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평일보다 치료시간은 적고 여유가 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모자란 잠이 몰려오는지 졸린다.
'잠시만 눕자!, 이 좋은 잠깐의 휴식~'
보호자용 보조침대에 누웠는데 잠은 안오고 눈 앞에 나타나는 풍경,
한 눈에 들어오는 가로 세로 3미터가 채 안되는 약 0.8평의 공간,
아내와 내가 살아가는 집이자 생활공간의 전부인 9인실 병실중 한 자리...
기둥에 걸린 꽃다발 하나,
지난 부부의날에 아내의 어거지(?)에 못견디고 바친 선물이다.
그래도 잘 마르고 있고 여전히 장미와 안개꽃의 조화가 이쁘다.
그 옆으로 창문틀에 놓인 아주 작은 화분 에닐곱개,
매발톱꽃, 허브, 선인장 종류 두어가지 등,
창문곁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누리는 프리미엄중 한가지다.
창문옆 자리는 큰 병원에서는 인기 좋은 선호 1순위자리다.
하지만 작은 재활병원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
추운 겨울날이면 얇은 시멘트벽에서 얼음장 같은 한기가 바로 찌르고
반대로 더운 여름날이면 종일 달구어진 벽에서 후끈거리는 열기,
그럼에도 우리는 머무르는 병원마다 야금야금 창문 곁으로 옮기고
한 번 자리 잡으면 퇴원때까지 죽치고 눌러지낸다.
당연히 추위와 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전에 병원에서는 겉옷을 입고 자기도하고
방한용 은박지매트를 벽에 테이프로 붙이고도 안되어
결국 비닐로 창을 이중으로 막기도 했었다.
그래도 우리는 창문곁 자리를 고집한다.
우선 수시로 밖을 볼 수 있어 덜 답답하고,
내 맘대로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어오거나 못들어오게 할 수 있다.
비오는 날은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는 즐거움도 좋다.
그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수시로 커텐을 쳐야하는데 중간에서는 불편하다.
우리도 옆자리 환자들도... 티비를 볼고 있을때는 더욱,
창문쪽 자리는 중간침대에는 없는 보너스 작은 공간이 주어진다.
우리는 사계절을 고스란히 병원생활을 하다보니 짐이 많다.
더구나 아내는 이런저런 간병용품이 더 많이 따라다닌다.
스스로 자기몸을 움직이는 사람에 비하면 보조용품도 많고
장이 마비된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용품들이 또 늘어나기 때문이다.
창가 작은 턱이 대부분 있다. 그곳은 나의 서재가 된다.
책과 라디오, 노트북과 시계 손전화 충전기자리까지,
신문과 수첩도 가까이 있어 영락없이 나의 문화생활을 소화한다.
다른 중간자리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호사다.
이것도 풍족함이라면 즐거운 풍족함이다.
아내의 침대밑은 언제나 가장 큰 수납 공간이다.
온갖 장애보조용품들과 빨래 목욕 간편한 식기류까지 보관하는 곳,
계절이 바뀌면 교대하는 얇은 담요류까지 정말 요긴한 공간이다.
중간 자리에서는 이 침대밑에 보호자의 보조침대를 밀어넣었다 빼는
공간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 짐도 넣을 수 없다.
그러니 집으로 치면 절반넘는 천금같은 공간일 수밖에...
아내와 나 사이엔 작은 냉장고 하나가 우리 먹거리 창고다
몇가지의 반찬들과 꼭 필요한 냉장보관 재료나 음료수를 보관한다.
간장 고추장 쌈장등도 보관하고 잠깐씩 머무르는 두부와 계란,
때론 먹다가 남은 과일, 상추등도 보관한다.
가로 세로 60-70 센치정도의 이렇게 작은 냉장고가 거의 만능이다!
내 머리맡에 세워진 문달린 키큰 장 하나에는 각종 겉옷, 속옷과
중요한 서류보관용 가방, 서랍의 각종 약들과 커피 부식들을 소화한다.
최대한 공간을 잘 사용하는 경력이 점점 늘어간다.
도깨비 자루처럼 몇 보따리쯤의 물건은 스며들었다가 나오곤 한다.
나의 보호자용 낮은 침대밑은 신발장과 다용도실 공간을 한다.
아내와 나의 신발이 두 켤레씩 숨어 있고, 세면통과 빨래를 기다리는
옷들의 보관장소다.
아! 날마다 먹여야하는 두유박스와 다 읽은 책박스,
그리고 지난 번 에어컨 고장때 산 아주 날씬한 타워형 선풍기 하나가
기둥옆에 붙어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러고도 도저히 자리가 안 되는 계절용품들, 여분의 이불등은
차에서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고 눌러 산다.
어쩌랴 더 이상은 줄일수도 없고 꼭 필요한 옷가지 소지품들이니...
벌써 햇수로 5년째,
이제 이 작은 한평도 채 안되는 공간의 생활이 익숙해졌다.
어른 두 사람, 그것도 가끔 아이들이 와서 자고 가는데 필요한
살림을 다 담고 살아갈 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이렇게 작은 공간으로도 살아갈 수가 있다니...
어쩌면 사람들은 사는데 필요한 공간을 너무 넓게 계산하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은 줄어들면 못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하긴 바로 이전에 우리도 창고 몇개를 다 채우고도 맨날 뭐가 모자란다
뭐가 없다. 또 사야지 하면서 살았었다.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적응하는 인간의 능력이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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