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날마다 한 생각

꼼짝없이 받는 횡재!

희망으로 2012. 3. 26. 00:14
‘꼼짝없이 받는 횡재‘

큰아이를 복학한 대학교 주변에 방을 구해준 후,
딱 한번 짐을 날라준 후 처음으로 가보았습니다.
그것도 병원에서 출발해 걸어서,
생전 안 다녀본 낮선 도시 청주의 밤길을 이리저리 돌면서...

혹시나 자거나 누가 와 있을까봐
집 근처 도착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나 바로 앞에 왔는데 올라가도 되겠니?”
“그럼요, 올라와요”
요즘 아이들 독립심이 너무 강해서(?)
부모들이 오는 것도 귀찮아 합니다.
그게 경우에 어긋나는지 이유 있는지 상관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생활에 불편한건 없는지 점검하고 그냥 나왔습니다.
차마 이 이야기는 못했습니다.
집사람에게 오늘 들은 재미있지만 마음 찡했던 이야기,
아주 어릴 때 두 살 늦은 동생이 귀찮고 밉다고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엄마 재 제발 쓰레기통에 좀 갖다 버려!”
“그랬다가 나중에 너 심심하고 보고 싶으면 어쩌려고?”
“그럼 그때 다시 가져오면 되지!”
“....”

그 이야기를 듣고 큰아이가 어릴 때 받은 스트레스를
털어놓고 이야기나 해보아야지 하고 갔는데,
다른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공연히 떠올려서 잊었던 안좋은 기분 생각날까봐
그냥 입 다물고 나왔습니다.
어느 집이나 맏이들이 겪는 이런 저런 희생, 감수, 무거움...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짠하면서도,
과연 큰아이는 나와 아내의 심정을 얼마나 이해할까 궁금해졌습니다.
아이들 눈에는 늘 큰소리치고 아무 실수도 안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아님 여기저기 험 투성이지만 부모니까 차마 모른 체 대접하는
애쓰러운 대상일까? 그러면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터덜 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무언가 길에 반짝거리는게 눈에 띄었습니다.
집어보니 500원짜리 동전입니다. '...이걸 어쩐다?'
이걸 경찰서에 가져가서 주인을 찾아주라고 한들
주인이 분실 신고를 했을리도 없고,
접수받는 경찰도 나를 얼마나 한심하고 귀찮게 볼까?
그런 생각에 이르니 '에라, 그냥 가지자!' 했습니다.
이런 걸 ‘꼼짝없이 받는 횡재’라고 하는가 봅니다.
별로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횡재~~

그런데 마냥 기쁘거나 평안하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우리 가정이 이런 횡재로 풀어질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끝없이 많은 횡재로 살아가기도 내키지 않는데,
어쩐지 불편합니다.

그럼 무슨 별다른 뾰족한 길이 있을까?
이런 상황에 빠져서도 스스로 변명 비슷한 이유를 달지 않는 사람,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누군들 자유로울까,
그렇게 이런 저런 합리화로 융통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조차 당당한 것이...
우리 아이들은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에서 무엇을 느낄까?
은총? 구차함? 감사? 불행? ....

이 길의 끝과 지금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긴 세월? 비틀거리다가 제 자리를 간신히 왔다가 또 탈선하는 반복?
이 땅에서 저 하늘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름 변치않는 굳센 믿음? 풍요한 능력? 남은 이승의 즐거움?
그것도 아니면 매순간 흔들리면서 의심하고 불안하면서도 버티는 삶?

정말 때론 어서 이 길이 끝나고,
이 무대가 내려지고 판정을 받고 싶기도 합니다.
그럴듯한 신앙인의 평가를 받으면서 우아하게 살고 싶기도 하지만
시시각각 몰려오는 바람은 급하기만 합니다.
이딴 게 뭔 소용 있다고 질질 끌어요?
남에겐 잘 보여도 속은 창피하기 그침 없는데...

우리가 사는 모습에 당당하고,
자신에게든 남들에게든 당당하고,
내일 아침에 종말이 와도 두렵지 않고 담대하려면
적당한 합리화와 전시효과를 때려치우고 이렇게 살라고 하네요.
마침내 우리를 따져서 영원히 판결할,
그 분의 뜻대로 구하면서 살면 된다고...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한일서 5장 14절>

"지금 당당하신가요?
별 쓸모없는 일과 자신을 채우는 욕심대로 살면서
마치 능력있고 현명한 사람처럼 사는 건 아닌가요?
사람의 명예를 위해서 구하면서도 하늘에 필요한거라고
우기면서 사는 건 아닌가요?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구요?
아뇨, 나 자신에게 많이 답답하고 속상해서 하는 말입니다."

꼼작 없는 횡재라고 매사를 둘러대면서 살다가
나보다 솔직한 아이들을 생각하니 어쩐지 걸립니다.
담대하게 살려면 그 분의 뜻을 구하며 살라는데
도대체 그 뜻이 맨날 왔다갔다 의문과 오리무중으로 느껴지니
어떻게 하지요?
그 분의 뜻대로 안구하고 내 욕심대로 구하니
사는게 담대해지지 못하고 늘 두렵고 평안치 못한가 봅니다.

얼마 있으면 2000번이 넘는 고난과 죽음, 부활을 또 되풀이한다는데,
좀 달라졌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몰려와서 해보는 생각입니다.
허구헌날 징징거리고 불편 불행하다고 투덜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나는 당연히 그렇고 남들은 어쩔지 모르겠습니다....