 몸 컨디션도 따라 무거워진다던가? 아님 몸이 여기저기 탈이 나면서 걱정이 늘어나는 걸까? 순서가 어찌되던 두 가지가 동시에 오는 건 분명하다.


최근에는 자주 아프면서 보냈다. 예전에는 그렇게 힘든 병원생활 중에도 일 년에 한번이나 심하게 오던 몸살감기가 계절별로 온다. 최근에는 그것도 멀다고 달마다 오기도 했다. 그리고도 모자라 복통 설사가 보름씩이나 이어져서 병원까지 가게 하더니 간신히 회복하니 기다렸다는 듯 두통이 수시로 방문한다. 날씨만 흐려도 오고 조금만 맘이 상한 일 있어도 온다.


혹시 무슨 심한 병이 속에서 진행되는 건 아닐까?”

별 걱정이 다 슬금슬금 든다. 안 그래도 몸무게가 몇 킬로나 빠지더니 회복이 안 된다. 걱정스럽게...


나 아무래도 유언장 작성해서 복사해 아이들 셋에게 한 장씩 줘야 할까봐? 조금씩 돈 남은건 어느 통장에 있고, 전세방 보증금은 전부 엄마 치료비로 사용해주라, 정말 미안하지만... 안 그러면 엄마를 누가 돌보겠니 라고 말도 하고,”


아내는 별소리 다한다고 펄쩍뛰었다. 그런데 농담이 아니라 가끔씩 진지해진다. 그렇게 닥쳐올지도 모를 나의 끝 모습과 남겨질 아내의 버거운 뒤 대책이 막막해서....


-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병원 치료사 선생님 중에 늘 잘 웃고 밝은 여자선생님이 있다. 보고만 있어도 기운이 생기고 마음의 자신감이 일어나게 하는 좋은 바이러스 같은 좋은 사람!

 

나도 예전엔 참 긍정적이고 혼자서는 심각해도 남 앞에서는 늘 웃는 밝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짜증난 목소리와 어두운 얼굴로 가까이 하기 불편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슬픈 일도 있었다. 아내의 심한 상태와 두려운 내 맘을 있는 그대로 모임의 게시판에 털어놓았더니 어느 날 병원 직원을 통해 글을 좀 내려 달라고 했다. 아직 그렇게 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우울해진다고.... 

그래서 그동안 올렸던 모든 글을 다 지웠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물론 그 뒤론 한편도 올리지 않았다., 댓글로 조차도,


최근에는 누군가가 또 내게 말이 많다고 한다. 구구절절 남자답지 않다고도 했다. 어떤 사람은 궁상맞다고도 하고, 우중충하다. 질린다. 말로 하지 않아도 그런 느낌은 빨리도 알게 된다.


‘...왜 안 그럴까, 입장 바뀌어 주변에서 누가 그러면 나도 그럴 것 같은데,’


점점 말이 줄어든다. 미안해서, 창피해서, 또 맘이 너무 무거워져서 가라앉으면 하고 싶어도 꺼내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내 지친 몸과 마음에 참 많은 힘과 에너지를 주는 것 중이 하나가 딸아이 나눔이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일어나게 하고, 웃을 일 없을 때도 웃게 하며 기쁨을 안겨주는 보물이다.


그래서 자주 겁이 나기도 한다. ‘만약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상황에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불길한 온갖 상상이 나를 숨 막히게 한다. 병원을 왔다 충주로 돌아가는 날이나 어쩌다 연락이 안 되는 때는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그래서 세살까지는 내 지분이 90% 였다. 제발 세 살 넘을 때까지는 아무 일 없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 뒤로는 하나님께 맡겼다 스무살 때까지 아이에 대한 내 지분은 관리인으로 20% 정도로 줄었다. 그것도 스무살이 되면 98% 쯤은 넘어가고 한 2% 남을 거다. 생명의 소유든 관리의 책임이든...


아이가 많이 보고 싶다.

이렇게 몸 컨디션이 떨어지고 덩달아 마음도 바닥에 떨어지는 날이면...

 

-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 하고픈데...]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누구도 가져가지 못하고 막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는 것,

밤이고 새벽이고 언제라도 부를 수 있는 이름. 예수님, 그 이름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아무리 친하고 너그러워도 시간에 따라 부르면 안 되기도 하고, 더러는 불러도 귀찮아 하거나 대답할 수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법 없다. 언제고 부를 수 있다. 가리지 않고, 실례도 안 되고 찡그리지도 않는다. 그런 분 없다.


그리고 어디서 불러도 가리지 않는다.

분위기 있는 곳이던, 좁은 곳이던 감옥이던 가리지 않는다. 험한 옷을 입은 채로 불러도 외면 안 하신다. 오줌 똥 다 묻은 병상이던 심지어 지옥이라도...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렇게 사방으로 막히고 에워쌈을 당해가며 우울해지는 시간에도 그 이름이 내게 있으니! 아무도 가져가지도 막지도 못하는 이름, 예수님이!


-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