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단 한번의 풍경...

희망으로 2012. 4. 28. 09:00

오늘 단 한번의 풍경...

[1]
모처럼 큰아이가 사는 대학교 근처 집으로 밤 운동 삼아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20-25분 정도 걸리는 거리,
중간고사 시험을 치르고 지금은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되도록 불쑥 안 가려고 참다가 오늘은 주말이라 큰 맘 먹고 갔다.
사실은 내가 외로워서...

[2]
집 부근에 가서 전화를 했다. 놀라지 않게,
또는 내가 푸대접 받고 싶지 않은 묘한 계산인지도 모르겠지만,
“집 근처에 왔는데 혹시 먹고 싶은 건 없냐? 좀 사서 들어가고 싶은데”
대답이 신통치 않다. 워낙 먹는 데는 욕심이 없는 별난 아이라...
그냥 9,900원짜리 광어를 포장해주는 집이 있어 조금 사고 들어가니
벌써 밤 11시가 가까운 늦은 시간, 쬐금 미안하다.

[3]
아이가 하얀 스치로폼 박스를 하나 보인다.
누가 보내주셨는데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주소 라벨을 보니 알겠다. 벌써 세 번째인가? 그러니...
그 분 연락처를 알려주고 니가 직접 고맙다고 인사를 드려라고 했다.
처음엔 착오로 아이에게 보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낸 걸 이제는 안다.
한참 먹을 나이에 형편상이든 돈 때문이든 잘 먹지 못하는 걸 보충하려고
그러시는 것 같다. 함박스테이크가 많이 들어 있는 포장식품...

[4]
깨끗한 새 집 현관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환상을 본다.
이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명단이
마치 롤 벽지처럼 주루룩 펴지면서 눈앞을 지나가는 느낌,
도데체 누가 무슨 일을 꾸민걸까? 이런 과분한 보살핌이라니...

[5]
낮에 둘째아이가 전화를 했다.
군대생활하면서 틈틈이 사이버대학 공부를 해내는 중이다.
“등록금 낸 것 아깝게 날리지는 않겠지? 공부는 잘 따라가는거지?”
별 말할 자격도 없지만 기어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회에 나와서는 니가 하고 싶은 음악공부를 한다니 군에 있는 동안
공부 마쳐서 기본 자격은 갖추고 나와라. 돈과 시간 흘려보내지 말고,
나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공부 못시킨 한 풀어드렸다. 독학으로,
그러니 너도 나와 엄마 니들 공부 바라지 못해준 빚진 마음 풀어주고,
한 맺히지 않도록 꼭 공부 마치고 제대해다오! 라고 염치도 없이 농담아닌 진담을...
그 이야기를 큰아이에게 했더니 웃는다. 아마 나 돌아간 뒤 부담 좀 가질거다.

[6]
돌아오는 길에 밤하는 별도 곱고 길가에 연산홍들이 만발했다.
여기는 예전엔 낮선 곳, 그런데 자주 다니다보니 낮익고 정든다.
내년에 막내딸마저 이곳으로 고등학교를 오면 아마 더 고향같아질지 모른다.
세상 어디도 지나갈 미련 없는 곳일지 모르는데, 이렇게 자주 보면
정이 들고, 그러면 떠나기 싫어지고 변하는 것 또한 두려워진다.
아무 대고 아무데든 가라면 가고 살라면 살아야 하는 인생인데도...

[7]
이건 소설도 아니고, 각본도 아니다.
어쩌면 다큐멘터리이고 논픽션, 실화다.
단 하루, 아니 한 시간도 잊어먹지 말라고 각성을 시키고 못을 박으신다.
마냥 몇 십년, 대대로 퍼지게 먹고 살고 고생도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고,
한 달 내내, 일 년 내내 구차하지 않게 폼나게,
넉넉하게 남보란 듯 사는 사람들 속에서 허덕이며 살게 하는 이유가 뭘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 멀리하고는 못산다는거?
나중에도 기다려주는 세상 모른척하고 제맘대로 살지 말라는 각성?
시도 때도 없이 경고하고 경험하게하고 뼈에 새기게 한다.
너무 고마울 정도로...
나도 때론 하늘나라 학습쯤은 모르고 넉넉하게 살아보고 싶은데 몰라주고,

[8]
병실로 돌아오니 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
늦은 나를 기다리느라 환자인 아내는 잠도 안자고 있었나보다.
모든 순간의 느낌, 풍경은 일생에 단 한번 있는거라는데,
같은 장소라도 시간이 다르고, 같은 시간이라도 장소가 다르고,
그래서 같은 일, 같은 풍경은 영원히 반복되지 않는다는데,
오늘 이 귀한 순간은 또 최고가 아닌 상태로 보내졌다.
어쩌라고...

[9]
오늘 이 모든 일들이 단 하루에 일어났다.
하루가 이렇게 길고 무거우면 너무 힘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 날이 일년이면 365일, 십년이면 3650일,
평생이면???
하루가 길다. 영원처럼...

[10]
문득 이렇게 바람에 밀리고 물결에 떠다니는 삶이 참 싫어진다.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발걸음이 정말 안 내킬 때도 있다.
그냥 평범하게 좀 살게 해주지 왜 이렇게 몰아치며 굴리시는걸까?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지도 모른다.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 늘 행복하고 늘 부족함이 없지 대부분은
이렇게 지지고볶고 흔들리며 버티고 사는지 모른다.
단지 정도의 차이만 가지고!
하나님 정말 미워요. 하나님 진짜 너무해요. 하나님 무슨 속셈이예요?
그냥 건강하게 내 재주로, 내 힘으로 벌어 가족들 먹이고 살게 하시지,
이게 뭐냐구요. 여기저기 손길 없으면 망신스럽게 갈지도 모르니...
그러면서도 또 정한수 칠성당 앞에서 빌 듯 빌고 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먹이고 입히고 부족함 없이 살려서 끌고 가주시니!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