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도 믿을 수 없다
아침 6시,
어제 늦은 밤 손빨래해서 물 빠지도록 옷걸이에 걸어 놓은 걸
샤워실에서 치워주려고 하는데 안에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10분 20분, 30분이 넘어가는데도...
이 아침시간엔 무지 바쁘게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인데
이렇게 오래도록 한사람이 사용한다는 건 실례다.
달랑 두 개뿐인 샤워실에서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씻고
화장실까지 사용해야하니 얼른 쓰고 나와 줘야 한다.
닫힌 문 밖 복도에 서서 기다리는데 슬슬 짜증이 난다.
“도대체 이렇게 매너 없는 사람이 누구야?“
그때 나타난 간병인 한 분, 역시 아줌마들은 강하다.
문을 밀고 들어가며 ‘누가 계시나요?’ 한다.
그 안에서 나온 사람은 뜻밖에도 미운 사람(?)이 아니고
늘 우리에게 반찬을 만들어 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거들어주는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머리를 만지고 화장을 손보느라 시간이 좀 걸렸나보다.
‘바쁘면 두드리고 말을 하지요’ 웃으면서 미안하단다.
목까지 차올랐던 짜증과 험담욕구가 순식간에 싸~악!
믿기 어렵도록 사라진다.
‘뭘 그렇게 새벽부터 ’이쁜짖‘ 하느라 오래 걸려요!’
농담 섞인 핀잔 한마디를 하면서 웃고 말았다.
옷걸이 빨래를 걷어 병실로 돌아오면서 묘한 느낌이다.
누군지 알기 전에 그토록 치밀었던 짜증과 경우 바른 험담이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만약 그 안에서 나온 사람이 별로 고맙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똑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마 엄청 심하게, 오래 퍼부었을거다.
온갖 경우 바른 논리로 서슬이 퍼래서 휘두르며!
이건 공평하지 않다.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보아도 부당한 태도다.
이러니 세상 많은 경우가 잘못 처리되는 일이 생긴다.
아는 사람, 신세진 사람, 혹은 뭔가 힘 있는 사람에게
잣대가 늘어졌다 줄어졌다 하고, 누구는 심하게 누구는 약하게
혜택을 더 주기도하고, 지연 학연, ‘빽’이라는 단어도 생겨날거다.
그보다 더 괴로운 건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미운 감정도 순수하지 않으니 사랑한다는 감정인들 솔직할까?
바탕이 무엇이냐, 아는 사람이냐 모르는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과 논리를 어떻게 변치 않는 정직함이라고 믿을까?
그걸 기준으로 무슨 계획을 세운들 얼마나 불안한 구름인가,
수시로 모양이 달라져버릴 뜬 구름처럼...
내가 밉다는 게 정말 변함없이 미운 대상이 맞을까?
내가 좋아 한다는 게 변함없이 좋아할만한 대상이 맞을까?
그 이유도 변함없고, 그 과정도 변함없고, 끝까지 변함없을 수 있을까?
나만이 아니라 남들도, 누구도 항상 그럴까?
참 많은 것들이 그저 수시로 변하고 완전하지 않은 일시적 판단이다.
불안해 하는 많은 것들은?
기쁘다고 하는 많은 것들은?
괴롭다고 하는 많은 것들은?
죽어도 못 넘길 것 같다는 많은 고비들은?
아름답다고 착하다고 보이던 많은 것들은?
변치 않을거라던 많은 사람들, 자신감, 명예는?
...........
참 많은 것들에 착시 착각으로 매달리며 사는 것 같다.
없어도 살 것들이 없어서 못 살거라고 시달렸고,
안 가도 살 수 있는데 꼭 가야한다고 바둥거렸고,
안 먹어도 안 죽는데도 못 먹어서 슬펐고,
와서 죽이지 않을텐데도 누구 때문에 죽을 것 같았고,
오직 변함없고 늘 존재하는 무엇인가가 있을까?
몸 밖의 모든 것이 소멸되고 바뀌는데
나 자신조차 영구적이지 않고
불규칙 동사 같은 못 믿을 일시적 생명이라니...
오늘은 솥에서 새어나오는 잠시 존재하는 수증기 같은 내가
구름이 되고 비가되고 물이 되었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모든 과정을 품고 사는 큰 분에게 안기는 날이다.
지가 뛰어봐야 손바닥안의 흙 한줌이지! 하면서 보시는
하나님!
빙그레 웃으시는 변함없는 그 분께 안겨 안정을 얻고 싶다.
미움도 사랑도 못 믿을 나를 밀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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