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병원 탈출! - 지하철 나들이

희망으로 2013. 4. 1. 20:46

<병원 탈출 지하철 나들이>


좁은 병실에 와서 함께 자고 먹고 지내던 딸아이를 보내러 간다
2년에 양다리 걸친 신년8일간의 동거가 끝나고 돌려보내는 날 눈발이 날린다.

근 15년만에 들어가본 고속터미널에서 미아가 되어 아이와 티걱태걱 속을 긁었다.
마음 짠 하던 이별은 깨진 화병도 되었다가, 줏어 담다 손 베이기도하고...

돌아 오는 지하철 혼자 무인도에서 온몸을 휘감고 돌아가는 실사 영화를 본다.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이 스크린 속 영상처럼 뿌옇고 낮설다.

'다음은 압구정 역입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들리는 말 '사망의 그늘에서 나를 구해줄 자가 누구입니까?'
요즘들어 하루 열두번도 더 달려드는 달콤하고 끈덕진 죽음의 유혹
'누가 나를 구해줄 것인가? 
태초부터 빼도 박도 못하게 소유하고 계신 그분으로부터...'

'다음은 충무로 역입니다.'

앞문으로 우루루 들어 온 십대들 네명 등을 돌리고 선 뒷 자태들이 이쁘다.
청바지에 꼭 끼는 늘씬한 다리와 엉덩이들이 느닷없는 충동을 확 불러온다
...하긴 아내가 환자복을 입은지 벌써 몇 년째이던가,

귓속으로는 가스펠송 mp3가 들어오고 마음속엔 벗은 여자의 그림들이 출렁인다
금욕의 자책과 터지고 싶은 몸의 본능이 뒤죽박죽되어간다.
동광원의 이현필선생님보다 더한 금욕 신앙을 넘어갈 자신도 없는데
그분마저 임종 때 이건 신앙인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하셨다 그랬다니...
어쩌라고?

'다음은 경복궁 역입니다.'

가장 괴로울때가 언제이냐고 묻는 말에 김창환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던가?
'몸속에서 마음들이 맞지가 않아 떨거럭 떨거럭 거릴 때'라고...
그러면서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컨셉 뿐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허구헌날 날아가고 싶어 몸부림치고 갈망하는 자유가 상상 속의 컨셉일뿐이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병원으로 환자 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지않는 절규의 상상!

'다음은 구파발 역입니다.'

가끔은 냉동실로 걸어들어가고싶다.
서서히 얼어 들어가는 차가운 느낌 감각도 사라지면서 죽어가는 상상
웬만한 마음의 번뇌도 지독히 추운 데를 걸어다니면 신기하게도 다 사라진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외로움?' 웃기고 자빠졌네! 그렇게 비웃으면서...
젊은 20대 잠못이루는 밤에 많이도 돌아다녔다. 
꽁꽁 얼면서 배 속의 쪼로록 소리를 들으면서,
아픈 아내의 심한 통증도 냉동실로 들어가면 서서히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다가 놀란다.

'다음은 마두역입니다.'

내릴 준비를 해야한다
굳이 돌아가야할 좋은 곳도 반길 사람도 없는 병원으로
눈 덮히고 찬바람 부는 아스팔트 길을 걸어 돌아가야겠다.
달콤하게 입술을 적시고 따끈하게 목을 통과하여 속을 불덩이로 만들어버릴
위스키 진하게 들어간 아일리쉬 커피 한잔이 생각난다.

이제 들어가면 다시 외출할 날이 언제일른지 기약도 없는데...

'다음은 사망의 음침한 그늘역입니다.'
'잊어버린 예수님이 없도록 꼭 챙겨서 내리십시오!' 

- 몇 해 전, 긴 병원 생활중 새해를 맞아 병원으로 온 아이를 태워보내고 돌아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