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날마다 한 생각

체면과 배려의 밀땅...

희망으로 2013. 2. 8. 11:18

<배려와 체면의 밀땅>

 

아침부터 투다닥...

아내와 짧은 신경질 전투를 한 번 치렀다.

 

천금 같은 방학 틈새 휴가를 병실 간병인용 보조침대에서 딩굴거리는 딸과, 오전 중에 신문사에서 희귀난치병에 관한 취재를 오신다는 일정사이에 쫓겼나보다. 아내도 밥 먹이고 대충 치우고 씻기고 하려면 빨리 좀 움직여야겠다는 내 맘과 달리 늦어진다. 게다가 소변을 빼야한다는데 보던 아침연속극 때문에 커텐을 치기가 미안해서 조금만 기다리잔다.

 

!’...

기어이 짜증을 내고 말았다. 말이야 병원에 사는 사람이 환자나 간병 치닥거리가 먼저지 옆사람 티비 보는데 맞추어야 하냐고 경우 바른 소리지만 속은 피로가 쌓인 예민함에서 나오는 화풀이다. 내가 알고 하늘이 아는데 뭔 핑계를 대나...

 

낮선 방문객 사람에게 어수선하고 너저분한 꼴을 안보이고 싶다는 내 체면세우기가 옆 사람 배려하려는 아내를 깔아 뭉갠 거다. 남에게 보이자고 자기 가족 무안 주고 마음 다치게 하는 적이 어디 한 두 번이고 나 하나이던가? 딱하게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 많은 경우에 자주 그랬다. 나의 체면이 더 중요해서, 눈에 보이는 이익이 더 탐나서 보이지 않는 배려나 친절은 가볍게 무시하고, 돈 안 되는 가족은 안중에도 없이 결정해버리는 무심한 가장의 횡포를 부린 적이...

 

체면이나 외양을 중시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나 편한대로, 나만 괜찮으면 상관없다는 생활방식이 때로는 참 염치나 예의가 없기도 한다. ‘비굴하면 성공한다!’ 거나 조금만 게으르면 내가 행복해진다!’ 하는 식으로 자신에게 충실하라는 처세를 주장하는 책들도 잘 나간다니,

 

하지만 상대를 배려한 체면이나 친절은 받는 사람에겐 때로 따뜻하고 고마운 행위가 되기도 한다. 대접받고 귀하게 여겨준다는 느낌은 행복감을 채워주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체면을 위한 배려나, 관계를 위한 친절은 베풀고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일정한 노동이나 희생을 요구한다.

 

세상은 그런 법이다.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배려와 친절의 뒤에는 참고 절제하고 양보하는 누군가의 헌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나만 편하면, 내 감정 내 이익만 첫째로 사는 곳에서는 그런 걸 기대할 수가 없다.

 

오늘 나는 한가지 실수를 했다. 체면과 이익을 위해서 배려나 친절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했는데 중심이 나부터 였다. 나의 체면과 나의 이익을 위해서, 아내의 배려나 친절은 뒤로 밀어버리다가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조금 거리가 멀고 낮선 사람일수록 무시하지 않으면서 가까운 사람에게는 쉽게 무례해진다.

누군가에게 베풀기 위해서 생기는 수고와 피로를 내가 감당하고 안에서 소화해야하는데 우리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벽을 허물어버리고 곧잘 그 감당을 떠넘긴다. 그래서 싸우고 쌓이고 마침내 깊은 갈등의 골을 만든다.

 

값은 가족에게 치르게 하고 보람과 만족은 자기가 가지겠다는 날강도 같은 짓이다.

그걸 감수해야 자기의 배려고 친절이며, 진정한 체면이고 이익도 취할 자격이 생기는데 말이다.

 

체면과 이익을 위해 배려와 친절을 감당하려면 그 댓가도 내가 치르자! 아내나 가족에게 떠 넘기지 말고... 오늘 나의 체면을 위해 아내의 배려를 무시하는 밀고 땅기기에서 나는 판정패 했다. ‘밀땅은 가족과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할 것! 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